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그리 팍팍하지도 않고 심하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건만 오늘 새벽에는 리얼한 악몽에 시달렸다. 대개의 꿈이라는게 대부분 사람이 꾸지만 그걸 기억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설사 뭔가 꿈을 꾼 듯한 느낌을 받아도 그 내용이 떠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오늘 새벽의 나의 꿈은 장면 하나 하나가 선명하게 기억나는게 깨어 나서 한동안 온 몸이 심하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후줄근했다.
자, 그럼 지난 새벽녘의 나의 꿈을 리와인드 해보자 ...
나는 조기 축구회 회원들과 방콕으로 해외 여행을 떠났다.
나의 룸 메이트는 어제 밤 흑마 탄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벌리며 아무래도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며 나보고 조심하라며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백마 탄 이야기 보다 에이즈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너스레가 자꾸 맘에 걸리며 그 친구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 슬며시 객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 나오면, 젠장 도로 우리 방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곤 했다. 섬찟했다.
그러던 중 다른 회원이 와서는 우리 회원 중 한 명이 영화 엑스트라에 출연해야 하는데 내가 적격이라며 이미 조기회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니깐 흔쾌히 받아달라고 한다. 게다가 영화 출연 개런티는 받는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별 수없었다. 조직의 뜻이므로....
호텔을 나오자마자 영화 세트장이 펼쳐져 있는데 서해안 천리포였다.
꿈이라는게 늘 이렇다. 시공을 자기 멋대로 조작해 버린다.
천리포 하늘은 오색 무지개가 멋지게 드리워져 있고 구름마져 용 모양으로 하늘을 비상하고 있다. 세트장 저 건너편은 만리포인데 비키니를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들도 눈에 띈다. 난 영화를 얼른 찍고 만리포 바닷가에서 저 아가씨들과 유희를 즐겨야 겠다는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
영화 세트장으로 들어가 버리려는 순간, 입구에 서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이 내게 권총을 보여 주면서 오늘 촬영이 끝나면 모두 암살해 버린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순간 무서워서 스텝진에게 어머님 병세가 위독하셔서 급히 서울로 올라 가야 한다고 둘러 대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도망쳐 나오는 그 길은 이미 피난길이 되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는데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게다가 삽시간에 천지 사방은 암흑처럼 어두워져 버렸다. 피난길은 가파른 산길인데다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도망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까지 내 팽개쳐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가방이 고가인 것을 문득 생각해 내고 끝까지 참아 어둠의 그 산을 겨우 빠져 나왔다. 이제 도시다. 도시의 네온싸인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인다.
함께 피난 길을 빠져 나온 동료 교사 하나가 거리의 스트리트 모델이 춤을 추는데 앞에서 어색하게 따라 춘다. 우린 도망가는 처지인깐 들키면 안된다고 내가 말렸지만 동료교사가 계속 춤을 추는 바람에 우리는 또 그 암살범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아으 동동다리... 조까고 나빌레라... 우린 무지하게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다.
물고문, 불고문, 전기 구이 고문 같은 것을 매들리로 받고 있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당하다가는 죽겠다 싶어 나는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또 다시 도주를 감행하였다. 경비원 하나를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고 산 속으로 숨어 버렸다. 산과 강을 필사적으로 건너 어둠 속에 몸을 숨겼는데... 그동안 1인칭 시점이던 꿈이 갑자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뀌더니 암살단의 보스가 나를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꿈속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결국 미모의 여자 조직원이 건네 준 주먹밥을 먹고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또 잡히고 말았다. 나는 안타깝게 ‘먹으면 안돼!’를 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품에 잠든 후 였다. 암살단의 보스는 나를 거진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므로 나는 이 현실이 꿈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반의식 상태로 해 본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끝까지 죽지 않을 것이므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암살단 전체와 한번 맞짱을 뜨자는 용기를 내자고 결심한다.
드디어 마지막 피날레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 그러나 시간이 모자르다. 잠시 후면 알람이 울릴 것이다. 난 왜 꿈 속에서 그것을 알아 버렸을까... 암살단 3명을 매트릭스 키아노 리부스처럼 총알도 피하면서 해 치웠을 때... 아, 알람이 울린다. 지금은 새벽 5시 20분이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나 자신을 추스르고 나서 전의를 불 태우며 아까의 그 꿈에 다시 접속해 본다.
나는 이전에도 아름다운 소녀를 꿈 속에서 만나다가 깨면 다시 잠들며 그 소녀를 그리워하면 그 꿈이 다시 접속되기도 하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접속은 불투명하다. 나는 꿈 속에서 허벌나게 맞은 게 억울해서 반드시 복수 하겠다며 그 꿈을 꾸려 했지만 그렇게 뒤척이다 일어났다.
몸 상태가 안 좋다. 가위 눌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도데체 오늘 새벽녘 그토록 선명하게 꾼 꿈의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