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태주 조회수 4806 추천수 3 다운횟수 :517
2002/05/30
신부대와 남태평양의 여성들
나는 13년전에 뉴기니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에어뉴기니 비행기를 탓다. 기내에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우람한 스튜어디스들 때문이었다. 큰키에 근육질의 큰 덩치까지는 괜찬았는데, 양볼과 이마에는 문신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고 머리는 아주 꼽슬거려서 펜을 꼽아도 떨어지지 않으며 팔과 다리에는 검은 털이 많았던 아름다운 뉴기니 여자를 처음 만나고 나는 여성에 관한 편견을 어쩔수 없이 깨기 시작했다. 스튜어디스가 될만한 여성은 당연히 날씬하고 희고 여성다운(?) 세련된 외모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남태평양을 방문할 때 마다 나는 수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많은 인류학 기록들에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남태평양은 남성과 여성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하는데 아주 좋은 실험실이 되어 왔다. 마가렛 미드 여사는 사모아 소녀들이 여성이 되어가는 문화화 과정을 연구하였으며, 뉴기니 사회의 세 부족에서 성과 기질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가도 연구하였다. 프로이드의 성욕과 억압, 컴플렉스와 관련된 거대이론을 시험하고 반박하는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모계사회와 부계사회, 동성애와 일부다체제 등 혼인과 친족제도에 대한 연구들도 많았다. 그 중에 신부대(bridewealth)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
뉴기니에서 남자들이 결혼을 하려면 엄청 많은 돈이 들어간다. 신부를 데려오려면 신부대를 톡톡히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신부대는 뉴기니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돼지 10 마리 정도와 조개팔찌나 목걸이, 극락조 깃털로 만든 장식품과 멍석과 같은 가재도구들이면 되었다. 문화적인 가치재를 신부를 데오려는 댓가로 신부의 친인척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영향으로 요즈음 신부대는 위와 같은 가치재 외에도 돈을 수반한다. 특히 도시에서 많이 배우고 직업이 있는 여자를 신부로 데려오려면 수만 키나(수천만원)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신부대는 신랑쪽의 친인척들과 완똑들(친구)이 거의 분담한다. 신부대를 지불하는 행사와 연회는 마을에서 큰 잔치이고 그 이후에야 결혼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나 인도와 같이 지참금이 문제가 되는 사회와는 정 반대의 관습이다.
피지에서는 신부를 대려올 때 고래이빨로 만든 땀부아를 열개 이상 예물로 바쳐야 한다. 이것도 물론 신부쪽 친척들에게 바치는 것으로 매우 정교하고 장중한 의례가 수반된다. 신부대로 고래이빨을 바칠 때는 여러 마리의 소와 돼지, 진짜 음식인 타로와 양고나, 생활용품과 가구등도 함께 선물한다. 산 더미같이 선물과 의례용품을 쌓아놓고 양고나를 마시며 신부대를 지불하는 의식을 치룬다. 모든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부조하고 돼지와 소를 잡아 나누어 먹는다.
그러니 결혼이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단간의 선물 행위이고 교환이며 계약이다. 남태평양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노동력이었고 자산이었으며 출산력의 원천이기 때문에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신부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호혜적인 집단간의 거래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남태평양에서도 신부대를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참금이 문제가 되는 사회는 이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