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를 동호회란에 올렸는데, 혹 읽으시려는 선배님들을 위해 로그인이 필요없는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요즘의 날씨예보는 꽤 들어맞는다. 장마가 올 것이라고 하더니, 이내 뚝뚝 비가 떨어질 듯하다. 멀리 도봉산과 사패산의 봉우리는 연무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서서히 내려앉는 무게감에 마음마저 무겁다.
이 상태로 어제의 잔치를 회상하려는 일이 쉽지 않다. 더욱이 의무감에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 강열한 햇빛과 후텁한 열기가 오늘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벌인 행사의 즐거움과 아쉬움이 가지지 않았는데, 날씨가 망각을 재촉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래서 감정일 따름이다. 푸념을 해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커튼을 내리고, 억지로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덩그러니 주어진 점수표 하나를 펴놓고.
이번 월례회는 지난달에 예고되었던 대로 예사롭지 않았다. 형님들의 참석으로 특별함을 지니게 되었다. 전임 회장님의 배려로 우리(완이와 나)는 특별한 모임에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형님들 중에서도 특히 골프에 특별함을 지닌 분들에게 짝이 지어졌다.
더위 때문에 의례 하던 오전의 연습도 포기했다. 전날 체력을 감안한 완이의 권고 때문이기도 하다. 일찍 메밀을 후루룩 말아먹고, 옅은 색안경으로는 가리지 못할 햇살을 받으며 범수의 옆에 앉아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몸으로 하지 못한 연습을 마음으로나마 갈음하려고 일찍 서두른 탓에 여유가 있었다. 헌데 그 여유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들 마음이 설레 조바심이 났는지 많은 친구들이 눈에 띠었다.
좁은 처마 밑에 햇볕을 피해 앉아 조잘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형님들의 동향을 알고 싶어서다. 옆에는 낯선 아저씨들이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잘거린다. 혹시 하는 생각에 눈여겨봐도 눈빛이 부끄럽다. 2년의 형님들이라면 모를까, 3년의 형님들과는 울타리 안에서도 비벼댈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들어오며 밀려나신 분들이다.
검은 옷과 벙거지에 짓눌린 갑갑한 동안에 그래도 이분들에 대한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우리 때에는 개교 때의 교훈이 바뀌어 양교장님(?)의 뭐뭐뭐였는데, 처음에는 이종근교장님(?)의‘강건’이 들어 있었다. 당시 거수경례에는 응당 조동아리도 함께 했는데, 이 형님들의 구호가 ‘강건’이었단다(먼 옛날에 주워들었는데 맞는지 모름). 아침마다 또 생각이 미칠 때마다 꿈틀거리는 고추의 처리가 힘들었을 때, 어찌 ‘강건’이 제대로 발음이 되었겠는가. 모범생이고자 하는 몇몇을 빼고는 다들 ‘강간’이라고 외쳤단다. 아래팔뚝과 손목에 힘을 주고 역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일자로 뻗은 채 힘찬 목소리로 ‘강간!’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어찌 아랫녘까지 불뚝거리지 않았겠는가. ‘충효’, ‘우신’에 비하면 너무나 강건하다.
준비가 덜 된 학교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느라 애를 많이 쓰셨을 것이다. 초대 교장님께서는 강건함을 유독 강조하셨을 것이고, 그 강건함을 마음에 담은 채 시간이 나는 죽죽 운동장의 잔돌을 골라냈을 것이다. 맏이라는 태생적 의무감에 강렬함까지 재촉을 받았으니, 맘짓과 몸짓이 대체로 짐작이 될 성싶었다. 첫날밤 신부로 이분들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되었다. 전투를 앞두고 벌써 기가 죽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편성표의 이름만 알고 있던 분들을 뵙는 순간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절감했다. 최배원이라는 분은 생김새부터 동네깡패였다. 강렬한 인상과 거만한 걸음걸이가 영락없다. 핸디에서부터 기가 죽었는데, 고교 때 길러진 ‘강간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옆에 유희태라는 인자한 인상의 배불뚝이 아저씨의 무게감도 느껴졌으나, 최선배님 때문에 이분의 인자함은 보이는 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뭐랄까, 앞에 분이 죽이 되도록 패놓으면 이내 다가와서 ‘니가 미워서 때린 게 아냐, 임마! 다 잘 되라고 하는 거야’하고 정리는 하는 분처럼 여겨졌다. 알고 보면 둘 다 한 통속이라는 말이다.
그 짝에 견주면, 난 좆도 아니다. 다 알다시피 내 짝은 노완이다. 완이를 떠올려보라. 공부에 집중을 오래 해서 그런지 머리는 많이 안 보이고, 젊어서 뭔 고생을 했는지 뻣뻣하게 말라버린 몸이 어디 보탬이 되겠는가. 그렇다고 입담이라도 좋아서 옆에서 맞을 때 죽는 시늉이라도 하며 빌기라도 해야 될 텐데, 그럴 위인도 못된다. 아주 더운 날 허벌나게 얻어 터져서 카트길에 말라버릴 인간육포가 될 판이었다.
