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사가 있던 그제는
오랜만에
대학시절 친구들과 어울렸다.
멜랑꼬리한 날씨에 무상함만 더한지라
종로 YMCA 근처 선술집에서 막걸리 몇 사발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하곤
모처럼 일상으로부터 일탈해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어딘 가로 떠났다.
추억 만들기였던 셈이지.
택시 안에서 보니
돈화문과 그 옆 돌담길이 언뜻 눈에 띄었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미아리 나이트클럽 돈텔마마였다.
부킹이 잘 된다나 뭐라나…
가긴 갔는데 그 방면에는 다 문외한들이라
우리끼리 노래나 부르며 시간을 죽이기로 했는데,
친구 한 놈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부른다.
그걸 듣고 있노라니
아까 보았던 비원 돌담길의 모습과 함께
가슴 한 켠에 묻어 두었던
옛 기억이 아프게 배어 나왔다.
……………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에
계집애처럼 예쁜 친구가 있었다.
집에 놀러 가 보니
부모님은 비원 앞에서 조그만 문방구를 하셨고
집안 내력인지
역시 큰 눈망울에 아주 귀엽고 예쁜 여동생과 오누이였다.
그 당시
그녀(?)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으니
중학생인 나로서도 구체적으로 흑심을 품을만한 개재는 아니었으나
아마도 그게 나의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殘雪로 질척거리는 돈화문 옆 돌담길을 지날 때는
행여 발이라도 젖을 새라 업어 주기도 했다.
나중에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그런 상황에 대한 문학적 이해와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지.
중학교 졸업 후
다시 그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도 그 근처에 가면 항상 예쁜 오누이의 도란거림이 느껴진다.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언젠가 그 문방구를 다시 찾았으나
창 속에 비치는 백발이 성성한 친구 어머니의 모습에
이내 발길을 되돌렸다.
아사꼬(朝子)를 끝내 찾지 않았던 것처럼
흘러간 세월의 확인처럼 부질없는 짓이 없으리라.
그런데
그런 코흘리개 어릴 적 기억에도
왜 이리 가슴 시리고 아파 오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정녕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의 지난 날이기 때문인가…
추억 만들기 보다는
주책스런 감수성에 옛 추억만을 되씹은 그런 밤이었다.
ps
글을 쓰고 나니, 그 절절함의 10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요찬아,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좀 붙혀 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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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으니... 그러구 말구! - From 요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