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놈이 되기로 작정했다. 이후 염치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맞는 햇빛은 강렬하다. 구름 한 점의 방해도 없이 바로 내리쏟는다. 그 빛을 피하여 가리개를 내렸다. 한참이 지나 이제 거의 오지 않았나싶어 걷어 올렸다. 한반도의 지형과 전혀 다를 것 없는 광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제법 높아 보이는 산마루의 때깔이 달라 자세히 살펴보니 눈이다. 높은 곳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다. 북쪽이라더니 춥긴 추운가보다. 갑자기 겨울의 기운이 엄습해온다. 일순간에 느끼는 체감의 정도가 너무 극과 극이다. 몇 년 전 대련을 지나는 할빈 길에서와 같은 흥분은 일지 않았다. 이렇게 연해주와 첫 대면을 하였다.
갑자기 계획된 여행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제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마음을 먹었다. 조그만 비행기에 올라서면서 잔뜩 서양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새로운 카펫에서 나는 듯한 냄새가 실내에 가득하다. 현기증이 일 정도의 거북스러운 냄새는 서양인의 냄새다. 그 나라에 가는 놈이 그 냄새를 탓할 자격은 없다. 그저 적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국경선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주 일대는 몽고 계통의 종족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러시아의 국경이 예까지 이르게 됨으로써 비행기 안에서조차 서양 여자의 봉사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중국의 경우와 비교가 되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오락가락한다. 물론 종족의 우열과 호불호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문화·종족적 차이에서 비롯된 현기증과 감상을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간도 연해주는 우리에게 아주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요즘 고구려와 발해에 관한 연속극이 모든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감도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러기 전부터 독립운동사에 빠질 수 없는 곳이 간도이고, 이민사에서도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지금은 이질적인 문화 그대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만, 중국의 동북과 연해주는 만주로서 하나였다. 저 서쪽 요녕에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땅이 만주다. 구태여 우리 역사로 얘기하면 부여인, 고구려인, 발해인 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말을 달리고, 땅을 일구던 삶의 근거지다. 이 뿐이겠는가. 말갈족, 여진족, 선비족 등등 몽고 일대의 종족들이 오르내리며 살았던 곳이다.
공항에 근무하는 종사원의 털옷을 보고 추위를 다시 상상해야 했다. 멋있는 활주로와는 다르게 시외버스터미널과 다름없는 블다디보스톡 공항에서의 일처리 또한 구식 사회주의의 타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시간은 우리보다 2시간이 빠르다. 어둑한 시각에 도착해서 숙소까지는 몇 시간을 달려야 했다. 밖의 광경을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안내자의 말을 들으며 깜깜함에 갇힌 차 안에서 꼼짝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휴게소랄 것도 없는 조그만 공터에 머물며 노천에 방뇨했다. 몇 사람이 같이 하는 일이라 전혀 거북스럽지 않았다.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 오줌을 싸다가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 참으로 오랜만이다. 은하수까지 선명한 무수한 별들이 가득하다. 저렇게 많은 별들은 1990년 지리산에서 보고 난 이후 처음이다. 주위의 불빛은 거의 없다. 마침 그믐께라 별 구경하기엔 딱 들어맞았다. 앞으로의 일정과 상관없이 매일 밤 별구경으로도 본전을 다 뽑겠다싶었다.
근처가 우수리라고 한다. 간헐적인 불빛이 점점이 보였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강 이름과 함께 한 도시이다. 레온사인도 없고, 도로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차도 흔치 않다. 첫 숙박지까지는 꽤 남았다고 한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다듬어진 2차선 포장도로가 끝없이 어둠 속에서 다가왔다. 하바로브스크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많이 듣던 도시이름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꼭 등장하는 근거지 중의 하나이다. 그냥 멀어져버린 과거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듯이 상상으로만 막연하게 들어왔던 그곳이 목전에 있다는 생각에 미쳐서는 시간 흐름의 괘도를 잃어버렸다. 주위의 환경을 명확하게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렇게 적막하고 너른 곳에 많은 사람들이 거의 타의로 옮겨와 살았을 것이고, 이를 근거지로 망명한 정치가나 독립운동가들이 스며들어왔을 것이다.
몇 시간을 내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그라노프라고 하는 것 같은데 지명을 외우지 못하겠다. 그저 연해주의 한 지점이라고 알기만 해도 더 이상의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았다. 겉모습만 훑기에도 벅찼다. 바깥의 공기는 아주 싸늘했다. 겨울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어린 시절 초겨울의 고향 정취와 하나 다른 게 없다. 하늘엔 역시 별들이 가득하고, 감싸고 들어오는 냉기, 개소리, 인근 농토에서 풍기는 작물의 냄새까지 말이다. 주위 사람들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다른 나라라고 여길만한 것이 없었다.
