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웟 위민 원트'로 유명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
들'이란 제목부터 여운을 주는 이 영화는 노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로멘틱 코
미디이다.
영화를 보기 전 제목의 물음에 나름대로 답을 상상해 보는데 나의 예상은 영화
의 정답에 그리 빗나가지 않는다.
63세의 해리(잭 니콜슨)는 20대의 쭉쭉빵빵한 아가씨들만 상대하는 잘 나가는
음반 제작자. 해리는 미모의 경매사 마린(아만다 피트)과 데이트를 즐기기 위
해 해변가에 있는 근사한 그녀의 엄마 별장에 놀러간다. 해리에겐 마음과 성적
욕망은 넘치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비아그라를 먹은게 화근. 마린과의 육체
적 관계를 가지려다 그만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만다. 남편과 이별하고 유명
한 희곡 작가로 살아가는 마린의 엄마 에리카(다이안 키튼)는 예기치 않게 해
리의 간병인이 된다. 해리의 주치의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이 해리에게 몸 상
태가 안좋으니 완치될 때까지 이 별장을 떠나면 안된다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
이다. 젊고 매력적인 주치의 줄리안은 희곡 작가 에리카의 왕 팬. 줄리안은 에
리카를 흠모하는 작가의 차원을 넘어 그녀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면서 사랑
의 구애를 펼친다. 에리카는 해리와 처음부터 티격태격 싸우는데 이상하게 끌
리는 묘한 감정을 갖게 되고.... 눈치빠른 딸 마린은 남자친구 해리를 쿨하게 엄
마에게 양보한다. 이제 에리카를 둘러 싼 본격적인 삼각관계가 시작되어지는
데... 20살 연하의 젊고 매력적인 줄리안과 머리가 벗겨진 비슷한 연배의 세속
적인 해리...과연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에리카와 해리는 티격태격 싸우는 일상속에서 서서히 경멸하던 서로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친숙해 지는데.... 해변을 산책하면서 에리카가 예쁘고 하얀
돌들만 줍자 해리는 인생이란 그렇게 하얀 돌들만 있는 게 아니라면서 시커먼
돌 하나를 그녀에게 건넨다. 에리카가 유리병안에 흰돌을 가득 담아 놓고 그 위
에 해리가 건네 준 시커먼 돌을 얹어 놓는 장면이 잠깐 인설트 되는데, 눈치 빠
른 관객이라면 그 때쯤 반전을 예상하게 되고, 그 경쾌한 반전은 우리를 실망시
키지 않는다.
같은 별장 각자의 방에서 채팅을 하다 해리는 배고프다고 응석을 부리고 에리
카는 기꺼이 팬 케이크를 요리해준다. 하지만 팬 케이크는 보조관념. 요리를 하
면서 대화하다 눈이 마주치고 둘은 별로 뜸도 들이지 않은 채 바로 키스를 하
게 된다.
불 붙은 둘은 침대로 자리를 옮겨 본 게임에 들어가려는데 해리는 터틀넥이라
는 목이 꽉 죄는 에리카의 하얀 옷 때문에 끙끙거린다. 새로운 환희에 흥분한
에리카는 가위를 건네주고 해리가 거침없이 터틀넥을 잘라내자 20대 못지 않
은 탄력있는 에리카의 육체가 드러나자 카메라는 슬며시 옆으로 빠져준다. 물
론 에리카의 무방비 괴성은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슬며시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운다.
사랑에 빠져 버린 에리카. 매력적인 젊은 의사 줄리안은 점차 다가서며 키스까
지 나누게 되는데, 바람둥이 해리는 몸이 완치되자 별장을 떠난다. 에리카에
겐 '당신을 사랑한다' 대신 '당신은 사랑 받을 만한 여자'라는 다소 헷갈리는 말
만 남겨 놓은 채 말이다. 바랑둥이 어록에 들어갈만 할 그 말을 알아들은 에리
카는 실연에 온 몸으로 울부짖는데, 과장되게 울부짖는데 관객에겐 전혀 오바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에리카의 슬픔에 우리도 뛰어들어 그녀와 하나되
게 하기보다는 그녀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그녀의 슬픔을 맑게 들여다보게 하
는 감독의 연출과 에리카의 리얼한 연기가 압권이다. 느닷없이 실연에 빠지게
된 에리카는 자신의 실연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희곡으로 옮겨 놓는데 연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편 에리카와 헤어진 해리는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지울 수 없게 되는데... 찔
끔 눈물도 흘리고 만다. 천하의 바랑둥이 해리가 쭉쭉빵빵한 미모의 20대 아가
씨 때문이 아니라 눈가에 주름살 가득한 56살 에리카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
니.... ^^
자, 이제 감독이 반전의 모티브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
이 부분은 비디오의 몫으로 남겨 놓도록 하자.(영화를 직접 보러 갈 것 같지는
않고 비디오 정도 출시 나면 빌려 볼테니깐...)
우리가 60대가 되었을 때 그 때 나는 사랑에 대하여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까...
섹스에 대하여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까....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내게 슬며시 던져놓으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다. 이 영화는 노년의 여성에게 있어서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서정
적 보고서이다. 영화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능력있는 60대 남성에겐 사랑은 멋
진 로맨스일 수 있지만 여성에겐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기에 그건 환상
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진짜 사랑 이야기라는 '죽어도 좋
아'를 보고 싶어졌다. 노년의 사랑이야기를 잔잔한 감동과 유쾌한 웃음으로 예
쁘게 포장한 영화 '사랑할 때...'와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죽어도 좋
아'를 비교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