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운 냄새들
구로 가리봉동이 공단과 인접해 있어 많은 공장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지금은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면서 굴뚝 공장들은 많이 없어지고
IT, 벤쳐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죠 따라서 공단 거리의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남들은 코를 막고 머리가 아프다는 냄새들이 저는 이제 집에 다 왔구나
하는 평안함을 주는 냄새였습니다.
먼 여행(일가친척 집 방문이나 교회 수련회 등)에서 돌아오는 코스가
지금의 신도림동을 거쳐 애경백화점 지하도를 통과하는 코스인데
자고 있어도 냄새때문에 어디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나는 냄새가 한국타이어의 화학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곧바로 삼천리 연탄에서 연탄을 만드느나 석탄에 열을 가하는 냄새가 나죠
그 냄새를 맡다보면 구로 입구에서 주종냄새(금복주)까지 맡고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 냄새를 맡으려고 해도 맡을 수 없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습니다.
2. 불꺼진 가리봉 오거리
저희는 중딩때부터 나이트를 다녔습니다.
가리봉(공단) 오거리는 영등포나 명동을 뺨치게 할 만큼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여기저기 얄팍한 월급봉투를 노리는 유흥점들이 요란했으니까요.
월급날이면 구로시장과 가리봉 시장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구로시장과 가리봉시장 상인들은 노동자들에게 남는 방(사실 남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만든)은 세놓고, 이런저런 생필품을 팔아 먹고살고 자식들 가르쳤지요. 저희집도 그랬으니까요.
집떠나 먼 타지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에 대한 피로와 외로움을 유흥으로 달래고, 그 유흥점에 호기심 많은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이 드나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가리봉 오거리는 그런 요란함은 없고 조선족과 이주노동자들이 간간이 오고갑니다.
3. 오빠를 찾는 걸들...
얼마전(5년전)까지만해도 번개장소에서 구로시장 방향이나 대림역 방향의 언덕 내리막 길에는 창문을 동전으로 두들기며 오빠를 찾는 걸들이 꽤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으면 거리로 나와 팔짱끼며 매달리기도 했죠
청년이 되었어도 우리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생활근거지가 그곳이니 걸들과의 데이트가 목격되면 곧바로 아무개 아들
어쩌구저쩌구 하며 시장판에 소문나기 딱 좋은 동네입니다.
하지만 사춘기때는 그만한 구경거리도 없었습니다. 빨간책이 주는 만큼 적나라 하진 못했지만 야하게 입은 걸들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니까요.
4. 가리봉동 근처에 가지마라.....
원기형님 가리봉동에 안오신다고요.
의미는 많이 다르지만 그 이야기를 고교시절에 들었습니다.
제 바로 아래 여동생과 저는 연년생이라 제가 한해 휴학하는 바람에
같은 학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 여동생은 수도여고에 다녔는데(운좋게 공동학군에 배정되어)
어느 날 조금은 늦은 시간에 눈물이 글썽해서 들어왔더군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어머님이 어디 사느냐고 물어
구로동에 산다 하니까 가리봉 옆에 구로동이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답니다.
딸 친구 대접을 한다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자기 딸에게 하는 말이
"제를 집에 데려오는 것은 좋은데, 너는 제 집에 가지마라"라고 하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게된 제 동생은 안 넘어가는 저녁을 꾸역꾸역 넣고 집에 오면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참 제가 어릴 때 작은 꿈 중 하나가 신림동(지금의 신대방동)으로 이사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은 복권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많았는데, 주택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집을 짓거나 사서 이주한 집들이 꽤 있었습니다.
구로동에서 돈좀 벌었다 소문이 나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대부분 신림동으로 이사갔습니다. 그래 우리집도 돈 벌어 신림동으로 이사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대부분 반포로 이사가더군요. 고등학교때는 여의도로요
이 세군데 아직도 전입 못해봤습니다. ㅋㅋㅋㅋ
지금은 조선족 노동자들이 차고 넘쳐 나는 곳
고층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솟아 올라 위용을 자랑하는 곳
멋진 건물들이 하나 둘 올라가는 곳
백화점과 할인매장이 성업하는 곳으로 구로가리봉동(가리봉동은 금천구와 분구될 때 금천구 관할인 가산동과 구로구 관할인 가리봉동으로 나뉘어졌습니다)이 변했지만 지금도 그곳에 가면 어린 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곳에서 10분정도(물론 차랑으로) 떨어진 시흥동에 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