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펌 입니다
이름: 사도 바오로
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3/10/17(금)
간악히 양심도 없이 조선의 데스크를 타는
칭찬 릴레이 : 전여옥 여사를 감히 칭찬합니다
제 허접한 글솜씨로 그녀를 거론하기가 참으로 겸연쩍을 정도로 그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요, 시대가 낳은 인물입니다. 물론 그녀에 대해 세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지만,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영웅을 원하고 반면에 희생양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지금 이 시대에 그런 야누스의 낯짝으로 다가오는건 온전히 시대의 잘못일 뿐입니다.
전여옥,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녀가 무슨 한식당이나 지난날의 작부(매미)집 분위기를 연상한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십시오. 분명히 그녀는 시대의 트렌드에 가장 합당한 시각과 풍모를 겸비한 여자입니다. 일찍이 ‘일본은 없다’고 그리고 ‘대한민국은 있다’라는 베스트셀러를 남길 정도로 뛰어난 감각과 글발을 갖춘 글쟁이요, 여성 최초로 특파원 생활을 했던 선구자적 인물입니다. 비록 대학은 이화여대밖에(?) 못 나왔지만, 그녀가 가슴 속 깊이 품었을 유학파들에 대한 소외감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소위 메인 스트림에 다가가려는 진정성을 유지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종교적 신념에 투철한 이들조차 자신의 마음에 자기만의 신을 형상화하고 그 형상화된 신을 믿습니다. 그녀가 방송사 기자생활과 특파원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동안 그녀가 만났을 무수한 메임 스트림들의 생활에서 그녀의 시각이 쌓여왔을 뿐입니다. 아직 40대 중반의 나이에 ‘사랑과 섹스에 관한 20가지 법칙’을 되뇌일 정도로 솔직한 성격이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그런 솔직함이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이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무슨 개뼉다구 같은 역사니 철학이니 그런 관점이 필요합니까.
상고밖에 못 나오고, 번지르르한 단어 한마디 구사도 못 하는 사람이, 더구나 이마에 주름살이 크게 잡힌 마이너리티가 나라의 대통령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그녀에게 가당키나 한 현실일까요? 그녀는 이 사회가 잠시 미쳐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픈 겁니다. 이런 생각이 그녀만의 생각인가요? 아니죠. 그녀가 만나는 대부분이, 심지어는 사회의 지도자로 존경받는 ‘사’짜 들어간 양반들 모두가 그렇잖아요. 그녀는 단지 그들의 생각을 대변해준 거죠. 아니, 칼럼니스트가 일단의 지도그룹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은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요?
더구나, 작년 그녀가 정치적 지도자로 따르던 정몽준 의원이 뛰어난 패션감각과 진솔해 보이는 어눌한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이 사회가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분노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의 그녀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해 준 신문이 조선 아니었습니까. 노무현을 버렸다는 그 신문에 그 버림받은 노무현을 다시 한 번 집어던진다고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요.
당신이 어찌 그리 그 여자의 심리를 잘 아냐고요? 아! 그녀도 뮤지컬 관람하던 대통령의 심리를 안다잖아요. “아이 낳느라고 마누라는 목숨거는 동안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술 퍼마시는 그런 남자들의 심정과 노무현 대통령은 비슷하다. 태풍과 싸우느라 국민들은 비장하게 사투를 벌이는 동안, 달리 대책이 안서니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을 보며 잠시라도 대통령이라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비껴가고 문제해결을 비상식적 방법으로 하는 법이다” 이런 그녀를 저나 당신이 모를 리 없죠.
어쨌든 그녀는 보기 드물게 진솔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여자입니다. 단순하고 무식하면 골치 아프다지만 단순하면서 유식한 그녀가 무슨 꼬투리를 잡히겠습니까. 그녀의 글을 한 번 찬찬히 읽어보세요. 단순하게 말씀하시잖아요. “짜샤! 찌그러져 있어!” 얼마나 화끈합니까. 배운 게 죄라고 그런 속내를 이리저리 말을 돌렸을 뿐, 그녀의 일관됨은 돋보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 게 좋았다”는 칼럼부터 “노대통령? 신경 꺼. 관심끊은 지 오래야”까지 분명히 어긋남 없이 말씀하시잖아요.
