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청년정신 (zheh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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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14(토)
앞뒤가 맞는 정치자금 이야기
삼성의 372억 베팅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지 않는가 ?
제가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이 이회창 캠프에 준 370 억이 많으니 적으니, 노무현 캠프에는 왜 안 주었느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97 년 선거 때 5 대 재벌이 600 억 씩 해서 3000 억을 이회창 캠프에 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정도면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이야기로 아는데... 일반인에게는 심지어 서프의 대표 필진에게도 생소한 이야기인가 ?
물론 소문일 뿐 나에게 증거가 있을 리 없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라면... 사설이지만 나는 영향력 있는 주요 신문사가 아니니 여기서 사설이란 사적인 객설 이란 뜻이다.) 삼성이 이번 대선에서 300-400 억 정도 준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지 않는가 ?
김영삼이 당선한 92 년이나 노태우가 당선한 87 년에는 좀 더 큰 정치 자금이 별 탈 없이 배달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태우, 전두환의 시대에는 법정에서 밝혀진 액수만 수천억원 대 였으니 가히 수 조의 자금이 흘러 다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2 년 선거는 엄청난 수준으로 줄어든 정치 자금, 선거 자금 이 돌았단 것이다.참고로 내가 들었던 정치판의 소문들을 몇 가지 만 정리해 보았다.
(가) 노태우 집권 당시 율곡 사업은 대략 30 조 규모 였다. 그중 30 퍼센트쯤이 로비나 뇌물, 각 단계의 의사 결정에 관여한 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갔다고 한다. 물론 당시 핵심 권력층이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월간 중앙에서 읽은 내용이니 막연한 소문보단 믿을 만 하지 않은가 ?) 그러면 대략 10 조 다.
에스케이는 노태우와 사돈지간이 되면서 결국 이동통신사업권을 고스란히 챙겼다. 그 가치는 얼마나 될 것인가 ? 노태우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이미 단죄를 받았으니 지금으로선 그런 이야기가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인가 ?
그건 그렇지 않은 것이 노태우는 이미 무대에서 내려 왔지만 에스케이는 아직도 엄청난 대재벌이며 그들에게 노무현 같은 대통령 보다는 이회창 이든 누구든 그들의 이해 관계에 적합한 대안이라면 가능한 한도 내에서 정치 자금을 제공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리고 그 액수는 얼마가 될 것인가 짐작해 보라.
(2) 노태우와 전두환은 골프장 건설 때 한 곳 당 50 억 이라는 뇌물을 정액제로 해서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그 때 약 150 곳의 골프장 허가가 났으니 그 것만 해도 대략 7,500 억이된다는 계산이다. 두 전직 대통령은 워낙 손이 커서 많이 받고 많이 베풀었다고 한다.
대체로 노태우 보다 전두환이 많이 분배해 주어서 노태우는 추징을 많이 당했고, 전두환은 주변에 흩어져 있어 추징하기 어렵다고 한다. 알다 싶이 코오롱 그룹도 전두환 일가와는 사돈이다. 그 시대에 코오롱이 급성장 했다는 것도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3) 여의도에서 100 만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대략 1 조가 든다고 했다. 실제로 동원된 인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거마비는 10만원 정도이다. 하지만 100 만명을 끌어 모으기 위해선 최소한 5-6 단계의 피라밋 조직이 형성되어야 한다.
자금의 누수는 각 단계에서 일어나며 아마도 주요 언론사의 기자들과 편집국 데스크, 사주 등에게도 적절한 기름칠이 필요할 것이다. 80 년대와 90 년대 초 까지의 대통령 선거는 그동안 자신의 지역구 관리를 위해 비어 버린 지구당 위원장들과 핵심 참모들의 주머니를 보충하는 주기적인 최대 규모의 '돈잔치' 였다.
