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엊그제 시작한 거 같은데, 어느덧 개학이 십여 일밖에 안 남았다. 연일 이어지는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검은새님'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내가 직업을 교직으로 선택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약 30%
정도가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방학’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머지 70%는 직업
자체의 매력 때문이고. ‘방학’이 없는 다른 직장생활, 즉 길어야 일 년에 열흘 정도의 휴가를,
그것도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며 가져야 하는 직업에 나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방학에도 글을 제법 많이 쓰고 울릉도, 지리산, 부산 처갓집 여행 등을 하며 알차게
보냈다.
그러던 중 ‘피오나님’ 이 번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비록 두 달 전부터 예약이 돼 있던 지리
산 등반 때문에 안타깝게도 꼭 가고 싶었던 그 번개에 못 간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이
제 나도 번개를 함 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날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먼저 요일을 정했다. 그 동안의 모임에 참석한 결과, 그래도 많은 회원이 참석할 수 있는
시간대가 일요일 오후라는 걸 알았다. 장소는 야외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난 번
번개 때, 을왕도에서의 야외 번개였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동차 동호회인 것을 감
안,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으로 정했다. 일일이 전화해서 스케줄을
체크한 다음 날짜를 정하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지금까지의 경우로 봐서 내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모일 수 있는 사람만 모이는 게 결과는 거의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번개
에 참석 못 한 미안함도 있고 한 번 만난 적은 있으나, 사진 이외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피오나님에게만 먼저 전화로 참여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홈피를 통해서
의중을 떠 보았으나, 시원하게 참여의사를 밝혀온 회원은 ‘사계절님과 스카이님’밖에 없어서
조금은 당황했다.
드디어 번개 당일인 8 월 8 일 일요일, 날씨는 구름이 조금 보였지만 비교적 맑았다. 8월
초순의 더위로 숨이 턱턱 막혀왔지만, 술을 마실 거고 방학이라 출근할 일이 없으므로 스카
이님처럼 12 억원의 철마로 약속된 ‘이오니아’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흰둥이’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약속 시간보다 무려 20 분이나 빨리 도착했다는 거였다. 느낌이 좋았다. 학교에
도착해서 주차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흰둥이님의 머쉰을 구경했다. 사진에서보다 스티카가
멋있었다. 흰둥이님은 이제 나이가 26 살인데 경상도 사나이로 인천에서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 키가 180에 육박하고 아주 미남이었다. 나도 저렇게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이어서 울프님 가족이 나타나고 사계절님은 이발하러 잠깐 갔다왔는데, 별로 머리를 자른
것 같지도 않았다. 스타일리스트, 스카이님이 등장했다. 과연 멋쟁이였다. 양복 왼쪽 윗주머
니에 선글래스를 넣고 이 더위에 줄무늬 있는 검정 양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안에는 흰
색 드레스 셔츠를 입고. 8 월 초순의 찌는 듯한 무더위도 스카이님의 멋쟁이로서의 의지를
빼앗지는 못하는가 보다. 잠시 뒤에 ‘피오나님’이 학교 진입로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
다. 사계절님이 전화로 위치를 한참 설명하더니 역시 기사도의 신사답게 손수 모시러 달려
가서 데리고 왔다. 반스님이 도착했다. 반스님은 첫 아이를 10월에 보게 될 건데,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고 울프님처럼 귀여운 첫딸을 갖게 될 거라고 했다.
저녁 6시까지 이런저런 이야기에 사진을 찍고 생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피오나님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진상으로는 광대뼈가 조금 나온 것으로 찍히는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는 거다. 사진보다 얼굴도 작았다.
드디어 장소를 옮겨 ‘오삼(오징어+삼겹살) 불고기’ 집으로 향하려는데 ‘동동님’이 묵직한 배
기음과 더불어 나타났다. 어제 동해안에 있었는데,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렇게 참가해준 게
고마웠다. 언제 보아도 시원한 몸맵시에 밝은 표정의 동동님이었다. 짧은 청치마가 잘 어울
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단하게 사진을 몇 장 더 찍은 다음에 오삼 불고기 집으로 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주문을 하고 막 먹으려는데 ‘산차이님’으로부터 전화
가 왔다. 학교 앞에 있다는 거였다. 이번에는 내가 기사도를 발휘, 그녀를 데리고 왔다. 여
행을 마치고 곧바로 도착하느라 좀 늦었다고 부끄러워했다. 모자를 쓴 모습이 아직도 어린
소녀처럼 귀여웠고 빨간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뜻밖에도 예쁜 애완용 개가 들어
있다가 머리를 부끄러운 듯이 내밀었다. 주인을 닮아 아주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제 드디어 건배의 시간, 내가 “오늘의 즐거움과 TCU 의 발전을 위하여!” 하고 외치자 모
두들 약속한대로 세 번을 연속 “위하여~” 를 외쳤다.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주거니 받
거니 울프님과 스카이님, 그리고 오늘 처음 보는 흰둥이님의 술 실력도 만만치 않았고 생일
을 맞은 사계절님을 위한 간단한 생일 파티도 있었다.
‘티슈’ 회원들의 왕성한 식욕에 감탄했다. 오삼 불고기를 거의 다 먹자마자 부대찌개를 또
시켰다. 그리고 오삼 불고기 먹은 양념에다가 비빔밥까지 만들어 먹는 거였다. 일부 회원은
거기다가 냉면까지, 정말 대단한 먹성들이었다. 학교 앞으로 초대한 입장에서 맛있게들 먹
어주니 정말 고마웠다. 예상보다 쬐금 예산이 더 들기는 했지만...^ ^
꿈처럼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먼 회원들부터 삼삼오오 헤어질 때쯤 ‘푸딩님’이 나타
났다. 원래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양해를 구한 입장이었다. 그나마 모인 식구들을 아슬아슬
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너무 늦게 나타난 푸딩님을 위하여, 그리고 여흥
이 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노래방 1 시간, 맥주와 음료를 마시며 우리의 밤은 무르익어갔다.
노래 실력들도 대단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 이라는 노래를
전혀 힘들지 않게 고음처리를 하는 푸딩님의 노래 실력은 조장혁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약간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푸딩님의 차에 올랐을 때는 정신
이 몽롱했다. 집에까지 태워다준 푸딩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의 초대에 기꺼이 시간을 내준,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는 TCU 회원 여러분 만세!!
2005.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