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그리고 경험에 의해 '주식'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이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허가난 도박 또는 인격을 갖춘 사람들은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되는 대상으로 금기시하기까지도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주식시장을 경마도박 정도로 생각하고 필요악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원래 처음에는 원양 무역의 위험을 분산해 보려고 시작된 이 제도가 필요악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주식에 대한, 건강한 일반 국민들의 부정적 생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주식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가능성이 있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투자 경험에서 주식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는 투명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큰 원인이다. 주식을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구체적으로 격렬한 격투기인 복싱에 비유한다면, 체급에 따라 경기를 해야 하는데, 일반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 불리한 상황에서 계체량이나 경기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채 일방적으로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약 6년 전에 정말로 우연히 주식에 입문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에와 생각하면 투자의 시점이 아주 좋지 않을 때 시작하여 많은 손실과 마음고생을 겪었고, 지금도 상당액을 투자한 입장이다. 친구들에게 나의 실패한 투자경험을 말함으로써 주식투자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는 타산지석, 또는 반면교사의 기회로,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실전 경험 지식의 전달 기회로 삼고자 이 글을 쓴다.
1. 우연한 입문
1996 년 12월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약간 고가(高價)의 중고 자동차를 사는 과정에서 채권을 매입해야 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구청에서 자동차 구입에 따른 세금을 내면서 채권을 할인해서 팔려고 하는데 내 뒤에서 세금을 내려고 기다리던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채권을 할인해 팔을 때 증권회사에 직접 가서 팔면 단돈 얼마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 귀가 솔깃해진 나는 그 길로 집(평촌 신도시) 근처의 '동서증권'이라는 곳을 찾았다. 난생처음으로 증권회사 객장에 첫발을 내디딘 거였다. 전광판이 보이고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한 그 곳에 대한 첫인상은 활기참 그 자체였다.
어쨌든 채권을 팔려고 왔던 나는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창구 아가씨에게 가서 내가 가지고 있던 채권을 내밀고 할인을 받았다. 볼일을 다 보고 돌아서려는 순간, - 나에게는 여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이것이 항상 문제다. - 그녀의 첫인상이 참 맘에 들었다. 방학 중이어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던 나는, 그녀에게 주식 투자에 대한 궁금증을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녀는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계좌를 개설하고 약 5백만원 정도의 여유돈으로 유망한 종목을 추천받아 생애 최초의 주식 투자를 했다. 이 때부터 나의 삶이 상당부분 달라졌다. 신문과 뉴스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많이 변한 것이다. 주식투자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나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리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나의 관심은 다양해졌다. 교사로서의 직무수행과 독서와 음주, 약간의 취미 생활이 전부였던 나는 많은 시간을 시사 연구와 주식 공부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의 세상일들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 없었다. 주식은 내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준 것이었다. 운이 좋아서 처음에는 승승장구했다. 우연히 상승장에 입문해서 별 어려움 없이 열흘만에 5 백 만원 투자한 것이 6 백 만원이 되었다. 아하 이것이구나 ! 나는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 된 것이다.
이천만원 투자했으면 열흘만에 4 백 만원 벌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너무도 무모하고 그야말로 철없는 생각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연금 공단에서 대출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이다.
2. 참혹한 실패
기다리던 대출금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만화로 된 실전 경험 투자 이야기와 어느 경제학자가 쓴 초보자의 투자 요령 등 두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종목 선택에 들어갔다. 두 권의 책을 독파한 나는 마치 한국의 '조지 소로스'나 '피터 린치' 또는 '워렌 버핏'이라도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마구 마음이 설레었다. 주식 투자는 여유돈으로 해야하며 리스크 관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주식투자의 ABC도 몸에 배지 않은 채 (물론 머리로는 외우고 있었지만, 직접 투자해서 체득하는 것과는 다르다.)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채 바닷물에 뛰어든 것과 같다고나 할까? 풍차에 달려드는 동키호테의 모습으로도 견줄 수 있겠다.
아이 엠 에프 직전이었던 당시 김영삼 정부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기업들은 은행돈을 마구 빌려서 시설 투자와 몸집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출하려면 컨테이너가 필수라는 단순한 생각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주가가 싸다는 판단에 주식회사 진도(모피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수출용 컨테이너 생산이 주력 사업이었다.)에 투자했다. 대출을 받고 처음에는 비교적 안전한 투자라는 은행(신한은행)에 투자했으나 하루에 1 - 2 백원 오르내리는 아주 지루한 투자였다. 첫 투자에서 열 흘만에 백만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던 나로서는 은행주에 대한 투자가 영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서서히 이상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기업인 기아 자동차가 쓰러지고 한보사태 등 연일 신문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리고 해외에서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계속 불리한 뉴스가 타전되었다. 베테랑이라면 이 때부터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줍잖은 이론으로 중무장한(?) 나는 위기가 기회라는 일념하에 날마다 내려가는 주식회사 '진도'의 주식을 계속 사들였다. 소위 물타기 - 가격이 내려가는 주식을 계속 매집해서 손실의 단가를 줄이는 것.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치명적 손실을 입는 아주 위험한 투자 방식이다. - 를 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던 어는 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아 ! 그 끔찍한 사태. 조국의 땅도 하늘도 놀라서 허둥지둥, IMF 사태, 괜찮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대통령이하 정부 관리들이 원망스러웠다. 빚을 내서 투자한 나의 주식은 연일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욕심은 근심을 낳고 근심은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나 정신을 쏟아야지 선생이 주식은 무슨, 후회 막급이었다. 지금 같으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손절매를 하고 절반이라도 건졌을 텐데, 본전 생각에 주식은 거의 휴지로 되어가고 있었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다. 누구는 고상하게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잠들지 못하는 밤을 노래했는데, 나는 돈에 눈이 멀어 폭락하는 주식 때문에 잠못 이루다니…… 끝없는 자괴감에 또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불행은 한 가지만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당시 네 살이던 아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려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거기서 또 대학 병원으로, 백혈병이 의심된다고 해서 전문병원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또 옮겨 무려 한 달이나 각종 검사를 받으며 입원에 입원을 거듭한 것이었다. 온갖 검사 끝에 다행히 백혈병이 아닌 것이 밝혀졌으나, 아들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퇴원하였으며, 나 또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다행히 여름방학 중이라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 만약 학기 중이었다면 휴직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갔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거래하던 '동서증권'이 무너졌다. 제법 규모가 컸던 그 회사는 커다란 덩치가 오히려 생존에 불리했던지 마침내 부도가 난 것이다. 투자한 회사가 비틀비틀하는 것도 신경쓰이는데 거래하던 증권회사의 부도라.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주식회사 진도도 끝내 화의 신청에 들어가고 나는 두 번에 걸친 대출금에서 약 삼천 만원의 손실을 보았다. 당시 월급 200만원 안팎의 나에게는 치명타였다.
