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
평소, 나의 친우 김원기 군이 컴, 온라인 등산반 활동을 재밌게 하는 걸 부러워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0 년가까이 된 티뷰론(96년 10월식)을 갖고 있고 자동차를 좋아하기에, 네이버
'카페'에 가입, 최고령 회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삶의 활력소도 되고, 취미도 살리며,
젊은이들과 교감할 수 있어, 참 좋더군요. 무엇보다 이렇게 글감(소재)이 생긴게 더 보람입
니다.
방향타 역할을 해준 '김원기' 친구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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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5월27일) 오후 4시에 퇴근 후, 산을 좋아하시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14명의 교사
들과 '태백산' 등반을 떠났다. 예상보다 숙소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 밤 9시쯤 도착했다. 숙
소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간단한 전야제 회식이 있었다. 동료 교사 중에 한 사
람이 ‘에너시 XO'- 한 병에 약 30 만원 정도 할 거다. - ’꼬냑‘ 을 가져왔었다. 나는 그 거
두 세잔만 마시고, 11시 정도까지만 자리를 지키다가 평소와는 달리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씻은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평소처럼 술을 좋아하는 동료 몇 사람이 바깥으로 술 마시러 가자고 깨우는
거였다. 난 거절했다. 이런 여행을 하면서 처음 있는 나의 거절에 그들도 당황했다. 밖에 따
라 나가면 새벽 2-3시까지 술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입가심으로 또 마시거나 잠깐 눈 붙이
고, 아침에 해장국 먹고 7시쯤 산에 오르는 게 거의 불문율이었다. 난 TCU ‘정모’ 참여를
위해 주력(酒力)과 체력(體力)을 아껴야했다. 이번 정모만은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결심이 흔
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소의 여행과는 다르게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잠
이 깨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다.
잠을 충분히 자지는 못 했지만, 과음을 피했기에 다음날(28일) 몸 상태가 비교적 좋은 채로
1567 미터 정상의 '태백산'을 올라갔다 올 수 있었다. 서울까지 오는데 고속도로 길이 뻥 뚫
려 8시쯤에는 ‘정모’ 장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서울에 다 와서 올림픽대로가 양방향
모두 꽉 막혀 있었다. 정말 갑갑했다. 결국 내 티뷰론을 주차해 놓은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
니 밤 9시가 넘었었다. 일행들과 지금 헤어져도 올림픽 대로와 미사리를 지나 약속 장소에
가려면 어차피 길이 막힐 것이다. 차라리 마지막 회식에도 참석하고 길이 뚫리면 출발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10시까지의 등산모임 회식을 마치고 ‘정모’ 장소로 차를 몰았다. 물론 음주 운전 불가의 원
칙에 따라 술은 소주 두 잔밖에 마실 수 없었다. 오랜만에 지나가는 주말의 미사리는 네온
과 가수들의 이름을 걸어놓은 현수막으로 요란했다. 팔당대교 입구 근처까지 왔으나, 프린
트해온 길 안내 글을 몇 번 읽어도 판단이 서지 않아, 두 번에 걸쳐 휴대전화로 길 안내를
받은 끝에 ‘정모’ 장소에 도착했다. 모두들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특히, 얼마 전에 애마의
전복사고로 하마터면 '티슈'와 영원히 이별할 뻔한 '비트'님이 건강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보다 키가 크고 몸집이 다부져보였다. 아마도 마당 모서리에 있던 아반테 투어링을 타고온
모양이다. 주인을 살리고 처참히 망가져 폐차된 그의 파란색 머쉰이 떠올랐다.
한 사람을 더 소개 받았는데, 자리를 제공한 검은새님의 마눌님이었다. 머리 모양이 내가 좋아
하는 스타일이다. 긴 생머리... 아마도 남자들 중 90%는 여자들의 이 긴 생머리를 좋아할 것
이다. 하지만 이 머리 스타일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젊은날 두
여배우를 짝사랑했었다. 하나는 홍콩 여배우, '진추하'였고, 또 한 여인은 '올리비아 핫세'였다.
까만 머리의 진추하와 갈색 머리의 올리비아 핫세, 두 여인은 모두 검은새님의 마눌님과 같은
머리 모양이 잘 어울리는 여인들이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두 여인의 아름다움을 앗아갔지만,
아름다움이란 소멸하기에 더욱 빛나는 게 아닐까? 그녀의 너무 지나치게 짧은 치마가 내 빨간
점퍼를 벗게 만들 뻔했다. 다행히 본인이 분위기에 맞게 처신하는 걸 보고, 입고 있던 옷만큼이나
세련된 감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난, 대학 다닐 때 별명이 매너 '정' 이었는데, 그 별명이 붙게
된 계기가 중국집에서 개강 파티나 종강파티할 때 짧은 치마 입은 여학생에게 기꺼이 상의를
벗어서 무릎에 얹게끔 배려한 데서 출발했었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이야 못했지만, 그날의 맛난 음식은 '비사랑님'과 더불어 검은새님의 마눌님
노고가 컸을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모임이 벌써 1차는 파장 분위기였다. 안주도 탄고기 몇 점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반스님’ 부부와 우리의 분위기 메이커 ‘동동’님이 오시면서 잠시 소강상태였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울프’님의 사회로 각자의 소개 겸, 모임에 대한 회원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서로가 바쁘게 술잔을 돌리며....
