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여행은 때로 자신의 슬픔을 내밀하게 조우하러 가는 여정일 때가 있다.
문경에서 귀농하고 있는 친구 덕배를 만나러 가는 1박2일이 그러했다.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도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가장 가까운 아내의 뜻도 헤아리지 못해 혼나기 일 쑤이고
사사로운 분별심에서 자유롭지 못해 힘들어 하는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나는 애써 혼자만의 여행을 선택했다.
떠나기 전 수삼일 이어졌던 과음과 마음의 상심이 겹쳐 설사로 3kg 가까이 몸무게가 줄어 컨디션이 엉망이었지만
오히려 그 곳에 가면 힐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가용을 운전하고 갈 때보다 훨씬 느긋하게 차창 밖 풍경을 무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누구랑 이야기를 섞을 필요도 없이 텅 빈 시선을 창 밖에 던진 채 나는 요 며칠 지인들에게 닥친 우울한 소식을 회상했다.
도박하다가 9억 재산을 탕진한 후배, 여러 아픔을 겪다 이제 안정을 찾아가다 페암에 걸린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후배도 그랬고 친구도 그런데 참으로 담담하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분개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가은읍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 태양이 작렬한다.
습한 바람을 동반한 뜨거운 태양이 치근덕거리며 맹렬하게 온 몸을 휘감아 버린다.
버스에서 괜찮았던 배가 다시 꿀룩꿀룩 징후가 나타났다.
그래 마음의 아픔이든 몸의 아픔이든 다 비워내려 이 곳에 왔으니 한 바탕 쏟아버리자...
버스 여행 최악의 시나리오는 주행 중 파도처럼 밀려오는 똥마려움인데 –그게 설사인 경우 최정점을 찍는다 – 다행히 타이밍이 좋았다.
일을 치르고 나니 한결 컨디션이 좋아졌다.
덕배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친한 벗이면서도 뭐하느라고 이렇게 만나지 못했는지...
다쳐서 절룩거리는 다리보다는 짧게 짧은 머리에 시선이 먼저간다.
반 이상을 차지한 덥수룩한 흰 수염과 흰 머리 카락이 완연한 노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아직도 어려 보이는 내 모습이 참으로 민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의 생각일 뿐, 우리는 금새 오랜 해후의 반가움에 수다스러워졌다.
세차라고는 단 한번도 안했을 것 같은 트럭에 올라 타는데 그래서 더욱 정겹다.
미옥씨는 여전히 단아한 미소 – 모나리자 미소 보다 훨씬 예쁘다 –로 인사를 건넨다.
미옥씨를 빼다 박은 율이도 동자승보다 귀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시간의 아들인 새벽이와 공간의 아들인 산의 우주적 합일체인 율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는지 율이란 이름의 장엄함에
상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닭장안에 왕겨를 까는 작업을 도와주려고 삼륜 수레를 끌고 내려가다 그만 도랑에 바퀴가 빠져버리고 말았다.
덕배는 나보고 일 정말 잘못한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그래도 학교에서는 잘하는 편이라고
애써 우기며 풍부한 사례를 들어 주었다.
계곡 물에 그늘 막을 치고 평평한 돌로 술상을 만들어 놓고 조그만 나무 의자로 계곡 주점을 차려 놓았는데,
옛적에 이태백이 친구들하고 이렇게 술마셨을 꺼란 생각이 들었다.
술상용 돌이 작아 다른 돌을 구해다 맞춰 놓았는데 높이도 맞고 서로의 요철이 딱 들어 맞는게
이 놈들은 필히 천만년전 암 수 한쌍이었을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막걸리, 덕배는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오래 전 우리가 밤새 낄길 거리며 나누었던 유머가 지금 개그맨들이 써 먹고 있다고
되지도 않는 자부심에 우쭐해 지기도 하고, 유머와 문학의 뿌리는 하나일거라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근거로 기호학이라는 학문적 이론을 들이대기도 했다.
내게 문학적으로 자극을 준 친구들도 있지만 덕배는 문학적 싸부에 가깝다.
나는 그가 추천해 준 시인들의 시집을 모조리 읽었고 문학이 본령은 서정성에 있다는 말부터
덕배가 내게 해 준 수많은 메시지를 수없이 되새김질하며 나는 그 말들을 십계명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며 은청색 어둠이 내리자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차가워졌고
덕배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늦은 밤 숲속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그의 삶을 이해하겠다는 것일테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투명한 슬픔앞에 얼마간 쓸쓸해 지기도 했지만, 맑은 술 한잔에 그 슬픔을 태울 줄도 알았다.
인생은 수학문제처럼 풀면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언제나 문제를 푸는 과정일테니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진심어린 태도가 중요하겠지...
오랜만의 만남 속에 예전의 사건들이 호명되었다.
우리는 그 옛날 우리가 아픈 그 이야기들을 나누었듯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상처들을 보여주며 위안을 받았다.
숲 속 계곡 주점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시냇물처럼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