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신금석
작성일 : 2001/03/14 12:26
어제 반대표모임에서 우리 홈페이지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들어와 보는 놈들은 많은데 글 남기는 놈들은 별로 없다길래,
그럼 반대표들이 솔선수범하야 글이 되던 안되던 무조건 올리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까지 아무도 실천을 안하고 있다.
해서 7반 반대표 자격으로 내가 일단 포문을 열겠다. 그리고 두고보겠다.
기왕 어제 보충한 알콜기도 아직 남아있고 하니, 술얘기나 한번 할까 한다.
내가 처음 필름이 끊긴 건 80년 12월 31일이었다.
재수생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만큼 진짜 亡年(忘年이 아님)을 하자고 의기투합, 세놈이서 광화문 '태양의 집'(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다니!)에서 만났더랬다.
그당시 한창 유행하던 싸구려 양주 '캡틴큐' 작은 놈 하나 시켜서,
콜라로 칵테일 만들어 홀짝 홀짝 마시다 보니 금방 바닥이 나버리고 말았다.
더 마시고는 싶은데 주머니들 사정이 안좋다보니 더 시킬수는 없고해서,
몰래 슈퍼에 나가 큰놈으로 하나 사가지고 와설랑 커텐 떡하니 치고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제나 저제나 추가주문 기다리던
웨이터한테 그만 들켜버리고 말았다. 당장 나가라고 호통치는데 어떡하냐.
할 수 없이 먹던 콜라잔 가득 캡틴큐로만 채워설랑 '자, 가자~'
근사하게 건배하고 완샷을 했더란다. 내 기억은 거기까진데...
한참 뒤 잠시 정신이 들어 '야, 내 발이 왜 이렇게 시린거냐' 했다가
영문도 모르고 놈들한테 질펀하게 맞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레스토랑을 나와 처음에는 멀쩡하게 걷던 놈이 점점 갈짓자가 되더니만
급기야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연신 태클을 하더란다.
해서 부축한답시고 양옆에 팔짱을 끼고 광화문 지하도로 내려섰는데,
지놈들도 취했으니 그만 날 놓쳐버린거야. 그대로 135도 앞으로 꼬꾸라져서
안경은 박살, 안면은 그야말로 피범벅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빨은 무사했다)
그런데 이 잔인무도한 놈들이 날 병원으로 안데려가고 술깰 때까지 기다린다고
청와대옆 삼청공원으로 끌고 가서는 벤치위에 눕혀 놓았더란다.
글쎄, 제야의 종소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어야 했댄다.
어쨌든 같은 이유에서 겨우 동사를 면하고 다시 종로로 끌려나왔는데,
그 인파속을 피범벅에 의식없는 놈 하나와 없는거와 마찬가지인 놈 둘이서
헤매며 다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정말 가관이었을게다.
그 와중에 구두가 다 벗겨져 양말만 신은 채로 영하 10도의 눈길을
걸어다녔으니, 어찌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겠냐?
그런데도 지 놈들은 나 땜에 고생했다고 두들겨 패댄거야.
헌데 정말 불가사의한 건, 그렇게 의식없이 끌려다니면서도 노래만 하면
꼭 듀엣으로 화음을 넣더란다. 그야말로 천부적인 음악성 아니냐?
하옇든 그 날 이후로 꼬박 1주일동안 누워서 죽만 먹고 살아야 했다.
그 놈들 지금도 만나면 왕왕 그 얘기한다.
지네들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두고 두고 은혜 갚으라고...
쓰느라 힘은 들었는데 재미있어들 할랑가 모르겄네. 그냥 들어갈란다. 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