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촌지까지 주었다는 졸업생 악동 클럽 녀석들과 연신내에 있는 한국관이라는 나이트에 갔다.
녀석들 중 하나가 학교 근처 홍제동에서 미용사로 일하고 있어 내 머리 스타일을 바꿔 보려고 찾아 갔었다. 작년 가을에 매직 스트레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가수 강타처럼(혹은 안재욱) 스타일이 나오는 바람에 학교에서 적잖은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할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고 월마트 쇼핑갔다가 반짝이 가죽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가 허리에 총(?)을 차고 권유하는 바람에 그대로 OK했다가 파격적인 스타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난 반짝이 가죽 미니스커트를 타이트하게 입은 아가씨가 말을 걸면 내 의식엔 하얗게 안개가 낀다.
그게 두려워 나는 편하게 머리를 매직하기 위해 졸업생 녀석을 찾은 거였다.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면서 난 녀석과 시시껍질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녀석은 다음 번 악동 클럽 친구들 모임 때 나이트 가기로 했는데 나 보고 같이 가겠냐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난 참석 인원 과반수가 블루스를 쳐주면 가겠다고 능청을 떨었더니 녀석은 친구들에게 한번 물어 보겠다고 그랬다.
내가 제시한 옵션이 녀석들에게 흔쾌히 접수가 되어 우린 연신내에 있는 한국관이라는 나이트를 찾게 된 것이었다.
연신내에는 정부의 ‘명랑 유흥 구역 균형 발전’이라는 프로젝트아래 신흥 유흥가 골목이 형성되었는데 네온싸인의 불빛이 신촌보다 훨씬 현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불빛들은 연신내 골목을 거니는 사람들의 이마에서 이마로 흐느적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관이라는 성인 나이트클럽의 특징은 20대 초반부터 40대 까지 연신내 지역 구민과 방문 향락객들이 나이를 초월해 한마음 공동체 정신으로 어울어져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대접한답시고 녀석들은 양주 한병과 맥주 5병 그리고 과일 안주와 마른 안주 한접시 씩을 주문했다. 김건모라는 예명의 웨이터가 명함을 내밀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그런다. 졸업생 녀석들과 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웨이터의 바지 주머니에 팁 1만원을 찔러주며 endless 부킹을 요구하겠지만 난 점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주말답게 홀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그 사람들이 춤을 추며 뿜어내는 이상 열기와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음악소리, 오색의 흔들리는 조명 그리고 DJ의 스크래칭과 영생교 기도 같은 멘트와 그에 화답하는 사람들의 괴성으로 인해 우리들도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다.
사제지간인지라 처음에 쭈볏거리며 춤을 얌전히 추었지만 점점 비트가 강하고 박자가 빠른 음악으로 바뀌며 우리들의 흥분 지수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DJ가 손을 들고 찔러요, 팔짝팔짝 뛰세요, 고함을 질러요라고 주문하면 춤을 추는 사람들이 파블로프 개처럼 한치의 어김없이 그대로 따라하는 바람에 우리도 파블로프 개가 되어 버렸다.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며 슬며시 블루스 음악으로 바뀌면 홀에서 열심히 춤을 추던 사람들이 일제히 무대 바깥으로 설물 빠지듯 사라진다.
알콜 취기가 9부능선을 넘어선 남녀 한쌍만이 주변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블루스를 찐하게 춘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둥켜 안고 좌우로 투스탭만 밟으며 서로의 입술을 마음껏 탐닉하고 있었다.
테이블의 사람들은 그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앞자리의 파트너들과 뭔가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까 잠시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웨이터들은 분주히 부킹녀의 손을 잡고 남자 손님들에게로 데리고 간다.
친구끼리 온 아가씨 아줌마들도 개인적으로 부킹이 들어오면 친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자 테이블로 가서 금새 건배를 하며 좀전 보다 훨씬 화사한 표정으로 술을 마신다. 홀로 남은 여자들도 의연하게 술을 마시다 다른 테이블에서 부킹이 들어오면 또 그쪽으로 불나방처럼 날아가서 함께 어울려 논다.
