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하나 퍼 왔습니다.
4월 5일 광주발 리포트. 폴리티즌 2004-04-06 8 / 0
politizen.org
대한민국 정치포털, 인터넷 정치공론장, 百花齊放百家爭鳴의 열린 마당 2004-04-06
4월 5일 광주발 리포트.
/ 아리에스
행군 3일 째, 각화동 대동병원 앞으로 출발하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기어서라도 망월동 5.18묘역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독한 바람의 이면에... 누를 길 없는 연민과 안쓰러움이 저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도착한 얼마 후, 대동병원 정문 앞에서 추의원과 뒤를 따르는 지지자 3인의, 3보 1배는 어김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행렬이 많아졌고, 어제보다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화물터미널에선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2층 창문에 까맣게 몰려 서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주시거나 화이팅을 외쳐주셨고, 꽃거리를 지날 땐 화원 안의 많은 상인들이 박수로 환호를 보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길거리의 차량들은 느리게 지나며 추미애, 추미애, 라는 연호를 보내셨습니다.
오늘 행렬엔 특히 여성분들이 많았습니다. 어제 딸을 업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행군했던 젊은 어머니는 오늘 남편분과 함께 다시 참가하셨습니다. '추미애를 보고자파서' 모여든 미래의, 혹은 현재의 어머니들은 그녀를 위해 안타깝고 안쓰러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리 하도록 말리지 않고 내버려둔다며 행렬을 나무라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급기야는 서로 손을 잡아 띠를 만들고 길을 막아서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이러다 기어이 죽어 나가고 말겠다며, 차라리 당신들의 등에 업혀 가자고 발을 굴렀습니다.
광주시내를 빠져나와 인도가 없는 도로로 들어서면서, 삼보일배는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여기에선 휠체어와 도보를 병행하며 국립묘지까지 향했습니다. 인파에 밀려 차량소통이 느려졌으나, 관용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따뜻한 격려들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김홍일 의원이 그 지점에서 합류하였습니다.
행군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광주의 심장,금남로에서 시작되었던 행군, 광주의 중추신경을 관통하여 마침내 망월동 묘역에서 끝난 고난의 행군. 우리는 그녀의 이 행군을 일러 맘 편하게 '삼보일배'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시던 광주의 어르신들은 '어미된 자의 몸부림'이라 하셨습니다.
어미의 마음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자식이 위험한 처한 순간의 어미처럼 강하고 독한 것은 없습니다.
모성이란, 연약한 여성을 절대 전사로 만드는 묘약입니다.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홀랑 벗고 길거리에서 춤을 출 수도 있고, 구걸을 할 수도 있으며 칼을 들고 싸울 수도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어미'인 것입니다.
어미로서의 그녀는 강인했고 당당했으며 한없이 겸손했습니다. 단 한걸음도 흔들리지 않았고, 단 일배도 소홀이 하지 않았으며, 단 한번도 비틀거리거나 쓰러지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망월동 5,18 국립묘역으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그녀의 파리한 양 볼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걷고 절하는 고난의 행군 과정에서 내내 단 한번도 비치지 않았던 눈물, 내내 억눌러 왔던 눈물이 흐르던 그 순간,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 망월동 묘역엔 그저 고요가 흘렀습니다.
고단하고 외로웠을, 초인적인 신념이 필요했을, 그 행군만큼이나 짙을 그녀의 눈물에 대해 저는 어떤 정치적인 평가도 덧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무수한 사람들이 함께 했던 눈물과 침묵, 그 가운데서 우리는 그저 하나였을 뿐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추미애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은, 화합과 용서, 불의에의 저항과 굴하지 않는 신념, 바로 광주의 정신 이라는 조개에 자리를 잡은' 진주의 씨'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진주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화합하고 포용하며 한 발 한 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추미애 의원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이글을 마치겠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제주 4·3사건 56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당일 이곳 광주로 왔습니다. 한 정치인이 갑작스레 대단한 일인 것처럼 3보1배를 올린다는 것에 대하여 저 자신 염치없고, 부끄럽고, 괜히 이러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3보1배를 하면서 1배 1배 걸음걸음 마다 제 마음을 낮추고, 비우고자 할 때, 한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갈등하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묻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고통이 어느덧 잊혀지고, 마음의 빈 자리가 더 넓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고통은 저로서는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 비우기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곳 광주 민주화 영령이 잠든 곳을 목적지로 택한 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당이 민주의 혼이 깃들은 곳이고, 그분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당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하여 당이 망가지고, 깨지고, 금이 가는 가운데 민주당을 믿고 의지한 많은 분들의 마음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저는 침이 뱉어져 있고, 담배꽁초 널려져 있는 길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일배 일배 절할 때, 가장 낮은 사람이길 간곡히 원했습니다.
길 위의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을 보면서 저희도 이와 같이 산산조각이 나 다시 모아져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서로 의심하고 상처 주고 혼미한 길을 계속 걸어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 순간 민주화 영령에 빌고 또 빌었습니다. 우리의 깨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시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결집시켜 민주의 불꽃으로 다시 타오르게 모아주소서.
영령들이시여, 그대들의 피가 얼룩진 길을 더듬어 흙먼지 마시며 모래 알갱이를 더듬어 이 곳까지 왔습니다.
3보1배하며 핏자국을 따라 오는 이 길은, 영령들에 깊은 상처를 드린 것을 속죄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민주당을 지키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이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들은 두렵습니다.
마치 어린 양처럼 의지할 곳을 원합니다. 이 길을 나서면 두려움 없이 갈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흔들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지켜 내고 또 지켜내 민주화 영령들의 혼이 깃든 이 민주당이 새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 기도했습니다.
가장 힘이 부족한 저를, 흔들리는 많은 분들이 의지하실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어려운 이 순간 절박한 심정으로 저의 육신을 내던지면서 이 곳까지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민주당이 다시 부활하여 정의로운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도록 부디 도와주십시오.
힘을 모아 열심히 헤쳐 나가겠습니다!
2004. 4. 5.
삼보일배를 마치며
5.18묘역 앞에서 추 미 애 선대위원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