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일찍 나서는데 날씨가 그저그렇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데 찌뿌등한 날씨가 차라리 운전하는데는 편하다.
삼십분 이상을 운전하고 가는데 동승한 두여자가 아무 말이 없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집사람은 입을 굳게 다문채로 있고, 뒤돌아보니 딸녀석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고 창쪽으로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카트에 짐을 내려 싣고 공항으로 들어가며 무거운 짐에 카트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자 괜히 카트를 가져 온 딸녀석에게 이것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냐고 한마디 했다.
공항에 들어서니 인산인해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나는 10년 이상을 휴가라고는 가보지 못한 것 같은데 뭔 인간이 이렇게 많냐 하며 기나긴 줄의 끝자락에 섰다.
거의 한시간 가까이를 기다려 티켓팅을 하는데 중량초과라서 초과요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집사람에게 짐을 도대체 어덯게 꾸려왔냐고 한마디 했다.
두번째 짐은 아예 항공운송 상 단일중량을 초과해서 초과요금이 아니라 짐을 빼야 한다고 해 수백명이 늘어서 있는 창구에서 짐가방을 열고 짐을 꺼내 옆에 서있는 마누라 가슴팍에 안기며 눈을 흘겼다.
내가 제일 꼴불견이라 생각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초과요금을 내고 항공권을 받아들어서 나오니 두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으니 아빠가 초과요금 낸 창구 바로 뒤 의자에 앉아 있단다.
아무말없이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두여자는 밥이 안 넘어간다고 호박죽을 시킨다.
그나마도 한 그릇은 남긴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내려오니 출발시간이 다되어 가고 있어 출국게이트에 함께 섰다.
사람이 많아 줄이 길고, 핸드캐리 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와 중량때문에 실랑이하는 여직원을 보고 있으니 또 짜증이 난다.
인상을 쓰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딸이 웃는다.
잠시간의 실랑이가 끝나고 딸이 출국장을 나서며 엄마를 바라보는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마누라 눈에도 눈물이 하나 가득하다.
난 웃었다. 그날 처음으로 웃었던 것 같다.
딸을 떠나 보내고 난 갑자기 담배가 피고싶어졌다.
편의점을 우왕좌왕하며 찾고 있는데 집사람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한다.
다녀오라며 담배를 사고 공항 출구에서 집사람을 기다리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집사람 얼굴에 세수를 한 기운이 남아있다.
인천공항 주차장으로 나서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주차장에서 비를 맞으며 담배를 한 대 물고 딸녀석과 마지막 통화를 하는데 녀석은 생각보다 밝게 인사를 한다.
서글픔은 모두 부모의 몫인가 보다 하며 담배불을 끄고 차에 올랐다.
집사람이 모처럼 친정을 가고 싶다고 하여 처갓집으로 내비게이션을 세팅하고 달리는데 생전 처음으로 인천대교를 달렸다.
참 긴 다리다.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집사람은 별 말이 없다.
세시간의 운전 끝에 처갓집에 도착하여 피곤하다는 이유로 장인어른을 밀어내고 침대에 누워 두시간을 그냥 잤다.
일어나니 장인장모님 저녁식사를 나가서 하자고 해 모시고 나가 그저그런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는 둘이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하고는 서천 마량포구로 한시간 정도를 집사람에게 운전을 시키고 갔다.
저녁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니 주동이에게 댓글이 왔다.
가슴이 다뜻한 친구다.
조개구이집에 앉아 소주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과 함께한 소주에 이어 두병째다.
술기운이 올라오니 갑자기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며 눈이 시리다.
그만 가자고 일어나며 바닷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내일은 일찍 그냥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마나님이 그러자고 선선히 응한다.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함께 아침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마쳤다.
이런저런 짐을 챙기고 여덟시 반에 처갓집을 나섰다.
어제 아침 내가 느낀 감정을 두분도 느끼셨을거다. 죄송하다.
집을 나서자마자 고속도로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톨게이트를 지나 한시간만에 평택을 지나 서울 집에 도착하니 열시 오십분이다.
집사람이 기은이도 없으니 집이 더 썰렁하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훈련 들어가 있는 아들녀석이 생각났다.
편지를 한 번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주소를 마누라에게 물어보는 게 괜히 쑥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나마 남은 이틀을 어찌 보내야 하는 고민을 했다.
별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소파에 앉아 졸았다.
점심으로 칼국수를 끓였다.
생각보다 양이 않은데 꾸역꾸역 남기지 않으려고 먹었다.
낮잠을 잤다. 땀에 반바지와 티셔츠가 다 졌었다.
옷을 갈아 입으며 집사람에게 무조건 나가자고 했다.
노원역 진미통닭집에서 매운 바베큐치킨을 맥주를 시켜놓고 혼자서 또 꾸역꾸역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교회를 갈까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보니 시간이 넘어 그냥 집에서 쉬자고 생각했다.
머리가 뽀개지도록 아팠다.
이놈의 두통이 어제부터 속을 썩인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핑계로 또 다시 소파에 누워 잠을 잔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쌀쌀하면 끄고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몇번의 카톡이 딸에게서 왔다.
잘 도착 했단다.
소주 생각이 나 김치전과 감자전을 만들었다.
카톡으로 딸에게 아빠표 감자전, 김치전을 보냈다.
답장으로 딸내미표 마늘떡볶이가 왔다.
시간감각이 없다.
걘 지금 몇신데 떡볶이를 먹나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김치전에 물을 너무 많이 부어 약간은 질척하다.
집사람이 했으면 한마디 했을텐데 내가 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맥없이 소주 한 병을 혼자서 삼십분만에 비운다.
잠시 후 개그콘서트를 보는데 집사람이 신사의 품격을 본다고 리모컨을 달란다.
닌 그게 재미있니? 한마디 하며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진짜 잠 많이 잔다 하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다섯시 반이다.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데 그저께 시작한 두통이 아직도 가시지가 않았다.
출근하고 싶지가 않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어 나왔다.
벌어야지!
올 여름휴가는 이렇게 끝났다.
전에도 집에 애들이 없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무기력하게 보낸 날은 없는데 갑자기 집사람과 둘만 남겨져 있다는 생각이 무척 많이나 들었던 2박3일 이었다.
앞으로 둘이서 잘 지내는 방법을 연구해 놓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