늦은 저녁과 함께 곁들인 보드카는 여독을 풀기에 적격이다. 먼 곳에서 왔다고 지인들의 대접이 유별나다. 몸소 길렀다는 배추 잎을 역시 그렇게 한 콩으로 담근 된장과 함께 한 맛이 그만이다. 토끼가 먹듯이 연신 어그적거렸다. 우리 시간으로 1시가 훨씬 지났다. 여기의 시계는 3시를 넘어섰다. 밤이 늦도록 이 얘기 저 얘기로 시간을 잊었다.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무용담, 놀이꺼리 등은 끊임없는 흥미를 유발시킨다. 곰 사냥, 녹용, 가물치, 호랑이까지 소재로 등장한다. 날이 밝으면 몸소 해보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다짐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뜨끈하게 뎁힌 온돌마저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린다. 그냥 고향의 품 안에 녹아들었다.
날이 밝으면서 만주벌판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빛 속에 드러낸 연해주의 첫 풍경은 호남 김제의 들과 다름없었다. 아득한 저 멀리 산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농지다. 호남 일대의 지형과 너무 흡사하다. 각이 없는 밋밋한 산, 들, 구불구불한 길, 흙빛까지 그대로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흙길을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주변의 풀들도 전혀 낯설지 않다. 올 여름 발해 상경 도읍지를 돌아볼 때 길 옆 화단이 꽃들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맨드라미, 사루비아 등등. 모든 인공조경지에는 이 꽃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채취를 머금고 말이다. 흐릿한 향수와 서글픔을 맛보아야 했다. 한 달이 지난 초가을에는 보름달이 휘황한 밤에 할빈에서 장춘까지 내달린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한껏 피어난 코스모스에서도 같은 감정이 일었다. 나라는 다르지만 그곳과 멀지 않은 여기 연해주에서도 다름없는 향수를 맛보게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는 이 감정에는 굴절된 근현대사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이국에서 느끼는 고향의 정취로 말미암은 사고의 끝이 어디겠는가.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려는 독립운동가도 아니면서 표현할 수 없는 잔잔한 서글픔을 새벽부터 가슴에 품어야 했다. 몇 십 년 전의 그들을 떠올리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 노랫가락이 저절로 연상되는 벌판의 드라이브는 색다른 맛이다. 비포장이지만 찦차는 100키로를 넘나든다.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목적지를 잃어버린 주행이 이어진다. 멀리 산에는 잣나무와 참나무들이 가득하다. 주로 참나무들이다. 너른 들은 주인을 잃고 묵어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에는 벼와 콩이다. 잡초만 가득 한 들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몇 그루 나무가 자라는 곳은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사하라 사막의 초지와 진배없다. 사냥터로서는 그만일 것이다. 벼는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파농법을 쓴다. 도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란다. 콩도 마찬가지다. 씨를 뿌리고 익으면 걷는단다. 이도 기계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연친화, 유기농, 웰빙 등등의 단어가 적합하다.
시야가 망망한 벌판을 몇 시간 동안 내달려보라. 몽고의 초원에서 그냥 말이 지칠 때까지 내달리고 싶은 욕망에 여러 번 사로잡혔었다. 그것을 예서 풀어버리겠다. 사람이라곤 전혀 눈에 띠지 않는다. 빈 나라, 아니 상상 속의 공간에 온 듯한 환각에 젖어버린다. 담배를 위해 잠시 쉬는 시간에도 머리 속이 멍하다. 주위에 내 모든 것을 빼앗긴 탓이다. 내가 없다. 느껴지지 않는다. 대마초와 다를 바 없다. 거대한 자연 속에 빠져 들어간 환각 상태는 외로움도 거추장스럽다. 건조한 대지에 한 점의 몸뚱이가 흩어 사라진다. 환각에서의 질주가 또 이어진다. 가도 가도 그 모습 그대로다. 풍경에서의 특색은 이제 찾아지지 않는다. 달려도 그곳이고, 내려도 그곳이다. 쉴 새 없이 달리는 데도 말이다.
