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한 때는 한 집에 9식구가 살았다. 만 3년을 그렇게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병든 아버지, 내 어머니, 나, 아내, 나의 두 어린 아들 그리고 고시 준비생인 동생, 제수 씨, 또 동생의 아들까지.
돈을 버는 사람은 교사인 나와, 직업 군인이어서 벽제의 부대로 통근하는, 간호장교인 제수 씨. 마누라는 많이 힘들어했었지만, 난, 그 땐 참 행복했었다.
극심한 고부간의 갈등....
지금, 어머니는 독거 노인으로 혼자 사시고, 뜻을 이룬 동생 가족은 분가, 임지인 전라도 광주에 산다.
마누라는 38살에 교대 3학년에 학사 편입, 지금 초등 학교 교사로 5년째다.
마누라가 경제력이 생기며, 짐작대로 난 마누라의 눈치만 보고 산다. 비교적 젊으셨던 어머니와 함께 살림할 때의 상당히 순종적이었던 마누라와는 완전 대척점임을 확 느낀다.
하긴 그 나이에 젊은 학생들도 극도로(?) 어려운 편입에 임용고사까지... 얼마나 대가 세겠는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억울했던 15년 시집살이를 악다구니로 되새김질하며 내 염장을 지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쨌든 좀 늦었지만, 아내도 좋은 직업을 가졌고 - 그 과정에서 나도 힘을 많이 보탰다. - 내 동생도 번듯한 일가를 이루었고, 우리 애들도 건강하게 자랐기에 아내만 옛날의 아내라면 참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젊은날의 고생을 억울해 하며 과거를 저주하고,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필요할 땐 같이 살고 이제는 당신을 고려장시켰다고 내 가슴을 저미신다.
각설하고, 지금은 각방 쓰고, 극히 필요한 말만 하며 아슬아슬하게 가정을 유지하고 산다. 엄밀히 말해 고3이 될 아들과 중3이 될 막내 아들 때문에 그나마 서로 이혼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나에게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마누라가 아들 두 넘만, ‘부러진 화살’ 영화구경하고 와서 내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물론 마누라가 주동했다. 막내(중3)가 영화 구경 간다고 하기에 "나는?" 하고 물었다가 "엄마가 세 매만 예매 했어." 아들들 앞에서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러고도 함께 살아야 하나?
집안이 조용하기 위해서, 나는 이제 마누라 앞에서 바지다. 모든 가정의 결정은 상의 없이 일방적 통고로 이어진다. 아니면 그조차도 없이 결과만 스스로 알게 되거나.
부부 사이가 이렇게 되기까지 내 잘못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직장 동료와 친구들과의 어울림 때문에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가정에 대한 태도의 변화와 가사 분담의 실천에 꽤 노력함에도 아직도 아내에게는 부족한 모양이다.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부부금슬을 회복하려는 노력에도 한계를 느낀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날게 아닌가.
영하 20도 가까운 추위에 당뇨, 고혈압, 관절염으로 고통 받으며 혼자 계시는 어머니한테나 가봐야겠다. 만나면 어머님의 힘겹고 고독한 만년을 보는 마음 또한 괴롭다. 그렇지만 어쩌랴 ! 현실의 내 삶인 것을.
2012.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