물론, 이런 그녀의 당당함의 배경에는 KBS 기자 시절이 있죠. 1981년 입사해서 “땡전 뉴스”를 통해 이미 정치적 감각이 가다듬어진 거죠. 힘있는 자에게는 침묵을, 힘없는 자에게는 싸대기를... 이런 냉엄한 현실인식이 그때부터 싹트고 그녀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충실하게 말을 한 것인데, 이렇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시대의 흐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쓰는 용기를 누가 따라오겠습니까. 논객들은 좀 배우세요!
“버림받은 여자보다 더 슬픈 건 잊혀진 여자다”는 싯귀절도 있잖아요.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알아주고 누가 밥 먹여 줍니까. 그렇다고 이놈 저년 모두가 대통령에게 시비 거는 판에 살살 썼다가는 어느 누가 그녀를 ‘전여옥’인지 ‘김자옥’인지 알아줄까요. 당연히 오버 해야죠. 더구나 백 년을 이어온 대한민국의 양심 ‘조선일보’가 시시껄렁한 글 따위를 실어나 줄까요. 먹물들은 차고 넘치는데, 그렇다고 그녀가 간판이 됩니까? 아니면 얼굴이 좀 받쳐줍니까? 도무지 그녀의 글에 과잉반응하는 이들의 협량함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팩트를 왜곡해서 말하고 있다고 삿대질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역사란 무엇인가’도 읽어보지 않으셨나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기사도 마찬가지죠. 팩트를 사진 찍듯이 전해주는 기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바부탱이죠. 전여옥, 그녀가 기자 생활로 터득한 감각으로 팩트를 ‘내 꼴리는 대로’ 해석하는 건 기본 아닙니까? 조선이 지금까지 밤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언론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만큼 그녀는 시대의 노하우를, 언론의 진수를 알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글에서 착하디 착한 신랑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바가지 긁는 히스테리성 증상이 엿보이는 건 그만큼 그녀가 절실히 애정을 받고 싶어한다는 거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죠. 그녀는 참 넓은 여자입니다. 지금이라도 자리 한 번 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요. 그녀의 진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언제나 시대는 악녀를 요구합니다. 팥쥐가 없이 콩쥐가 없고, 마녀 없는 백설공주는 종사관 없는 다모입니다. 잔다르크가 그랬고, 마타하리가 그랬고, 김수임이 그랬습니다. 그녀가 보이는 모습은 시대적 요구에 대한 부응이고 그녀가 갖는 역사적 통찰력입니다. 어찌 이런 것들을 감수하고 저 역사의 강을 거스를 수 있는 자가 있으오리까. 그녀는 정말 ‘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같은 존재입니다. 기필코 알을 부화시키고자 하는 모성본능으로 뜨거운 바다모래 위를 기어가는 한 마리의 거북입니다. 그녀가 있었기에 우린 먹물들의 감춰진 몰골을 볼 수가 있고, 그녀가 장렬히 기득권자라 불리는 메인 스트림들을 위해 산화함으로써 이 땅위의 추악한 돈과 학벌의 실체를 지켜볼 수 있는 겁니다.
5년만 참으면 된다는 저들의 인내를 준열하게 꾸짖으며 “당장 내려 오라”고 외치는 선구자적인 그녀를 칭찬하지 않고 과연 누구를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우아하게 골프도 치고, 캐비어랑 원숭이골을 섭취하며 고담준론을 즐기며,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아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 미국시민권을 취득해서 아이가 분단의 비극인 병역의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래서 무게감 넘치는 대통령과 계층간에 서로 넘보지 않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미덕이 숨쉬는 사회를 소망하는 그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냅니다.
그런 사회를 꿈꾸며 기득권 수호의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그녀가 시대의 순교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녀가 침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전여옥이라는 그 이름 앞으로 누런 빛 마스크를 보내는 날을 상상하며 그녀에 대한 고백을 끝내렵니다. 대통령을 세 치 혀와 손가락 하나로 갖고 놀던 그 전설을 후손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래서 그 전설이 비극이었음을 전해줄 그 날을 위해 그녀를 감히 '수구전사'의 반열에 올립니다.
- 뱀발 : 아마 그녀는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었나 봐요. “잊은 지 오래야!”라고 말하는걸 보면. 어쨌든 조선과 그녀의 만남은 참으로 멋진 앙상블입니다. 그녀를 버리지는 마세요. 단지 잊어주세요. 그렇지만 조선은 잊지 마세요, 단지 버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