<동네에서....이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500cc 딱 한잔씩만 할까요?”.....男
“좋아요...제가 가끔 가는 신사동 사거리에 호프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죠”...........女
나도 몇 번 가보았지만 처음가본 척 모른 채 했다.
구석에 앉자 마자
"어디 사세요?"
"저도 잠원동 삽니다
"어느 아파트요?"
“그쪽 사시는 바로 옆 아파트 삽니다“
둘은 마치 고향사람 만난 듯하여
서로의 경계가 풀어지면서 대화의 진도가 급격하게 빨라진다.
자정이 넘어 손님이 거의 없는 호프집 구석에서
정장을 한 여인과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서로에게 몰두하며 호프잔을 비운다.
대화 끝에 그 쪽 큰 딸과 우리 집 둘째 아들이 같은 반이라는 걸
알게 되어 서로 또 한번 놀랐고 마치 종로거리에서 동창생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 희박한 확률의 만남이고
평생 불가능한 만남이다.
남자 여자의 만남이 먼저인가 학부형의 만남이 우선인가? 헷갈린다.
가슴으로 만났는데 머리를 써야되는 그런 경우랄까?
여자가 손을 턱에 괘고 볼이 발그레한 채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면서
도발적 질문을 한다.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요?”
“이번에 큰 딸 과학 체험 숙제가 있던데 그것 좀 해 주실래요?”
“안그래도 아들이 부탁을 해서 제가 대신 했는데 생각해보고
하나 더 할 수 있으면 해볼께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멋진 저녁 살께요”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나서 이거이 드라마같은 우연이고
너무 빨리 어디론가 휩쓸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그 분위기를 구태여 역행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학교 다닐 땐 자기가 얼짱이었고 나 같은 사람 쳐다도 완봤다고
하는 농담반 진담 반의 이야기에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상했고
순간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은 욕구가 솟아 올랐다.
그리고 스커트 밑으로 보이는 다리의 라인이 아줌마치고는
상당히 날씬 했으며 하이힐의 높이는 불안감을 넘어 부축해줘야
될것만 같은 생각이 스치운다.
한참 이야기 후 그녀는 자기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고 나는 100미터 정도 더 직진하여
집으로 왔다.
누가 볼까봐 한참 떨어져서 걸었다.
동네에 소문 퍼지면 난 추방이다.
멸문지화는 아니더라도
그 피해는 거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상황을 조절하지 못하면 생각지도 못한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사람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험은 자신의 대처능력에 따라 수위를 달리한다.
그래서 영화속의 제임스 본드나 안젤리나졸리가 상상을 벗어난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는 것은 유연하게 극복해 나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속의 본드가 아니고
잘하면 본전이라는 생각에
회사 다니면서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 한통의 문자가 왔다.
"과학 숙제 이번 주 마감인데 잘 되어가고 있는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