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적산 산행기 2
자연훼손은 동원대에서 시작된다는 느낌이다. 산허리를 뚝 잘라서 교정을 세웠다. 절개지로 등산로는 잘렸고, 학교 건물 뒤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그래서 오른편 산 아래로 내려다보면 임도가 보이는데 가파른 길을 내려가서 다시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처음부터 난코스다. 등산로는 아직 잡지 않았는데 입구로 가기위해 내려가는 길은 급하다. 제수씨(상돈 처)는 벌써 난색이다. 내려서자마자 코앞에 등산로 입구다. 원래 등산로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급하지도 옹졸하지도 않다. 산짐승들이 다니는 삶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만든 등산로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코스만 생각한다. 동원대를 짓다보니 없어진 등산로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섬뜩해진다.
10:45 통나무 계단길을 가파르게 올라가는 일행들의 숨소리가 만만치 않다. 앞서 뛰어가던 태균이 둘째 아들 놈이 잘도 가는가 싶더니 힘이 드나 보다. 조금씩 쉬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선두는 근식이가 후미는 내가 서는 게 좋을 듯하였다. 그런데 제수씨들의 발걸음이 좀 무거워 보인다. 처음부터 산행이 좀 되다. 그래서 중간에서 조절하면 보폭을 맞추는 게 낫다 싶어 중간쯤 가기로 작정하고 원호랑 이런 저런 얘길하며 걷는다. 처음 대하는 놈인데도 동창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게 우리사회의 특수성인지 아니면 우신의 특수성인지, 아님 나의 특수성인지 구별은 잘 못하겠지만 하여튼 서로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 수 있는 좋은 계기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대학 건물 옥상을 내려다 보면서 절개지의 능선을 타고 한참을 오르며 내려가며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심상치 않다. 고수의 발자국 소리다. 산을 타다보면 가끔 이런 고수의 발걸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산에서 느낀다는 게 다소 신기했다. 고개를 얼핏 돌려 보니 온통 검은 색으로 무장한 고수와 고수에 준하는 여성 한 분이 후다닥 달려온다. 길을 비켰다. 근데 우릴 보며 웃는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고, 날 아는 사람인가 해서 눈을 마주치려니 쑥스럽게도 날 지나쳐 가고, 앞쪽에 있는 근식이를 불러 세운다. 그러더니 반갑다고 악수며 포옹을 한다. 이천 산악팀이다. 가만히 보니 작년 지리산 산행 때 같이 갔던 일행이다. 뒤따라 오던 태균이 처, 그리고 딸네미를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상돈이를 보고 알아봤단다. 그래서 급히 앞쪽으로 뛰어왔단다. 이렇게 약속도 없이 산에서 만나는 일은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천재일우에 가깝다. 하여튼 반갑게 인사를 하니 어느새 송전탑이다.
이천의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함을 증명하려는 듯, 전선이 연결되지 않은 채 갓 세워진 거대한 송전탑은 차라리 흉물스럽다. 올려다보기가 만만치 않게 높이 솟았다. 목이 아플 정도로. 주위의 나무들은 모두 잘려 나가고, 송전탑을 옮기느라 좁은 임도는 크게 늘려 있어 산림 훼손이 만만치 않다.
11:50 정개산 정상이다. 표지석에는 정개산(소당산), 407m로 기록되어있다. 정(鼎)은 ‘솥 정’이고, 개(蓋)는 ‘덮을 개’이니까 솥뚜껑산이란 의미이고, 그것의 순우리말은 ‘소댕’이니까 ‘소댕산’이 맞는데 잘못 기록되어있다. 더구나 높이도 480m 인데 407m로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 급하게 설치하다 보니 실수했나 보다. 요즘은 산 정상마다 각 마을이나 동네의 산악회에서 정확한 검증 없이 산봉우리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우는 일이 많은데 공인된 단체가 아니라서 그런지 간혹 이런 실수가 눈에 띈다.
슬슬 배가 고파온다.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다. 초코파이 하나를 꺼냈다. 마침 원호가 옆에 있어서 하나씩 배어 물었다. 정이란 나누어 먹는데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원호랑 금방 가까워 진 느낌이다. 각자 허기를 달랜다.
길을 재촉해간다. 이제 사방은 온통 황사 바람이다. 바람이 시원하긴 하지만 황사 바람이라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멀리 보이는 천덕봉의 벌거숭이 모습은 금강산 가기 위해 북쪽에 첫발을 내디디던 그 모습과 흡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산행은 처음이지만 오히려 이런 경험으로 환경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였다, 앞섰다가, 뒤서다가 하면서 진행하다보니 선두와 후미가 갈라진다. 선두엔 원기, 근식이, 성균이 형, 태균이 막내 아들, 후미엔 나와 원호, 태균이, 태균이 처, 태균이 큰 딸네미, 상돈이, 상돈이 처, 이렇게 7명이 섰다. 앞서가면서 라면을 끓이겠다는 원기 말이 생각났다. 아뿔사, 물은 내가 지고 있는데, 먼저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후미에게 말해놓고 먼저 간 선두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선두와 후미는 약 300-400m 차이가 났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후미도 안보이고 선두도 안보인다. 안사람들이 많이 지친 것 같아 걱정이 들었지만 산행에서 오히려 위로의 한마디는 독이 될 수 있기에 묵묵히 선두가 있는 곳까지 갔다. 다행히 선두는 멀리 벌거숭이 산 밑에 자리를 잡은게 보였다. 아마도 천덕봉이리라. 천덕봉 바로 밑에 바람을 피해 있었다.
1:30 도착하니 이천 산악팀에서 벌써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근데 우리 라면은? 아뿔사 안상돈 배낭 속에 있단다. 그럼 도착할 때까지 이천 산악팀 라면이나 얻어 먹을 수밖에. 그리고 술 한 잔도. 히히 꿀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