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12.
오늘 아침의 하늘은 신기할 정도로 맑다. 일기예보도 그렇거니와 어젯밤에 쏟아지던 빗줄기로는 이렇게 달라진 날씨가 의외롭다.
지금쯤 강변역께로 움직이고 있을 제환에게 전활 걸었다. "8시 20분쯤 출발이 될꺼야. 출발하면서 다시 전화 할께"
어제 급하게 대절했던 25인승 버스를 취소하고 내 안내대로 강변전철역에서 1113-1번 좌석버스를 타고 8명이 이천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후 제환에게 전화를 걸어 이천까지 올 것 없이 경안 (광주) I/C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이 별도로 이곳으로 오게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이천까지 올 거야 없지.'
광주의 약속한 지점에 가니 조금 전에 도착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게 된 2회 진태훈 선배(이비인후과 의사), 14회 위세욱 후배 (세무사)와 인사를 나누고, 구면인 3회 김영훈 선배, 7회 한용섭, 그리고 동기인 제한, 구식, 득민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43번, 45번 88번 도로를 바꾸어 천진암으로 올라가다 약 6KM 전, 관산 산행기점인 우산리 녹차가든 앞 주차장까지는 도중에 즉석김밥을 사는 시간을
포함하여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앵자봉은 대개가 천진암 주차장에서 오르게 안내되어 있어서 등산이 반쪽이 된다. 관산을 거쳐 소리봉 앵자봉을 둥글게 돌아 내려와야 너 댓 시간 짜리 등산다운 등산이 될 거라는 내 주장을 이야기하고, 관산을 오르는 산입구에서 기념으로 한 방 박고 출발했다. 9:35.
여기서 첫 봉우리까지는 30분간 남쪽을 향해 줄곳 오름길이다. 위세욱 후배가 30분을 못 참고 주저앉더니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7회 용섭이가 세욱이 배낭을 열어 이것저것 빼내어 자기 배낭으로 옮긴다. 용섭이의 등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나는 지난 해 광교산 산행때 그것을 이미 알아차렸고, 그후 동계캠핑장비를 구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동대문 장비점에서 한 번 따로 만나기까지 했었다.
첫 봉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프린트 해온 지도를 꺼내어 대략의 코스에 대한 개요를 설명했다.
(국립지리원의 50,000분의 1 지도를 깜빡하고는 차에 두고 가져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분 평평한 길로 가니 뚜렷한 봉우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안내표지판에 나타난 1.5KM라는 거리로 본다면 이 곳은 관산 정상 이리라.
그러나 그 이후를 걸어보면 이 봉이 관산이란 것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관산에서 소리봉까지 0.7KM라는 것도
(소리봉까지는 실제로 훨씬 더 많이 가야 하므로) 이곳이 관산이 아님을 뒷받침 한다.
여기서 부터는 내가 자청하여 앞장을 섰다. 앵자봉은 지릉이 많고 지릉마다 길이 잘 나아있어 자칫하면 엉뚱하게 빠질 수 있어서
길을 조심스럽게 잡아 나가야 한다는 걸 지난주 답사때 알았기 때문이다.
능선길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약간 거셌지만 여름 등산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출발 후 1시간쯤 가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온다. 10:35.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급하게 경사길을 내려가니 무갑리와 우산리로 갈 수 있는 안부와 만난다. (10:42)
여기서 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 세 번째 오른 봉우리에는 '관산 정상'이라고 씌인 표기물이 뽑힌 채 나무에 기대어져 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지도를 정독하니 관산은 무갑리/우산리 고개를 지나 세번째 봉우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이 봉우리가 관산임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간식으로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관산에서는 정동으로 움푹 들어간 박석고개와 거기서 이어져 치솟은 앵자봉이 보인다.
11:10 에 관산을 출발해서 약 30분을 걷고 오른 봉이 소리봉쯤 될 거라고 생각된다. 이곳에서 막걸리 두 병을 다 비우기로 했다.
