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개-천덕- 원적산 산행기 1
자연훼손 문제로 환경이 아주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다보니 군인들이 훈련할 장소가 없다는 성균이형 말이 조국통일의 가열찬(?) 국방문제로 볼 땐 안타깝긴 하지만, 오늘 산행으로 느낀 것은 자연훼손에 대한 각성이 현실로 다가와야 함을 실감한다. 원적산 천덕봉은 말 그대로 포대 포격 때문에 완전히 발가벗었다. 풀 한포기 나무 한포기 없는 정상마다 초병들이 텐트를 치고 있고, 정상과 정상을 잇는 능선 15m 아래까지는 풀 한포기 나무 한포기 없는 황량함 그 자체였고, 안테나를 설치해서 포격 인도를 하고 있는 포병만이 우릴 반긴다. 다행이 오늘은 포격이 없는 날이었지만 우린 포탄이 떨어지는 바로 그 장소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도심과 가까운 이천에서 이러할 진대 사람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은 말해 무엇하리오. 처음 이천에 자리 잡았을 때는 말 그대로 자연의 정취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이 도로가 뚫리면서 물류창고가 들어차고 한적했던 자신의 집은 어느새 도심 한가운데처럼 되어버린 이 현실이 안타깝다는 근식이 말이 오늘 하루종일 맑은 봄 하늘을 뿌옇게 매워버린 황사처럼 내 가슴에 들어왔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강원도로 터를 옮기려는 그의 말은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새벽까지 제부도 쟁이골에서 학교애들하고 수련회를 하느라 시간을 놓쳤다. 녀석들을 다른 샘들에게 맡겼다.
03:30 집에 도착하여 잠깐 잠이 들었다.
07:50 집사람이 전화로 나를 깨운다.(집사람은 교회에서 새벽 기도 중) 이크! 늦었다. 옷을 갈아 입은 후 대강 머리감고 얼굴 씻고, 보온 도시락 싸기 시작한다. 산행 시작하면서 나 혼자 하던 버릇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김영돈이가 그리 부러워하던 계란후라이를 밥 위에 얹고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 북한산 숨은벽 탈 때 내가 싸온 보온도시락이 그리 부러웠단다. 그런데 한북정맥 탈 때 자기도 보온도시락 싸왔더니, 이번엔 내가 보온도시락 안에 계란후라이 싸왔더란다. 워매~ 환장하겠더란다.)
08:30 출발한다. 놀토라 차가 없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1시간 10분만에 도착해야 한다. 동원대로 차를 몰았다. 시속 150, 160. 이거 미치겠군. 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자욱한 황사가 온 이천을 뒤덮고 있었다.
“허허 이거 씨×랄 황사, 우리가 다 마시겠군.”
09:00 성남 IC에서 빠져서 3번 국도로 오는 것이 빠를 것 같아 길을 잡았는데, 아뿔사, 길이 장난아니다. 막힌다. 그냥 외곽 타다가 중부 타고 서이천IC에서 빠질 걸. 시속 40km다. 이러다간 제 시간에 도착 못할 것 같았지만 설마 10시까지 년석들이 다 오겠나 싶어 맘의 여유를 잡아본다. 그래도 녀석들과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기대된다. 더구나 나에게 저녁 가든 파티는 아주 매력적이기까지 하니까!
09:50 동원대 주차장. 간신히 시간을 좀 넘겨서 도착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보인다. 혹시 내가 잘못 찾아왔나하는 우려와 너무 빨리 왔나 하는 안도감이 동시에 스친다. 하여튼 트렁크를 열고 이제부터 배낭을 꾸린다. 25L, 42L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오늘 분위기로 보아 내가 지고 가야할 짐이 많을 것 같다. 애라 모르겠다. 42L. 결정했다.
한창 꾸리는데 원기의 그 카랑카랑한 소리 들린다. 지척이다. 새로 가져온 우신등산반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배낭에 다는 표식까지.
갑자기 차가 한 대 굴러온다. 무슨 연예인 실은 차인가보다 했다. 그런 차를 무슨 차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 갖고 싶었던 차라 유심히 곁눈길로 보는데 창문이 하나 열리면서 누군가 인사한다. 헛! 바로 강근식! 녀석은 무슨 코란도나 랙스톤, 뭐 이런게 어울리지 않나 싶은데 그리 나쁘진 않다. 반가운 얼굴이다. 녀석을 보면 자연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표정이 그대로 자연이다. 억지로 그릴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는 얼굴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 하늘의 옷은 바느질 흔적이 없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매끄럽다. 보기 지겨운 놈은 아닌 건 분명하다. 반갑게 인사.
곧이어 한태균 보인다. 녀석! 가장 먼 데서 온 놈이 먼저 왔나보다. 그리고 제수씨, 아들과 딸내미까지, 게다가 성균이 형까지.
태균이 오랜만이다. 성실맨 한태균. 지리산에서 보인 그의 가족애. 아마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선 가장 성실맨이다. 물론 그 내막까진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먼 대전까지 내려가서 아직까지 잘 사는 것 보니 그렇다. 같이 있는 동익이와는 정반대일세 그려. 제수씨도 인정하시죠?
그리고 안검사 안상돈이다. 반갑다. 녀석하고는 긴 인연이다. 3학년 때도 같은 반, 대학도 같이 다녔고, 게다가 문무대 사건으로 동시에 짤렸다. 그리고 강제징집. 기나긴 세월을 서로 무심하게 지켜만 봤다. 세월이 지나 산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같이 온 제수씨. 주말부부란다. 상돈이가 안동으로 발령났단다.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만도 한데 이렇게 남편 동창 산행까지 따라온 거 보니 무척 사랑하나 보다 했다. 지난 주 안동에 있는 청량산을 탔다면서 오늘도 이렇게 왔단다. 나중에 우리 산행팀이 안동 청량산을 갔으면 무척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사음악회로 근자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산세가 넘 아름답고 뛰어나 퇴계 이황이 이 청량산을 평생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는 산이라 더욱 그러하다.
곧이어 마지막으로 이원호 등장. 녀석은 처음 본다. 첫인상은 ‘정말 얼굴 크다’ 였다. 성지건설 토목공사 전담이란다. 주로 외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국내 생활이 서툴단다. 하여튼 만나서 반가웠다.
이렇게 어른 9명, 아이 2명이 산행을 시작한다.
황사가 조금씩 기승을 부리는 오전 10시 4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