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년 전부터 약속해 왔던 결혼 20주년 기념 해외여행을 드디어 가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막내 딸은 첫 해외 여행.
가족들은 기대 만빵 설레임 모드로 진입,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갈 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내는 배낭여행을 자주 갔던 대학동창을 몇 번 만나고 왔고, 큰 딸은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 서 웹 서핑을 했다.
주변에서는 첫 가족여행이라 편안한 패키지여행을 추천했으나 우리들은 자유 여행으로 결정했다.
방콕에서 앙코르와트로 넘어 갔다가 다시 태국 파타야로 돌아오는 10박 11일의 여정을 잡았다.
지도 하나 들고 우리 힘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이라 다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걸 즐기기로 했다.
내가 여행 전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오는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아내와 큰 딸은 비행기 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내가 한 일은 그동안 논의 된 것을 바탕으로 체크리스트와 일일 계획표를 작성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수련회나 캠프 계획 짤 때 많이 해봐서 잘 한다^^*)
짐을 꾸리는데 역시 대학생 큰 딸 해랑이 옷이 제일 많았다. (신발만 3개나 더 챙겨갔다~)
자~ 이제 출발이닷!
< 첫 날 >
계획에 의하면 아침 7시 출발이다.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나는 새벽 3시에 잠을 깨어 뒤척였다.
전날 짐을 다 챙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아침이 되면 챙겨야 할 짐이 또 생기나 보다.
결국 7시 20분 출발, 아파트 앞에 의당 대기하고 있어야 택시가 없다.
한 정거장을 무거운 가방을 들고 캐리어를 끌면서 달려가서야 겨우 택시 탑승.
상암에서 공항 철도를 타는데 지하에서 한 참을 걸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GO GO !
가장 저렴한 베트남 항공기를 타기 위해 수속 절차를 밟으러 간 곳은 어이없게도 수하물 처리 사무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베트남 항공기 아이 콘만 보고 찾아갔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어쩐지 사람들도 한 적했고 도무지 시설 자체가... 모양이 그게 아니었는데도 왜 거기로 향했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불안이 살짝 스쳐 왔지만 씩씩하게 우리 가족은 베트남 항공사를 다시 찾아갔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난 후 BOARD TIME 까지는 아슬아슬.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큰 딸은 쇼핑 샵으로 들어가서 향수를 사는데 어쩜 그리 여유가 있는지
–우리 큰 딸은 천성적으로 시간에 대하여 만만디다- 나는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보딩 타임 직전에 커피까지 사는 데 그만 딸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해랑아, 고르지 말고 대충 그냥 사!”
드디어 이륙이다.
다들 고소 공포증이 있었지만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레임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앗, 막내 딸은 압력차이로 인한 귀의 통증 때문에 끝내 눈물이 글썽해진다.
막내 딸 예랑이는 천성적으로 운동에 대하여 만만디다.
이건 평소 운동 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타박했다간 분위기 싸해 질까봐 계속 위로해 준다.
베트남 항공사의 점심 식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점심을 느긋하게 즐기고 영화 한편 감상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니깐 어느 새 하노이 공항.
여기서 우리는 3시간 경유한다.
문제는 경유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로 나가 어디서 머물다 또 어디로 나가는 걸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우리는 줄을 잘 못 서고 말았다.
출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내 미니깐 직원이 베트남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손짓을 보니 저기로 가라는 것 같다.
아~ 그 때의 쪽 팔림...그 때서야 ‘TRANSIT’ 란 영어 단어가 들어온다.
결국 맨 마지막에 경유 절차를 마치고 올라섰는데, 어디서 환승하는지 출구 번호도 없고...
라운지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 한국 남자 대학생 2명이 방콕행은 어디로 나가는 것이라고 물어 오는데, 나도 모르면서 그 질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눈치 껏 출구 번호를 확인하고 그 대학생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해랑이는 경유 시간을 이용해 엄마와 같이 쇼핑중이다.
환승한 비행기는 더욱 작았지만 그게 우리들의 행복 모드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방콕 도착.
책을 통해 미리 예습을 잘 해둔 덕에 우리는 자신 있게 입국 심사대를 향해 갔다.
( 사실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쪽으로 우리 가족도 안심하며 묻어 갔다 )
TAXI STATION을 발견하고는 씨익 미소를 짓고 그리로 향했다.
예습한대로, 상상한대로 일이 착착 진행된다.
문제는 택시 기사와의 가격 협상이다.
책에는 350B 이면 된다고 써 있길래 마지노선으로 400B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택시 기사는 교통 체증 때문에 하이웨이를 달려야 한다면서 500B를 요구한다.
결국 450B에 협상이 되었는데, 경제관념이 투철한 큰 딸에게 협상을 잘 못했다고 혼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기사가 우리를 엉뚱한 곳에 내려준 것에 있었다.
지도를 보여 주면서 카오산 거리 근처 쌈센 거리라고 했는데 카오산만 알아 듣고 거기로 내려 준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카오산 거리와 쌈센 거리는 걸어서 15분 정도였다.
우리는 카오산 로드를 쌈센 로드로 착각한 채 우리 숙소를 열심히 찾았지만 당근 나타날리 없었다.
카오산 거리는 세계 각국 인종이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섞여 있는 채로 거대한 물결처럼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거리의 왁자한 소음들과 펍 레스토랑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체취와 섞여 케이오스한 질서를 만들어 내는 듯 했다.
카오산의 카오가 내게는 케이오스의 이미지로 다가선다.
100B를 더 주고 다시 택시를 타서 쌈센 거리 숙소 근처에 내렸지만 ‘알로아 게스트 하우스’라는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를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여고생들이었다.
그 여학생들은 지도를 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더니 숙소를 발견하곤 우리에게 안내해 준다.
내가 여고에서 평소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푼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알로아 하우스 주인은 무척 친절하고 예랑이를 귀여해 주셨다.
우리는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가 방황했던 카오산 로드를 걸어서 갔다.
카오산 까지 가는 거리는 어둡고 칙칙했으며 날씨는 습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그것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래서 약간의 흥분감까지 들었다.
무질서 해 보였던 카오산 거리를 다시 걸어 보니 이국적인 문화가 서서히 느껴지면서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거리 음식을 이것 저것 사 먹으면서 재미있어 했다.
아가씨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술집과 패션 잡화를 파는 가계들이 즐비해 있고, 거리 가운데에 자판 음식대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마샤지 삽들이 술집만큼이나 많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줄곧 아이 쇼핑을 하다가 챙이 넓은 밀집 모자를 3개와 해랑이 수영복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발 마사지.
발 마사지를 받으면서 아내는 지긋이 눈을 감았고, 예랑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재잘 거린다.
우리 가족에게 발 마사지는 유쾌한 체험 학습의 장이자 피로 회복제였다.
숙소로 돌아 오는 길이 이제는 더 이상 음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