후배 용섭이 배낭속에서 두부와 오이와 양파에 고추장까지, 없는 게 없이 쏟아져 나온다. 고추장을 듬뿍 묻힌 두부와 양파를 안주 삼아
이런 시원한 바람 부는 산정에서 막걸리를 먹는, 이런 맛을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바람은 높이 뻗어 올라 자란 신갈나무의 머리끝을 미친듯이 휘둘러 대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끼리만의 행복감에 마음만 넉넉해지고 있었다.
한 잔 씩만 더 하면 딱 좋을 텐데.. 한 두 병을 더 가져 오는 건데..
산에서는 언제나 술이 부족하다. 아싑지만 술판을 벌여놓고 기다리고 있을 대용이 형 집에 가서 원을 풀자. 출발! 12:00.
박석고개까지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출발. 1:00 박석고개에서 북쪽으로 500여 미터 하산하면 우산리 청소년 캠프가
나오고 거기서 500여 미터 더 내려가면 천진암 주차장이다. 만약 이리로 올라왔다면 우신 등산반의 9월의 산행은 너무 싱거운 것이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피치에서 한 땀 내보자며 3회 영훈 선배가 앞서서 발길을 재었다..
오름길은 서두르면 쉬 지친다. 한 발 한 발 땅을 달래가며 호흡을 발에 마춰야지 호흡에 발을 마추면 오래 못 간다.
앵자봉 정상은 조망이 좋지만 오늘은 기후 탓에 가시거리가 10M나 될까? 사진을 찍고, 구식이가 가져온 콩국물을 한모금씩 나눠먹고 하산을 시작. 1:45
북쪽으로 두개의 봉우리를 더 넘은 후 (0.7 KM 정도)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을 택하여 내려갔다.
계곡물과 만날때까지 약 1KM를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오른쪽 무릎 인대가 불편하다는 득민이, 지금쯤 다리가 풀릴만한 후배 세욱이가 걱정된다.
워킹스틱에 익숙해지면 하산길엔 무척 도움이 되는데, 장비에 소극적인 사람들이 안타깝다.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스카프를 빨고 잠시 기다리니 구식이가 왔다. 구식에게 카메라를 주어 필요한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는
나는 녹차가든에 있는 차를 천진암 주차장까지 끌어 올려다 놓기 위해서 먼저 내려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쏘렌토를 이내 잡아 얻어 타고 녹차가든 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지난번 이 길을 족히 한 시간동안이나 걸어 내려갔었다.
옷을 갈아입고 천진암으로 운전하여 올라갔다. 빗줄기가 시시각각으로 세어졌다 약해졌다 한다.
앰프기타로 포크송을 신청 받아 노래를 부르는 아마추어 가수가 있었다. 나도 손을 들어 '새벽기차'를 신청하였고 그 가수는 내 신청곡을 멋지게 불러냈다. 내려온 일행들이 옷들을 갈아입었고 나는 대용이 형에게 출발을 알리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3:15.
날씨가 유감이다. 전원의 바베큐 파티가 그 예쁘게 잘 꾸며진 마당에서 벌일 수 없음이 아싑다.
미리 와 있었던 2회 김대우 선배께서는 아주 작정하고 써빙 하신다. 우리 후배 넘덜은 그냥 앉아서 먹어대기만 하면 되었다.
2회 선배인 대용이 형, 태훈이 형, 대우 형은 서로 절친한 친구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다.
나는 대용이 형이 처음 만난 후배들의 이름을 한 번도 틀리지 않고,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고 부르는 기억력에 감탄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끝없이 아껴주고 싶은 선배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우리집에도 들러 차 한 잔 하고 가기로 되어 있었긴 했어도 시간이 이미 많이 늦어서 어떨까 했지만, 태훈 선배님의 개에 대한 관심은
두 말 할 것 없이 우리집을 거쳐가게 했다.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이들을 붙잡아 두고 나는 시간을 잊은 채 우리집 버트 이야기를 떠 벌여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