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노인하고 놀지마!”
오래 전 어떤 경로당에 들어서면서 문 가에서 본의 아니게 엿들은 대화 내용이었다. 한 팔십 노파가 주머니에서 하얀 마름모꼴의 박하사탕을 한 주먹 꺼내어 옆 노인의 주머니에 찔러주면서 한 말이었다. 방 안을 휘둘러보니 또래의 한 노파가 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건 안중에도 없이 노인들은 자신들의 파워게임을 진지하게 치루고 있었다. 노인이 내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박하사탕을 줄까 봐 침을 흘리고 서 있는데 나보고 그랬다.
“어? 여긴 할아버지는 안 받는디?”
대부분의 경로당에 들어가보면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보다 훨씬 많다. 할머니들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할아버지들은 문간에서 얼쩡거리신다. 어쩌다 할아버지들이 큰소리 치는 곳은 남초(男超) 경로당이다. 불쌍한 건 남자다. 평생 가족을 위해 돈 버느라 고생하다가 여생을 쉴 만하면 명에 쫓겨 일곱 자짜리 널판자에 몸을 뉘어야 한다. 그래서 결혼은 여자들의 요람이요 남자들의 무덤이다. 하늘 나라가 좋다는 건 그곳엔 결혼도 없다는 것이지만 역시 그곳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놀다가 하나님 찬양 좀 하다가 첫사랑을 만나 못다한 얘기도 나누고 ---.
할머니들은 주로 화투를 치신다. 할아버지들이야 바둑이나 장기도 두시지만 할머니들은 오로지 화투다. 그것도 민화투. 하긴 화투 짝 맞추다 보면 치매도 예방되고 그 놈을 담요 위에 내려치다 보면 팔에 힘도 오를 것이다. 담요 위에선 10원짜리가 왔다갔다한다. 열심히 패를 돌리다가도 가끔 낯선 사람이 경로당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은 화들짝 놀라서 담요를 쓸어 덮는다. 도박 단속을 나온 경찰관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최근 우리 나라는 노령화사회로 진입했다. 노령화 사회란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국민의 7-13%인 사회를 가리킨다. 현재 총인구의 5%수준인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올해 7%를 넘어 우리 나라도 유엔이 정한 노령화 사회에 돌입했다. 15%가 넘으면 노령사회라고 한다. 노령화 현상은 현대 문명의 산물이고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이다. (야후)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노인들만 따로 모시고 하는 예배를 작년부터 시작했다. 노인들과의 공과 공부는 좀 어렵다. 어린이 주일학교는 최후의 보루로 아이들과 함께 공과책을 읽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노인들은 노안으로 인해 글을 못 읽으시기 때문에 미리 성경말씀을 머리에 입력해 놓고 얘기하듯 자연스럽게 풀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성경말씀을 단단히 암기해두지 않으면 노인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그런데 공과 준비에 시간 투자하기가 어디 쉬운가. 월급쟁이 남는 시간에는 꽃구경도 가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독서도 해야 되고, 가족과 외식도 해야 하고, 게다가 요즘의 토요일엔 동창 게시판에 글 올리느라 골치가 뻐근한 공과 준비는 맨 마지막이다. 토요일 잠자리에서 허겁지겁 공과책과 성경을 펴 든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린도전서 11:21~23)
그렇게 지난 토요일 밤에도 잠에 쫓겨 대충 공과를 훑었다. 공과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가? 주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걱정이 되었다. 공과책을 또 한 번 읽어보았지만 외워지지 않았다. 성경구절이 어디 한 두 개야 말이지, 도통 머리에 안 들어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 전에 이미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고, 요셉이 세마포로 시신을 싸서 무덤에 넣었고, 유대인과 관원들은 시신이 도둑맞지 않도록 바위로 무덤 입구를 봉인하고 경비병을 세웠지만 예수님은 그래도 부활하셨다. 부활 뒤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자신의 살과 뼈를 확인시키시고, 당신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풀어주시고, 등등...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 예배의 목사님 설교는 마침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도 같은 곳이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부활절이었구먼. 천우신조라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난 귀를 바짝 세우고 설교를 들었다. 노인 공과에 써먹기 위해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보다 더 말을 많이 하려고 하는 여든 되신 박 권사님도 오늘은 별 말씀이 없으시더니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셨다.
“이번 주에는 내가 우리 선생님이 공과공부 잘 인도하시라고 기도했었는데 오늘 정말 잘 하시네.”
어찌 됐건 간에 그다지 헤매지 않고 공과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또 한 주일을 머리가 묵직하게 눌린 채 보낼 것이다. 토요일 잠자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