92 년, 정주영씨는 백만인 동원을 목표로 한 여의도 집회를 시도한 마지막 대선 후보 였다. 그 여의도 집회는 최악의 실패 였다. 우중충한 겨울비가 마침 내리기도 했지만, 최종 참가자에게 나눠주어야 할 금액의 10 배를 부어 주어야 하는 대통령 선거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직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대승 이 판단을 흐리게 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특성 상 유권자에게 제공되는 돈에서 30 퍼센트 밖에는 누수가 없다. 전달 경로가 2-3 단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산술적인 계산을 한 번 해 보자.
정치적 뇌물은 핵심 권력층을 거슬로 올라가지만 선거 뇌물은 반대로 흘러내린다. 선거 뇌물을 100 으로 했을 때, 전달 단계가 없이 직접 전달되면 100 퍼센트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한 단계가 생기면 30 퍼센트의 유실은 감수해야 된다. 또 한 단계가 끼면 남은 액수에서 다시 30 퍼센트의 유실이 일어난다. 첫 단계에서 유실된 30 을 뺀 70 에서 다시 30 퍼센트인 21 이 또 유실된다.
이런 계산을 되풀이해 보자.
100 --> 70 --> 49 --> 35 --> 25 --> 17 --> 12
중간 단계에서 욕심 부리는 자가 하나 끼면 유실률은 훨씬 더 커진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가 좀 더 정밀하게 관리하면 유실률은 반대로 잘 관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5 년 주기로 돌아 오는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에게 가장 좋은 잔치고 그들은 늘 배고파왔던 터라 관리는 더 형편 없을 것이다.
그런데 92 년 부터 대통령 선거에 선거 방송이 확대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여의도 집회 같은 것이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아예 필요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이 때부터 소위 '대선 잔여금' 이란 것이 생겨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걸 믿고 '(앞으로) 정치 자금 한 푼도 안 받겠다' 고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정치를 시작해야 하는 이회창, 이인제 같은 이들은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대기업들에겐 새로운 정치인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 정치 세력에게 돈줄은 생명줄이다. 돈 이 모이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고급 정보도 모인다. 고급 정보는 다시 돈을 끌어 모으는데 결정적이다. 그래서 돈, 사람, 정보는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쏠림 현상을 가속화한다. 그게 대세론의 힘이다.
이회창 씨에게는 최고의 고급 정보가 있었다. 감사원장 시절 율곡 비리의 주요 맥점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정치 자금, 선거 자금으로 연결된 고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김영삼 전대통령으로선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는 꼴을 볼 순 없다는 점이다. 결국 대선 잔여금 중 상당액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압력에는 조선, 중앙 도 가세했을 것이다. 조선 중앙은 이미 이회창을 밀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을 용납할 수 없기는 매 한가지 였기 때문이다. 이회창 씨는 그런 배경으로 정치 종자돈을 넘겨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대세론을 통해 다시 97 년 당시 5 대 재벌로부터만 3 천억을 모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97 년 선거는 미디어 선거가 훨씬 강화되었기 때문에 대선 비용도 대폭 줄어 들었고, 대선 잉여금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97 년 이회창 씨가 대선에 패배하고도 한나라당 당권과 다시 2002 년 선거의 대선 후보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힘' 도 그것에 바탕을 둔 것이라 믿는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당 장악력이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그에게는 대표 자리 만 있을 뿐, 이회창 씨에게 있었던 대선 잔여금 이란 것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 이회창 씨가 대선 잔여금을 넘겨 줄 이유가 없다. 그가 다시 2007 년에 대통령이 될 성 싶지도 않고, 이회창 씨에게 위협이 될 만 한 고급 정보도 없는 것이다.
그 대선 잉여금은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씨의 노후 자금일 뿐이다. 군대 못 간 두 아들을 위한 보험금이기도 할 것이다. 최병렬은 대표가 되자 마자 이회창 씨를 찾아가 협력을 부탁했다. 이회창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2002 년 대통령 선거 때로 돌아가 이회창 씨와 경쟁하던 노무현 쪽을 살펴 보자. 민주당 후단협의 난동도 '정치 자금'이란 키워드를 삽입하면 훨씬 이해가 쉽다. 지상 최대의 돈잔치 '대통령 선거' 를 맞이하고도 이들 보수 구태 정치인에게는 하나도 신날 일이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창고지기 였던 권노갑 등은 완전히 비리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정치 폐인이 되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정치 종자돈을 넘겨 받을 수 있는 '이인제' 가 예상 밖으로 낙마해 버린 것이다.
