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year ago>
직장생활 20년...업무상 외국어가 필요 없으니
영어에 대한 아쉬움과 불편한 점 없이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런데
1년 전인가 한남동에 사는 싱가폴 여자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친구 부부와 간 적이 있었다.
난생 처음 먹어 보는 요리와 와인에 분위기 거의 환상이었는데 나는 아주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문제는 영어였던 것이었다.
나는 그까이꺼 대충 더듬더듬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친구가 영어를 잘해 싱가폴 사람이
대화 수준을 높이는 바람에 나는 그것을 알아들으려고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미각과 청각이 따로 놀았던 것이었다...싱가폴의 발전 배경, 정치 상황 등등..
알아는 듣겠는데 도저히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어줍잖게 할 바야 입 닫고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안한거지 못한게 아니라는 정말 자존심 상한 처세를 한 것이다.
“젠장, 괜히 왔네”
그러나 후회 해봐야 꼬인 혓바닥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그날 포도주는 내가 제일 많이 먹었으리라.....
분위기 봐가며 상대편 따라서 웃고, 행동하는 내 자신이 그날따라 무척 싫었다.
<10 months ago>
잠원동 동사무소 2층 책방에서 “마시멜로”(譯:달콤한 과자) 책을 빌렸다.
그해 베스트셀러 1위여서 항상 궁금했는데 분량이 작은 책이라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과연 나의 마시멜로는 무엇인가?
또 다른 알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삶을 즐기려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마시멜로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Y*()_
“그래, 중국어를 한번 배워보자!!!!!!!!!!!”
그런데 1년 전 한남동 사건이 앙금처럼 떠오르면서 중국어가 문제가 아니라 영어부터
정상화 시켜놓아야 할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영어회화를 다시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이야기 하기도
조금 쪽 팔리는 일이다.
동네 꼬마들도 영어 실력이 장난이 아닌데.....
그런데 다시 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쪽 팔린다는 생각에 저질러 버렸다.
<7 month ago>
작년 7월, 마음 변하기 전에 집에서 가까운 신사동 사거리 미인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화, 목, 오후 7시, 2시간(아주 좋은 타임 스케줄이었다)
더욱 더 좋은 것은 수강생 4~5명이 모두 20대 초반 젊은 여자들이었다.
(대학생, 유학 준비생, 스튜어디스 지망생.....등등...특히 신사동은 스튜어디스
양성 학원이 많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너무 좋다......물이 좋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다.
수업 분위기가 정말 뽀송뽀송했다.
다만 “오빠”라 안 부르고 “아저씨”라 불러서 속은 좀 상했지만.....ㅋㅋㅋ
결과야 어떻든 배운다는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미인촌만 다니던 놈이 40대 중반에 미인회화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혓바닥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풀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신사동 사거리에서 굴다리를 거쳐 집 앞으로 걸어오는 길이
예전의 술 한 잔 걸치고 헤롱헤롱 걸어오는 그런 기분과는 비교가 안되게 좋다.
<marathon>
1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처음으로 5시간 20분
완주를 하였고 이번 3/18일 동아 마라톤은 5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달리기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달리면서 영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사이는 영어듣기가 편리한게 MP3 2기가 정도면 5시간 동안 영어를
버턴 한번 안 누르고 들을 수 있다. 소리바다에서 일부 무료로 다운 받는
방법이 있는데 계속 내용을 바꿀 수 있다.
달리기 연습할 때도 항상 들을 수 있다.
<now>
올해 초 학원을 신사동에서 강남역에 있는 민병철 학원으로 옮겼다.
성인영어학원은 강남역에 집중되어 있고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 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리 하였는데 퇴근 시간에 맞추다 보니 수준이 높은 반 밖에 없었다.
여기도 40대는 나밖에 없다.
대부분 외국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 모두들 유창하다.
어떨 때는 선생과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는 말이 뭔 말인지 모를 때도 있다.
1년 동안 주식시장 상황도 안좋아서 스트레스 팍팍 쌓이는데
퇴근 후 내 돈 내고 스트레스 팍팍 받으니 정말 왕짜증 난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시험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력 향상 속도는 스스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two weeks ago>
두 아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반포 센트럴 씨티 극장에서 “록키 발보아” 영화를
보았다. 실베스타 스탈론이 나이가 들어 챔피언과 다시 자선게임을 하는
그런 이야긴데 도입부가 재미 없어 편안한 자세로 잠시 눈을 붙였다.
신기하다...........
눈을 감고 귀만 열어 두었는데 잉글리쉬가 들리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
로키가 마치 나에게 이야기 하는 듯 하다.
계속 눈을 감고 들었다.
"감사합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잉글리쉬가 들리게 되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7개월 동안 간절히 원했던 것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그리고 내 스스로 나의 마시멜로 하나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