당시 아내는 교보생명에 영업소장 후보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근무한 지가 만 오 년이 넘어서 소장으로 발령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게 퇴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영업소장으로 발령이 나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80% 가량이 월급은커녕 빚만 떠안고 회사를 퇴사하는 형편이라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원래 연고 가입이 우리나라 보험의 취약점인데, 국가적 어려움으로 그것마저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찬성했다. 고맙게도 내가 무리해서 진 빚을 아내는 퇴직금으로 해결해 주었다. 정말 부끄런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무모한 주식 투자는 아내의 젊은 노동의 대가로 계산된 것이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3. 그래도 미련이
세월은 흘러 완전치는 않지만, 국가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어 최악의 상태는 모면하고 주가는 1000포인트에 가까워졌으나 워낙 혹독한 맛을 본 나는 주식의 주자도 입에 담지 않았다. 아내 앞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퇴직금으로 내가 진 빚을 고스란히 탕감해 준 아내에게 다시 주식을 하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런데 IMF를 극복한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는 저금리 시대로 돌입했다. 다시 투자가 하고 싶어졌다. 주식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중독성을.
아내 몰래 5 천 만원을 연금공단과 공제회에서 대출 받았다. 사실 혼자 벌어 도저히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나는 은행에 빚을 지고 있었는데, 이 빚이 연금 공단이나 교원공제회 금리보다 비쌌다. 대출금 중 일부는 은행빚 상환에 사용하고 일부는 아들들 피아노 사주고 텔레비젼도 낡아서 바꾸고, 나머지는 또다시 주식투자에 나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LG카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짭짤한 재미를 보았으나, 웅진닷컴이라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번 돈의 상당부분을 시장에 돌려주고 지금은 코스닥 우량주에 투자하고 있다.
어느 날 아내에게 고해성사하듯 주식투자 사실을 털어 놓았더니 마치 신부(神父)님처럼 용서해 주고 식구들 굶기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해해 주었다. 나는 정말 장가하나는 잘 갔다(?)는 게 아직까지의 생각이다.
4.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주식 투자에 대한 나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주식투자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투자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거봐, "주식 시장은 점잖은 사람이 가까이할 곳이 못돼" 라고 판단하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외국인 주식 보유율이 40 %에 육박한 현시점에서 주식투자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렇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격에 맞으면 주식 투자를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리 같은 개미들이 몽땅 떠난 주식시장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이 세계화 시대에 국민들이 주식시장에 일정부분 참여해 주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게 확실하다. 흔히 여유돈으로 투자하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여유돈이 있어서 투자한다면 몇 사람이나 투자할 수 있겠나? 그저 투자해서 원금을 몽땅 날린다해도 생계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한도에서 투자해보라는 것이다. 해보면 알지만 지나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주식은 참 재밌다. 우리의 생활 모두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부시가 재선이 되고 안 되고와 주가의 변화가 관련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올 것이냐 적게 올 것이냐 와도 관계 있다. 많이 오면 스노우 타이어가 많이 팔리고 레져 산업과 관련 있는 회사의 주가가 오를 것이고, 적게 오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우산 만드는 회사의 주가가 오르고, 햇볕이 쨍쨍 날씨가 더우면 빙그레의 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식 투자를 하다보면 항상 뉴스에 안테나가 고정되어 있고 경제 상식과 세상사는 이치에 민감해진다.
둘째, 자신에 맞는 투자 패턴을 찾으라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이 수 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이야기들이 인터넷이나 서점에 즐비하다. 물론 전문가들이 쓴 책은 더욱 많다. 그러나 나의 경우, 그것들이 참고 사항은 되지만 실제 투자는 나의 투자 경험과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되더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하다보면 나름대로의 투자 패턴이 체득되는데, 그 패턴을 빨리 익힐수록 수강료(손실)를 적게 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은 액수로 시작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시장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아이큐는 좋아야 140 정도지만 800만 이상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주식시장의 아이큐는 1000이라고 생각하고 위험관리에 철저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경우 최종까지 이익을 보는 사람은 10% 미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치 술을 즐기는 사람은 또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식투자는 짜릿하고 다양한 삶을 제공한다. 물론 수익 증대가 최종 목적이라는 것을 숨길 수는 없지만, 투자에 따른 부수적인 이익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견디는 정도의 무리하지 않는 투자는 삶의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단, 평범한 진리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투자에 대한 몰두는 곧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술, 여자, 음식, 고스톱, 심지어 운동도 지나쳐서 좋은 것은 아주 드물다.
2003. 11. 2.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