제자 녀석들에게도 부킹이 들어왔지만 녀석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제자 녀석들이 오늘 나이트 복장으로 야시시하게 입고 와서 내가 봐도 눈에 뛴다.
게다가 한 녀석의 춤은 수준급이어서 허리를 돌리는 솜씨가 무척이나 관능적이다. 또 한녀석은 한 때 댄싱 라인에서 스트리트 모델을 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웨이브와 머리카락 흩날리는 게 장난이 아니다. 또 다른 녀석은, 미용사 하는 넘이다, 눈이 커다랗고 예쁜데 까맣게 메이크 업을 하고 와서 춤보다도 눈망울이 매력적이다.
나는 쫄티를 입고 갈까 하다 남사스러워서 그냥 무난하게 남방을 입고 갔는데 가서 후회했다. 대신 특유의 막춤으로 화끈하게 놀았다. 나는 람바다나 살사 같은 댄스가 훨씬 좋고 나 또한 열정적으로 춤을 출 때는 그 쪽 모드로 간다. 졸업생 녀석과 함께하는 살사 댄스는 물론 엉터리이기는 해도 무척이나 흥겹다. 녀석들도 이제 27살이니깐 이렇게 격의 없이 놀아도 다 이해해준다. 하긴 녀석들이 그러자구 날 초대해준거니깐, 내가 빼면 안되지...
자정을 넘기며 40대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가고 대신 20대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들도 마지막 춤을 추러 나갔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화근하게 몸을 흔들어 댄다.
그런데, 우리 졸업생 녀석들의 춤이 눈에 너무 뛰어서 였나... 벙거지를 쓴 젊은 사내 넘들이 졸업생 녀석들 앞으로 슬며시 다가와서는 같이 춤을 추려 한다. 제자들에게 잘 보일려고 그러는 지 춤을 정성껏 예쁘게 춘다.
제자들이 화답을 살짝 해주자 사내 넘들은 아예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 추려고 제자들에게 바짝 다가 선다.
제자들은 자연스레 턴하며 내게 다가서서는 두 녀석이 동시에 내 어깨위에 손을 얹고는 섹시하게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취한다. 난 두손을 머리 뒤로 넘기며 허리를 쓸어안으며 엉덩이 쪽으로 크로스하게 내려가는 춤으로 호응해준다.
제자들은 와우하며 탄성을 질러 대자 벙거지를 쓴 젊은 사내 넘들이 당혹한 표정으로 나와 제자들을 번갈아 쳐다 보더니 다른 아가씨들 쪽으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어쩐지 사라진 사내 넘들이 고등학생 고삐리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소를 짓는다.
하긴 사내 놈들 입장에서도 우리 사이가 무척이나 의아했을꺼다. 그렇게 마지막 무대에서 유쾌한 에피소드를 뒤로 한 채 우리들은 국일관을 빠져 나왔다. 연방 제자 녀석들은 나보고 즐거웠냐고 묻는다.
그럼 당근이지... 양주에 과일 안주까지 대접받고 신나게 춤을 추었는데 즐겁고 말고.... 블루스? 아, 그건 대표로 한 녀석이랑 추었는데 그냥 편안하고 아늑하더구만. 나중에 딸이랑 블루스 추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면서 비오는 연신내 골목길을 제자 녀석들과 걸어 갔다.
소주 한잔을 더 하고 싶었지만 졸업생 만나러 갔다 새벽에 들어가면 나의 말로만 여사께서 오해할 것 같아 1시 남짓해서 헤어졌다. 파주사는 제자 녀석이 차를 갖고 왔는데 나를 집에 까지 데려다 주는 바람에 난 마지막 에필로오그도 편안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쁜 녀석들... 나중에 소주나 한잔 사 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