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대안적 모델은 유럽의 사민주의인가? 남미의 21세기 사회주의 인가?
유고 차베스라는 인물이 있는데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 되고 나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맞짱을 뜨며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을 실험중이다.
우고 차베스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푼토 피요라고 하는 보수 대연합 체제를 청산하고, 기득권층의 부패 구조를 개선하고, 기층 민중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볼리바리안 헌법’으로 불리는 민주적인 헌법을 새로 제정하고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어 ‘미션 차베스’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적 개혁 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헌의회 전술이란 헌법을 국민투표를 통하여 싹 바꿔서 의회와 부르조아 국가기구를 무력화 시키고 개혁(혁명)적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것이다.)
미션 차베스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국가 기간 산업의 국유화이다.
대표적으로 국가 석유 공사(PDVSA)을 국유화 해서 여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석유 판매 수익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두 번째는 무상 교육이다.
볼리바리안 학교를 통하여 빈곤층에게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다양한 문화 체육 활동도 제공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대학은 빈곤층에게 우선 입학의 기회를 주고 있다.
세 번재는 무상의료이다.
우선적으로 빈민가에 보건소를 3백개를 설립하였고 쿠바의사 2만여명의 자원 봉사를 통하여 첨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의사 교육과정도 개설하고 있다.
네 번째는 토지개혁이다.
농촌 토지 전체의 80%를 유상 몰수하여 빈농에게 무상 분배함으로써 식량 주권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 토지 개혁은 토지 위원회를 구성하여 빈민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차베스가 추구하는 대안 경제는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와 잉여 소득의 평등분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각종 개혁 정책들 때문에 차베스의 볼리바르식 혁명을 21세기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로 보고 큰 기대를 거는 좌파 진영의 사람들이 많다. (손호철, 조희연, 정대화 등)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나서 신자유주의가 전지구적으로 전면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남미의 종속이론과 해방신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러한 차베스의 실험들은 억압받는 전세계 기층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물론 차베스 혁명에도 한계는 있다.
첫 번째 앤티 세력들이다.
여전히 주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들과 국가 관료 엘리트, 군부 내의 비우호적 세력, 그리고 무엇보다 보수 언론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민영 RCTV의 허가권 재 인정 불허도 차베스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사에 대한 강력 조치였다. (물론 자유주의 시각에서 보면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두 번째는 석유 자원 이외에는 경제 성장의 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즉 장기적 성장과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 시스템의 부재와 석유 판매 수익으로 빈민층을 위한 시혜성 정책 때문에(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함)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세 번째는 세계 시장의 압력에 얼마큼 대처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볼리바르자유무역지대(ALBA) 같은 지역 경제 블록도 세계 시장의 교역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외교적으로는 반미를 외쳐도 미국과의 경제 교역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볼리바르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실시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 민주주의. 즉 민중에게 권력을 주는 제도와 시스템이 더욱 공고화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혁명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을 모아 기존의 국가 기구와자본의 지배 세력에 맞서는 대항 권력을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베스 방식의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은 과연 우리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적 모델이 아닌가?
경제 규모에 있어서 선진국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은 유럽과 비슷하나 시민혁명의 역사적 경험이 없기에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식의 사민주의를 지향하기는 다소 무리스런 것 같다.
정치적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이 유럽과 비교해 너무나 불안정하고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회 갈등요소가 첨예한 부분등 시민의식의 미흡함과 재원 마련에 있어서 조세 저항이 강한 점등은 사민주의를 실시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어진다.
오히려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적 구조와 사회적 양극화라는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남미와 더욱 비슷하다.
차베스 혁명의 의미는 대안적 사회의 모델을 맑스에서 찾지 않고 남미의 원주민 공동체 사회에서 그 기원을 ‘내발적 변화’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과 사회 갈등이 비슷한 우리나라도 남미의 혁명노선을 참고하여 자주적으로 대안적 사회 모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 것 인가...
폐쇄적 체제 속에서 생산수단의 전면적 국유화와 중앙 집권식 계획 경제로 특징 지워지는 북한의 사회주의는 자주와 자립 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유와 시장 경제를 근본 축으로 하는 남한의 사회, 문화, 경제 시스템의 틀 속에서는 받아 들일 수도 없거니와 대안의 단초를 발견하기도 없을 것 같다.
한편 한국은 남미와는 달리 상당히 분화되고 분권화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남미 모델이 가능한지는 다각도로 검토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석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과 무역규모가 절대적인 수준에서 무조건적인 반미 노선을 걷는다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 한 것인지...그 대안은 무엇인지 모색해 봐야 한다.
한국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압축 고성장의 경로로 경제 발전이 진행되어 왔고, 세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있는 경제 규모에서 남미 모델을 따른 다는 것이 적합한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또한 한국에서 제헌의회 전술을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그 현실성과 효용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의회, 사법부만이 권력의 전부가 아니다. 권력의 상당부분은 국민에 의해서 선출되지 않는 자본과 언론, 관료 엘리트, 시민단체에도 있는데 좌파 진영에서는 제헌의회 전술을 통해 이 모든 권력을 일거에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술은 기득권층의 반발 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합의를 얻어내는 헤게모니 싸움에서도 아직은 열세인 것이 분명하다.
(일반 대중은 그런 무시무시한 혁명적 상황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평화 정착과 분배를 통한 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정책은 정서적으로 이념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터인데, 이것을 어떻게 일반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과 아젠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민주 노동당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유주의와 보수적 담론(예컨대, 좌파 무능 정권)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집권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차베스 혁명 방식은 진보 진영 논객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만큼 내게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대안적 비젼이란 경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은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생태, 평화, 여성, 인권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 철학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오히려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고 개인의 욕망-부에 대한 욕망은 가히 천민 자본주의 수준이다-이 팽배한 한국에서 2007년 대선 공간을 통하여 민주 노동당은 평화정착과 양극화 해소라는 아젠다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