하늘도 무심치 않아 참으로 다행인 게 있었다. 배정된 캐기다 아주 귀엽고 예뻤다. 아기자기한 몸매, 화사한 웃음, 목소리까지 더위를 덜어줄 정도였다. 아무리 강간한 형님들이라도 녹일 수 있기에 충분했다. 억지로 캐디까지 끌어들여 균형과 구색을 갖추고 게임에 들어갔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홀을 끝낼 즈음에 예상과 선입견을 다소 덜어낼 수 있었다. 캐디는 웃는 모습으로 조잘거리며 분위기를 녹였고, 두 형님 모두 제 실력의 발휘를 못하시는지 각자의 스윙에 매달렸다. 완이의 한탄하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첫날밤의 신부가 되어야겠다는 난 계속 떠들어댔다.
산 중턱의 그늘집을 지날 무렵에서야 형님들의 가슴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동문 골프모임이라는 것도 확실히 느껴졌다. 의젓함과 인자함을 두루 갖추시고, 저 밑의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다. 자기 공도 개판인데, 옆의 동생 것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말이다. 잘 되지 않아 가슴에 홧기운이 가득한 채로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정겨웠다. 이 단계에서 나는 두려움에 떠는 신부가 아니었다. 흥건하게 젖은 봉숭아였다.
왠 꽃들은 그리도 많은지. 언덕마다, 빈 공간마다 꽃을 가꾸었다. 양귀비꽃이 해저드 물가에서 하늘거리고, 꽃집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피어 있다. 색들도 다 갖추었다. 빨갛고, 노랗고, 보라색 등등. 더위와 점수 때문에 이 모두를 즐길 여유가 없었으나 심고 가꾼 주체측의 노력은 실감했다.
전반을 마치고, 시원한 생맥주를 순대에 곁들여 마시면서 더위를 식혔다. 후반 라운드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완전히 한 팀이 되었다. 더구나 그 시점에 유선배님은 구수하게 여자 얘기도 꺼내셨다. 내용인즉, 유선배님이 최선배님께 어떤 예쁜 여자를 부탁하는 것 같았다. 딴짓을 하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워 다 들었지만, 안 들은 것으로 하는 게 낫겠다. 아가씨는 계속 싱글거리니 분위기는 익을 대로 익었다.
후반의 속도감이 빠르게 느껴졌다. 순전히 익숙함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몇 홀 남지 않았단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그림자는 길게 따라온다. 온도는 해를 따라가지 못하여 땀을 욹어낸다. 연신 물통의 물을 들이킨다. 유선배님은 물맛이 참 좋다고 몇 번을 읊으신다. 대회이니 만큼 점수표를 홀깃 살핀다. 이제는 두 형님을 위로해야 할 판으로 돌아간다. …… 그렇게 점수도 보태지고, 시간도 보태진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가끔 절대성이 용인되어서 좋다. 따지고 보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고등학교 몇 해 먼저 들어갔다고 몇 십년이 지나서도 선배님이시고, 이 변하지 않을 절대성은 상대성이 판치는 세상에 산뜻한 샘물과 같다. 앞에 있는 이의 흰머리를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마음은 고등학생이 되어버린다. 이나 저나 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람관계의 촌수가 엄연히 살아 있어서 좋다. 누구를 만나면 어린아이가 되고, 누구를 만나면 젖은 여인이 되고, 또 누구를 만나면 뜻하지 않게 무언가 된다. 이 뿐이랴. 누구를 만나면 그 가슴에 나의 어떤 일면이 보인다. 서로 제 가슴에 상대의 모습을 담고 만난다. 형님들의 얼굴에서 교문에서 교실까지 이어진 길, 그 옆에 피어난 개나리, 앞뜰 잔디에서 짬을 내어 번식해가는 토끼풀, 일그러진 선생들의 얼굴 등등이 피어나온다. 그래서 더더욱 반갑다. 이리저리 엮어 만든 인연의 찌꺼기들이 다 모여야 비로소 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해가 더 내려갈 때에 모두 제 옷을 차려 입고 한곳에 모여 앉았다. 속은 다 썩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왁자지껄이다. 게임의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다. 선배님들의 순서에서는 잘 알지 못하여, 박수나 치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시상의 결과 우리 조에서 두각을 보였다. 완이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글을 빌어 배도현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 덕분에 나 또한 상을 하나 거머쥐었다.
선배님들의 회장님이 인사를 하시겠단다. 양복을 급하게 챙겨 입는 이를 보니, 같은 조의 유선배님이시다. 최회장님을 대신해서 연설을 하신다. 두터운 몸에 붙은 두 팔이 쉴 새 없다. 위로 옆으로 또 크게 휘둘리는 팔에서 그 마음속의 흐믓함을 짐작하겠다. 저 팔과 손이 ‘강간’을 외치며 힘을 주던 바로 그 물건이다. 김춘수의 시를 읊으신다. 다 생각이 같다. 네가 나를 불러서야 비로소 나는 꽃이 된다. 맞는 말을 늘어놓는 게 詩인 모양이다. 선배가 있어야 후배가 있고, 후배가 있어야 선배가 있다. 너에게 난 꽃이고, 나에게 넌 꽃이다. 이 자리에서 우신고등학교는 궁동에 없다. 저 형님들, 이 친구들 표정에 조각조각 다 담겨 이리저리 흩어져 돌아다닌다.
(완이가 점수표를 건네 주며 툭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잡스럽게 적었습니다. 옆에 앉으셔서 제 손을 어우만져주신 유형근 형님의 두 손에서 전해오는 따뜻함도 큰 작용을 했습니다. 또 읽은이의 흥미를 조금이나마 더하려고 형님들에 대한 표현이 제멋대로 과장되었을 수 있으나, 존경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