한 나절을 그렇게 달렸다. 좁은 차안에서 흔들림을 온 몸으로 이겨야 하는데도 그 수고로움을 모르겠다. 완전히 갔다. 벙한 상태에서 점심이 나온다. 역시 고향이다. 반주로 내온 술이 웅담주란다. 지난 언제 몸소 잡은 곰에서 뽑은 쓸개를 보드카에 넣어두었단다. 그 쓴 맛에 잠시 정신을 차린다. 흔히 맛볼 수 없다기에 큰 잔에 두 잔을 마셨다. 40도의 술만으로도 이기기 힘든데, 웅담의 기운이 뻗쳐서인지 취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온 몸이 흐느적거린다. 혀는 제멋대로 움직인다. 솟구치는 몸 안의 열기가 얼굴을 달군다. 다리는 휘청거리고, 눈알은 초점을 잃고, 저렇게 태양은 투명하게 내리쏟는데. 벌건 대낮에 경치에 취하고, 웅담주에 취하니 사는지 죽는지 모르겠다. 욕심에 네 잔을 먹은 옆 사람은 계속 헛소리다. 그 취태가 또 왜 그리 귀여운지. 술에 좋은 보약까지 보탰으니 여자도 그릴 만한데, 전혀 상이 잡히지 않는다. 누워도 표시가 없고, 뛰어도 제자리고, 소리를 내질러도 메아리조차 없는 뻥 터진 벌판에서 허공을 휘젓는다.
그 취기에 젖어 다시 내달린다. 여전히 비포장도로다. 돌맹이 하나 없다. 지나친 속도다 싶어도 제지를 못하겠다. 이는 다만 좁은 차 안의 속도계의 표시일 뿐 밖을 보면 그 속도를 모른다. 바다에서의 수영속도가 무슨 구별이 되겠는가. 가도 그 자리, 날아도 그 자리인데. 잘 달리는 말을 타보겠냐는 제의에 호기삼아 대답은 했지만, 막상 앞에 나서니 하지 못하겠다. 취기 속에서도 목숨의 위협은 감지가 된다. 다음으로 미뤘다. 건장한 백마와 흑마는 타봄직하다. 놀리듯이 옆에서는 저걸 타고 가고 싶은 데까지 가보란다. 그리도 바랐는데 막상 닥치니 엄두가 안 난다. 찦을 말로 여기겠다고 넘어갔다. 저쪽에는 꽃사슴의 무리가 한가롭다. 잠시 한적한 기분에 젖기도 전에 ‘저거 먹고 싶느냐’고 묻는다. 순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아무렴’하고 말았다. 기다리란다.
또 질주다. 이건 드라이브가 아니다. 그냥 벌판을 내질러 달린다. 운전자 겸 안내자는 무슨 말을 계속 지껄여대는데 듣다가 말다가 취하다 깨다가 흔들거리며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쉬지 않고 달린다. 여전히 주위의 환경은 별나지 않다. 멀리 산, 그 산까지 이른 들, 곳곳의 개울과 다리, 막바지에 이른 단풍을 매단 나무들, 까마귀 떼, 꿩 무리. 사냥이 끝내준단다. 몇 시간을 내질러 해가 질 무렵 조그만 동네에 닿는다.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다. 느슨한 언덕에 자리하였다. 뒤쪽 산에는 자작나무가 가득하다. 북쪽인 줄을 알겠다. 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숙소는 호텔 이상이다.
따뜻한 온돌에 몸을 녹이기도 무섭게 술을 하잔다. 아직 쓸개의 위력이 사라지기도 전인데 말이다. 들고 온 상에는 배를 썰어 섞은 생고기가 가득하다. 아까 그 사슴이란다. 사슴은 육회로 먹어야 제 맛이라나. 언제 시켰는지 한 놈이 죽어 상에 올라왔다. 붉은 간까지 곁들여져. 맛이 좋다. 날고기를 찾아 먹는 편인데 이런 고기는 처음이다. 안주를 위해 술을 마셨다. 안주가 주인이다. 수고한 사람을 위한 공치사를 늘어놓고, 러시아 아가씨들의 요염함을 주제로 삼다가, 언뜻 북한의 핵이 어떻고, 독립운동사가 어떻고, 고려인들의 이주역사까지 곁안주로 오르내린다.