물론 국회 다수당 한나라당이 대선 전략으로 민주당의 돈줄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들 보수 정치인(설마 민주당을 정말 진보 정치 세력으로 보진 않겠죠 ?) 들 눈으로 볼 때, 노무현의 문제는 아주 치명적이다.
도대체가 학맥, 인맥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여도 기업들이 그냥 자금을 갖다 줄 순 없는 것이다. 믿을 만한 후배, 선배, 동향을 통해 넌지시 눈치를 살핀 후, 받아줄 의향이 있고, 배달 사고가 나지 않을 만한 장치가 있어야 건너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주변에는 386 어린
아이들 뿐이고, 큰 돈을 주고 받고 보증을 담보할 듬직하고 노회한 선수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노무현이 김영삼을 찾아간 것도 현실 정치와 정치 자금 이란 키워드를 빼면 이해 난망, 요령 부득이다.
설마 김영삼이 노무현이 이쁘다고 정치 종자돈을 주진 않겠지만, 최소한 '비토' 만 하지 않아도.... 방대하게 깔려 있는 영남권에 포진한 보수 정치 집단과 지역 인맥들이 정치 자금줄을 연결시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게 하는 효과가 생긴다.
그런데 김영삼은 끝까지 노무현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이며, 커다란 정치 자금줄을 연결시켜 줄 마지막 기회가 봉쇄된다는 의미이다. 삼성. 엘지, 현대 등 영남권에 주력 공장을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노무현에게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하나도 형성되지 않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상당한 지지율 하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영삼시계를 들고 갔지만, 두 가지를 다 잃고 만 것이다. 민주당 주류는 희망을 잃었다. 대선을 통해 텅 빈 지구당 금고를 채우고, 새로운 활기를 보충해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 자기 돈을 들여 대선 뒤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차라리 야당을 하면 하지, 그건 할 짓이 못 되는 것이다.
설농탕 한 그릇 얻어 먹지 못 했다는 이야기는 노무현은 정치자금을 모아 오는 데에는 도대체가 능력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둘러서 한 것이다. 설마 설농탕 한 그릇 이야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
정치자금 이라는 변수 만을 놓고 볼 때, 2002 년 선거 결과는 97 년 결과와는 비교 안 될 의외의 것이다. 일반인들이 전혀 볼 수 없는 정치 자금의 흐름이 일상화 되어 있는 직업 정치인들에게 있어 '노무현의 승리' 란 도깨비 장난 같은 일이다. 한나라당 뿐 아니라 민주당의 정치 프로페쇼날 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사기 당한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미디어가 가지는 역학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져 버린 정도가 이 정도라는 것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믿는 한 가지는 그래도 국회의원 선거는 다를 것이란 점이다. 그건 2002 년 지방 선거와 보궐 선거에서도 확인된 바 있지 않은가 ?
노무현은 현실 정치인이다. 그러기에 대통령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해선 안 된다. 그런 것은 성직자들에게 구할 일이다. 그가 유난히 도덕적이고 고결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가 학벌이 없고 개혁적 정치를 해 온 만큼 그에게는 정치자금의 공급이 차단되어 온 것이다. 그러한 정치 자금 없이도 대통령 까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정치의 희망인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틀림 없이 어떤 수준의 정치 자금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듣고 있는 일도 이제는 지겹다. 반대로 한 푼도정치자금도 정치자금이니 똑같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415 총선이 모든 정치 흙탕물을 씻어내 주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물갈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그 흙탕물 속에서도 정치는 발전해 왔고, 좀 더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아직도 나는 노무현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최소한 노무현 효과를 믿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