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사고를 칠 줄 알았다.
무자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술을 좀 줄여 보자는 야무진 결심을 할 때만 하더라도 이제부터 나의 음주 문화는 깔끔하고 단아하리라고 상상했었다.
그렇지만 상상 플러스도 존재하는 법.
슈퍼 에고 보다는 이드가 발달한 내 영혼은 어차피 결심 따위에 저당 잡힐 소지는 미비했던 것이었다.
1월 들어 2틀에 한번 씩은 술을 마시곤 했는데 언제나 필름이 끊겨서 그 마지막 신(scene)은 고사하고 단 한 컷의 숏(shot)도 기억나지 않아 도데체 얼마를 마셨는지 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차라리 보충 수업이라도 있었으면 내일 수업 때문에 절제가 되었을 것인데, 올해 겨울 방학은 완전히 푹 쉬는 바람에 맘 놓고 마시다 보니 10부 능선까지 취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어제도 그냥 저녁에 반주로 가볍게 한잔만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 놈의 목살이 어찌나 연한지 소주 맛이 극대화 되면서 사고는 시작된 것이다.
목살에 각각 1병씩 마시자 나의 내장은 일제히 ‘한잔 더’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에게 회를 한번 사 주기로 한 약속을 간단히 떠 올리곤 우럭회에 소주 3병을 시켰다.
둘이 마시는 술은 서로의 진도를 맞추다 보면 금새 진보주의자가 되고 만다.
소주 3병이 순식간에 사라질 무렵 술 친구는 엊그제 폭탄주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 마셔 보았는데 차암 좋았다며 폭탄주를 제조하러 가자고 유혹한다.
소주 2병 반을 마신 상태에서 폭탄주를 마시면 사망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외면한 채 우리는 술의 취기가 한계 취기 체감의 법칙을 따라 완만해 질 것이라고 의기 투합한 채 폭탄주 성지를 향해 안개처럼 흘러갔다.
임페리얼 양주 1병과과 카프리 4병을 시키고 나서 이성은 무장해제 시키고 감성 버전으로만 폭탄주를 거푸 마시자 서서히 영혼의 나사가 풀어지고 있었다.
폭탄주가 바닥이 나자 증시가 바닥을 치는 것처럼 우리들은 동요했던가 그 아쉬움을 달래러 포장마차를 향했다. 그 마지막 신에서의 대화록과 영상 사진은 유실되었고 어느덧 그 칼바람이 부는 새벽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대지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난 맹렬하게 아스팔트 바닥위로 오체투지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집에 들어 갔는지 조차 모른 채 잠들었는데 점심 때 쯤 깨 보니 머리는 우지끈 아파 오고 내장은 서로의 자리를 바꾼 채 거세게 제 자리를 잡아 달라고 난리 브루스를 치고 있었다.
욱씬거리는 통증 때문에 거울을 보니 얼굴은 부어 있고 여기 저기 피멍 든 꼬락서니가 술에 절은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이 기회에 술을 완전히 끊어 버릴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세상은 너무 암담할 것 같아
딱 소주 1병과 호프 500cc 한잔까지만 마시는 걸로 준엄하게(?) 결심을 하고 주변 친지들에게 고하노니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