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회화는 제랄드 다비드의 <캄뷰세스왕의 재판>입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캄뷰세스 군주가 돈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한 판사에게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묘사한 그림이지요.
살가죽을 벗겨내는 참혹한 장면인데도 피가 낭자하게 흐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 광경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끔찍함에 치를 떨거나 숙연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굳게 다물고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예 시선은 저마다 다른 곳을 향하고 있네요.
소년만이 비감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멀리 시민들의 모습도 차분하고 냉담하게 보이네요.
이 그림은 14년전 하드 코아 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장윤현 감독의 영화 <텔미 썸딩>에서 모티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텔미 썸딩>을 보면서 우리들은 내게 말해지는 그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원천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텔미 썸딩>은 열린 결말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요...
그 만큼 사건속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1명일 수도 있고 2명일 수도 있고 또 여러명 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우선해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무언가(something)를 이해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이죠.
매 순간 매 상황마다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단면일 뿐이고
중층적으로 겹쳐있는 세계는 온전히 드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어차피 언어(메시지)는 세계를 분절할 수 밖에 없고 그 단면 마다의 간격은 불연속의 심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이의 공간을 상상하거나 분절된 단면을 재구성해서 완결된 서사로 인식합니다.
그 상상력의 빛깔과 재구성하는 벡터의 방향이 세계관(정치적으로는 정파성)이겠지요.
회화 <캄뷰세스 왕의 재판>에서 우리의 시선(내면)을 바라보는
소년의 순수한 시선을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합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집단들의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보며
회화 <캄뷰세스 왕의 재판>과 영화 <텔미 썸딩>이 떠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