북간도는 황무지였다. 여기의 땅을 경작하기 위해 일제시대 강제 이주시켰다. 대부분 이때 끌려온 조선 사람들이 이 땅을 일구고, 식량을 생산해냈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여기에서는 고려인이라 한다. 길림성, 흑룡강성 일대의 만주에는 아직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모란강시를 비롯해 인근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많은 조선족들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일대의 땅을 일구며 살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채소와 수박, 동북미라 불리는 쌀이 나온다. 노는 땅이 별로 없다. 이와 달리 러시아의 연해주는 사정이 다르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의 고려인이 일본을 돕는다는 구실을 잡아 추수를 앞둔 가을 갑자기 강제 이주시켰다. 애를 낳다가도 가야 할 정도로 심했다고 한다. 이들은 지금의 카자흐스탄 일대의 중앙아시아로 옮겨졌다. 두 번째로 당하는 강제 이주였다. 이로 인해 연해주는 빈 터가 되고 말았다. 인적이 드물다. 주인을 잃은 빈 들은 이렇게 생겼다. 한에 맺혀 끌려간 이들의 자손들 중 다시 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단다. 그런데 소련의 붕괴와 함께 나라가 달라져 이주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경우엔 이주나 이사가 아니라 국적을 바꾸는 귀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형으로는 중국 쪽 만주나 여기 만주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저긴 농토고, 여긴 벌판이다.
오거니 가거니 주고받는 술, 사슴 생고기, 잡담 중에 요기를 느끼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자리를 잡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하늘을 본다. 이게 웬 장관이냐.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 시골 벽지의 드문 전기, 시기마저 그믐이어서 주위는 칠흑인데, 반해서 하늘은 제 모습 모두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가운데 은하수가 선명하고, 뭔 별들이 저리도 많은지 두려움마저 들었다. 오던 길에서의 광경과는 사뭇 비교가 되지 않는다. 추위를 견디기 힘들 때까지 머물러 우러러봤다. 사늘한 공기 때문인지 스타파네트가 어쩌고 하는 장면은 어울리지 않았다. 저러한 공간에 떠 있을 조그만 땅 덩어리가 실감났다. 우선은 문학적이라기보다 과학적이었다. 그리고 여기 서 있는 난 뭔가 하는 철학적 단계에 이른다. 진짜 인생살이의 전면이 사소한 한 줌으로 쥐어졌다. 별. 누군가 뭔 보석가루를 잔뜩 뿌려놓았다고 하는 표현이 맞다. 노쇠해가는 골이 더 이상의 상상을 이어가지 못한다. 그냥 참 좋다. 새삼스럽고. 밤사이 이 광경이 아까워 몇 번을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이튿날에도 미친 듯한 질주가 계속되었다. 지도의 어디인지도 모른다. 어디라고 얘기해도 기준점을 잡지 못한 놈이 측량이 되겠는가. 차에 있는 나침반으로 그냥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만 헤아리고 있을 뿐이다. 한참 뒤에 중국의 국경과 멀지 않은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띤다. 익숙해진 중국의 음식과 아가씨들,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다. 어만 생각에 멀리 눈을 드니 웬 바다가 보인다. 물을 수밖에. 연해주의 명물인 항카호수란다. 제주도의 2배만한 크기의 호수다. 중국에서는 신카이후(興凱湖)라고 부른다. 75%는 러시아, 25%는 중국 것이란다. 그 가에 다다라니 모래사장까지 널찍하게 펼쳐져 있고, 파다가 일렁거린다. 별스런 구경꺼리다.
지루할 정도의 드라이브도 이제 질렸다. 자연 앞에서 역사와 국가는 의도적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맡겨버렸다. 애써 자연의 위대함이나 광대함도 지껄이지 않았다. 어쩌면 환각과 취기가 어울렸다. 그 기운으로 도시로 나가자고 했다. 블라디보스톡이나 우수리에 나가면 이 잠잠함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연신 안내자는 러시아 아가씨 자랑이다. 블라디는 꽉 잡고 있다느니, 어디가 어떻고, 누구가 좋고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 매달린다. 빨리 가자고. 약만 잔뜩 올려놓고 하는 말이 우습다. 여기서 6시간을 가야 한단다. 발동이 걸린 놈이 시간이 무슨 대수겠는가. 10시간이라도 가자고 했다. 찬 물을 끼얹는다.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다음에 넉넉한 시간 잡아 언제든지 오라고. 아예 공항에서 내려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내잔다. 지리를 알고, 운전을 하는 놈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 보채면 발정난 놈이 되고 말겠다싶어 억지로 억지로 짓눌렀다. 그 뒤의 여행은 맥이 빠졌다. 다시 반복되는 주행은 피곤함이다. 웰빙의 저녁을 먹고, 별 구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잡담을 한다.
중국의 동북 기행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은 연해주의 여행으로 구색을 갖췄다. 발해와 말갈의 터전으로서 하나인 이곳 일대는 국사의 범위를 머리에 깔고 보아야 하나로 보인다. 겉핥기로의 첫 기행은 다음의 과제를 남긴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주제로의 정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얘기는 일종의 습관된 의무감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간질간질 욕망이 꿈틀거린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