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넋을 빼놓는 것으로는
섹스 다음으로 골프라더니
다소 경건하다 싶은 나는 골프가 더 재미있다.
다만, 들어가는 쩐(錢)이 만만치 않아
그게 흠이라면 흠이겠다.
그래서 스스로 정리한 철학이
돈 있으면 치고
돈 없으면 안친다는 것이다.
남 눈치 보고 자시고 할 것 없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골프 나가는게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지난 번 수철이 잠깐 나왔을 때의 환영라운딩을
2009년도 행사로 마감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이성민이의 수고를 핑개 삼았다.
그리고 매번 라운딩 나갈 때의 루틴...
이번에는 뭔가 단단히 보여주겠다는 각오였으나
역시나...이번에도 여의치 못한 것 같다.
스킨 하나 못 건지고
김태선이 버디로
민족자본까지 토해내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우울한 기분으로 원인에 대해 분석해봤다.
1. 전날의 과음
뭔가 보여주겠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맨 정신으론 이기기 힘들어
그 전날 막걸리를 너무 쎄게 먹었다.
2. 클럽에의 부적응
이번 라운딩을 대비하여 클럽 일체를 교체하였으나
새 클럽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너무 쎄게 두들겼는지 드라이버 헤드가 빠져버리는 악전고투였다.
3. 딸래미 걱정
라운딩 도중 고3 막내 딸래미에게서
신종플루 여파로 학교가 일주일간 휴교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그 걱정에 정신이 산만했다.
4. 혼란스러운 캐디 시스템
우리 조는 두 명(견습생 포함)의 언니들이 캐디를 봐줬는데
마누라 외에 다른 여인은 절대 가까이 하지 않는 성품에 비추어
많이 혼란스러웠다.
퍼팅 라인도 한 여인은 좌측이 높다 하고
다른 여인은 우측이 높다 하니
어찌 하겠는가...공평하게 가운데로 쳐야지.
5. 이근덕
연습장에서 마지막 칼을 가는데
유태형, 이근덕이가 조인했다.
유태형이 폼은 그저 그런데
이근덕이는 어디서 골프를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정확한 인사이드 아웃
폼이 아주 예쁘다.
나는 다른 사람 폼 좋은걸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6. 우제학
라운딩 도중 스코어 좀 제대로 적으라고
우제학이가 캐디에게 주문한다.
분명 자기는 보기를 했는데
캐디가 파로 적었다나 뭐라나...
사람 살다 별 희한한 넘 다 보겠다는 생각
난 왜 저런 자세가 안나올까 하는 자괴감
온갖 신경에 샷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전술한 악조건에도 불구
본인이 거양한 90대 중반의 성적은 기적이요,
본인의 잠재력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다음에는 뭔가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다.
보여주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