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해맞이 행사에 소원을 물어보면 거의 모두 가족 건강하고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자녀들 공부 잘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소원이라는 것은 현재 없거나 있더라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며 또한 원해도 모두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 추운 날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라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불행이라는 것을 비껴나가기가 쉽지 않고
새해의 소원이 쉽게 얻어지는 그런 현실에서 살고 있지 않다.
직업상 신문 읽는 것이 업무인 관계로 많은 통계자료를 접하게 된다.
흔히 접하는 좋지 않은 일의 통계자료를 보면(우리나라 최초 ㅋㅋ)
교통사고 사망자 7,700명. 부상 휴유증 환자20,000명....(2006년)
교도소 수감자 67,000명....(2,000년)...매년 1만명 발생 추정.
이혼자 125,000건(250,000명).....(2006년)
신용불량자 266만명....(2007년)
자살11,000명.....(2006년)
암 환자 발생 106,000명(2006년)
순수 실업자810,000명....(2007년)
병원 병상수(종합,일반,요양원)308,000명......(2007년)
마약사범 11,000명....(2007년)
전국 중,고등학교수4,800개.....10반 기준으로 반에서 꼴등......48,000명
작년 우리나라 인구는 4천9백만명, 가구 평균 인원을 3.5명으로 했을 시
1천4백만 가구가 있다.
통계 방법상 문제는 있지만 대충 계산해 보면 한 가구당 위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30% 수준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발생하면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므로.....)
한해는 비껴갔지만 매년 비껴갈 확률은 운이 좀 따라야 하며
결국 우리의 새해 소원은 올해도 불행을 피해가는 70% 안에 들도록 해주십시요
하는 기도와 진배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불행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력과 잊을 수 있는
망각이라는 조물주의 선물을 지니고 있어 슬기롭게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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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중국 올림픽이 시작 되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국가)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대접을 받는 것이 생활화 되고 익숙한 사람들은 웬만한
정성에 감동받지 않는다.
오히려 대접의 양이 적다며 화를 낼 수도 있다.
부자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일수록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어려운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도 감동의 폭이 크게 되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을 보니 지상 최대 쇼이자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치밀하여 눈은 즐거웠지만 감동은 없었다.
유제두와 홍수환의 손놀림 하나에도 열광했던 내가
중국이 7년간 노심초사 준비한 쇼를 보고도
덤덤하니 나이 탓인지 먹고 살만해 져서 그런지 헷갈린다.
그러나 감수성의 천재라는 장예모(장이머우)감독은 개막식 퍼포먼스에
용의 그림을 그린 후 눈동자 대신 쓰촨성 소년을 그려 넣은 것이다.
중국선수단 기수인 NBA 스타 야오밍이 쓰촨성 지진을 극복한
9살 소년과 함께 걸어 나온다.
행,불행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선수단도 아닌 소년을 끼워 넣어
작위적인 분위기를 의도한 연출자의 배려에 작은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그 아이는 없는 자, 낮은 자, 힘든 자 즉 불행한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리닝이 공중을 걸어 다니며 성화점화 했고 아니 수천미터 상공에서 고공낙하를 하면서
점화를 했더라도 그것은 써프라이즈지 감동은 아닌 것이다.
야오밍이라는 행복과 쓰촨성이라는 불행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행복은 불행을 통해 극대화 하고
불행은 행복의 도움으로 극소화 시킬 수 있다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던 것이다.
쓰촨성의 소년과 야오밍은
먼 훗날 그 자리가 바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생은 참 어렵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행복과 불행은 항상 그 두사람의 거리 만큼이나
서로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