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태주 조회수 529 추천수 3 다운횟수 :0
2002/07/03
축구, 럭비, 크리켓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 열광한다. '놀이하는 인간'에게 스포츠는 가장 원초적이고 집단적인 놀이문화이다. 스포츠는 전쟁이고 제의이며 예술이고 시다. 월드컵과 붉은 악마 현상은 이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축구에 열광하는 것과 같이 남태평양 사람들은 럭비에 미친다. 럭비는 그들에게 종교보다 강하다. 내가 살았던 피지 마을에서도 럭비 경기가 있는 날은 난리가 아니다. 한번은 남아공화국과의 럭비 경기가 새벽 시간에 생중계 되었는데 모든 피지 사람들은 밤새워 양고나를 마시고 새벽까지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쉽게 졌지만 피지 전사들이 싸운 모습은 오랜 동안 사람들의 마음과 혼을 빼앗아 버렸다. 피지인들은 럭비팀에게 피지 전사들과 동일한 의미를 부여한다. 바티(bati)라고 하는 피지 전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용맹하고 힘이 세며 추장과 전통을 수호하는 자들이라고 믿고 있다. 전국적으로 모든 마을과 시,도 마다 거의 매주 럭비 시합이 열리며, 럭비 경기가 있는 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남녀노소 없이 엉켜서 함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차를 두드리고 난리 소동이 벌어진다. 평소에도 마을은 항상 푸른 잔디구장 위에서 나뒹구는 젊은이들로 생동감이 넘친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이면 더욱 더 진흙창 속에서 럭비를 즐기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 함성(war cry)이라고 하는 출전 의식을 럭비 경기때 마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지방과 마을 마다 고유한 전쟁 함성 의식이 있다. TV 광고에서도 이 전쟁 함성 의식이 자주 나타난다. 그 만큼 전쟁 함성은 장엄하고 공격적이며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듯이 등이 오싹할 정도의 함성과 의례를 보여준다. 럭비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양팀은 이러한 전쟁 함성을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전통과 조상신과 혼을 불러내며, 살아있는 자들의 함성과 함께 완전히 하나가 된다. 나는 붉은 악마의 함성을 들으때 마다 이러한 남태평양의 전사들이 부르는 전쟁 함성을 떠올리게 된다.
관중들속에서 여자들의 역할은 더욱 재미있다. 부녀자들과 젊은 여인들까지 모두 럭비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선수들에게 퍼붓는 에로틱한 열정은 놀랄 지경이다. 요란한 춤을 추면서 상대편 선수에게는 성적 야유와 욕을, 자기 선수들에게는 '한번만 더!', '한번 더!' 를 끝없이 외쳐 댄다. 잘하는 선수에게 '물을 달라'고도 외친다. 참으로 찐하고 찐한 성적 유혹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이 고조된다. 한국 축구에 빠진 붉은 악마와 거리의 젊은이들 중에도 이러한 여인들의 열광이 있었다.
뉴기니에서도 럭비 경기는 피지에서처럼 열광적이다. 하지만 한 때는 크릿켓도 유행하고 있었다. 영국 신사들이 푸른 잔디 위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고 아주 복잡한 룰을 지키며 했던 크리켓 경기를 뉴기니 원주민들이 즐긴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현상인가? 물론 뉴기니의 크리켓 경기는 영국의 경기와는 전혀 다르다. 하얀 유니폼 대신에 맨발에 벗은 몸에 장식을 하고 칠을 하고 극락조 깃털을 꽂고 마치 전쟁 축제를 벌이듯이 경기를 한다. 공격과 수비가 바뀔때 마다 선수들과 마을 주민들은 광적인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고 축제와 의례를 치룬다. 이들에게 크릿켓은 전통적인 전쟁 놀이와 축제와 혼합되어 재창조된 것이다.
영국이 식민지 통치를 위해 '놀이하는'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스포츠 경기를 전파하였고,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의 경기를 자신들의 축제와 놀이와 결합시켜 새로운 놀이로 만들었다. 영국인들에게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성경도 중요했지만 럭비나 크리켓 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럭비와 크리켓이라는 새로운 전쟁 놀이를 통해 원주민들은 집단의 정체성과 전통을 확인하고 과시하고자 했다. 날조된 전통을 통해서나마 자신들의 집단성과 역사와 문화를 확인하고 이에 열광하면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자 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의 경기인 축구가 세계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통해 세계적인 열광의 스포츠가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다. 우리들의 열광속에서 우리들이 찾고 확인하고 싶었던 전통과 집단적 기억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