여자 회원들이 맥주를 선호했으므로 그걸 더 장만해서 숯불 주변으로 빙~둘러 앉아 본격적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난 번 우리 학교 앞에서의 번개 때 만났던 사람들과의 눈맞춤이 역시 친근했다.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붙는가 보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도 울프, 푸딩, 사계절, 반스, 동동,
'검은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나온 사이인 것처럼 느꼈다. ‘곰’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피
오나’님이 바로 ‘곰’ 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반가웠다. 자기가 빠진 번개는 무효라면
서 우리 학교 앞에서 ‘번개’를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30살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와 퍼폼먼스가 발랄한 아가씨였다. 맥주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이어
지던 ~ 장난하냐? ~장난하냐? 장난하냐? 는 얼마나 세뇌가 되었는지, 이틀이 지난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중간에 동동님의 자동차를 구경했는데, 오디오 튜닝이 대단했다. 트렁크에도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댄스곡을 조금 크게 하니까 엄청난 출력으로 자동차 전체가 진
동을 했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고, 순정 상태의 내차도 새 차 출시 때의 비슷한 가격대 차
에 비해 소리가 좋은 편이라 만족하며 다녔었는데, 동동님의 자동차 오디오 소리 때문에 내
귀를 버리고 말았다. ‘아, 자동차 안에서 저 정도의 음질도 즐길 수 있구나!’
몇 시쯤인지, 오늘 낮의 등산과 도착해서 주고받은 술에 취해 시간 개념이 없어지면서, 올
챙이님과의 내 13년 된 콩코드-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도색 상태도 엉망 - 성형 수술에 대
한 상담도, 나이에 비해 젊음과 애교를 잃지 않은 산차이님의 모습도, 청치마 입은 동동님
의 예쁜 다리도, 하얀 면바지가 잘 어울리는 피오나님의 ~ 장난하냐? - 푸딩님을 집중 공
격(?) -도, 더 이상 졸려서 무거워지는 내 눈꺼풀을 올리게 하지 못했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호스트인 검은새님은 무척 바쁜 것 같았다. 행사를 진행하
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검은새님께 물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검은새님
의 작업실 2층에 있던 침실은 새 침대가 장만 되어 있어서 아주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
었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일어나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가까웠고 사계절님만이 남아 있었다. 사계절님의 이야기가 아침 6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었
단다. 젊음이 좋긴 좋다. 하긴 나도 그 시절에는 밤새워 술 마시고 다음날 등산을 할 수 있
었지....
술이 아직 덜 깬 상황에서 갑자기 우리 학교 앞의 ‘칡냉면’ 맛있는 집이 생각났다. 사계절님
에게 어떻겠냐고 의사를 물어보니 좋다고 했다. 일요일이니 시내로 가는 길은 막히지 않을
테고 둘이서 하는 그룹 드라이빙도 재밌을 거 같았다.
사계절님이 앞장서고 방배동 내 직장 ‘서문 여중’ 주차장으로...
올림픽대로 진입하자마자 '혼다 어코드' 3000 씨씨 차량이 얌체 운전을 하는 거였다. 난 그
때 처음으로 사계절님 차의 위력을 보았다. 포유 동물의 포효 소리와 같은 머플러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두 줄 노란 줄무니의 티뷰론이 사라졌다. 난 기어를 4단으로 내
리고 액셀을 힘주어 밟았다. 순식간에 시속 140킬로에서 5단으로 바꾸는 순간 간신히 사계
절님의 차량에 바투 붙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사계절님은 길에 여유가 있는데도 더 이상의
속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튜닝카에 대한 부러움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칡 물냉면 두 그릇을 시켰다. 난, 술 마신 뒤 입맛이 없을 때
물냉면을 먹는 버릇이 있다. 다행히 사계절님도 맛이 괜찮은 지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는 거
였다. 이렇게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파김치가 된 몸을 추스르고 월요일인
오늘 이 시간 기력을 회복해서 이 글을 쓴다.
내 생애 최초의 ‘정모’는 참 뜻 깊었다. 사정으로 늦게 참석해서 보다 다양한 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해서 아쉬웠으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다가 아마도 잠시 침체기에 있었던 TCU가
이번 정모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듯한 느낌이 들어 회원으로서 마음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행사의 준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제법 많은 식구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묵묵히 역
할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뒤늦게 장소에 갔고, 체력의 고갈로 파장 때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그 역할을 누가 했는지 알 턱이 없다. 개인적 사업 일로 바쁜 시간을 쪼개 장소를
제공하고 정모를 주관한 검은새님과 언제나 모임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울프님과 내가 미
처 고마움을 깨닫지 못 한 우리 TCU 가족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다시 표현하며, 우연히 네
이버를 검색했다가 선택한 ‘TCU’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회원이 되고자 노력
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2005.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