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대전에 다녀왔다.
지난주 수요일
집 근처에서 친구와 술 한잔하고 있는데
예전 대전에 있을 때 같이 근무하던 후배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쪽도 몇몇이 모여 한잔하는데
우연히 내 얘기가 나와 내친 김에 안부인사 겸 전화했단다.
이미 상당히 취했던지라
그런 저런 안부교환으로 끝맺음했다는 기억 밖에는 없었는데
금요일 저녁 그 후배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내일 몇시에 내려 오느냐고...
아마도 오랜만에 옛얼굴들 다 보고 싶으니 주말에 다 집합시키라고
술김에 호기를 부렸나 보다.
당분간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어 지난번 청주번개도 피했었는데
사안이 진행된 과정을 보니
불가피하게 차비 들여 대전에 내려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열차표 예약하여
토요일 12시경 수원을 출발하니 한시간만에 대전이다.
그날 약속시간은 5시인데,
대전역 광장에 내려선게 1시니 4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그 사이라도 잠시 예전 대전에서의 기억을 더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도 점심 무렵이라
선화동 대전천 변의 김치칼국수집을 찾아 헤맸는데
내 기억이 희미한지, 대전이 많이 변해 버린건지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던 때 멀리서 이채로운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전사의 집 식당'
전사라...순간 머릿속엔 수도이전 위헌 판결이 떠오르며
대전, 충청권의 봉기로 이어졌다.
이 정도인가...
전사들과 어울려 밥 먹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 그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작 가까이 가보니
간판 첫글자 '운'이 옆집 간판에 가려진 것이었다.
전사가 아니라 운전사였지.
빙신...하여간 그렇게 전사 아닌 운전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
여유롭지만 한편 따분했던 대전생활을 추억하며 은행동거리를 거니는데
후배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벌써 대전이라고 하니 다짜고짜 바람이나 쐬러 가잔다.
그래서 간 곳이 계룡산의 신원사다.
사실 대전에 살 때도
동학사, 갑사 일원만 맴돌았을뿐 신원사엔 간 적이 없다.
그리고 신령스런 산으로서의 계룡산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흔한 굿당 하나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궁금함을 느즈막하게나마 신원사에서 풀 수 있었다.
신원사 가는 길에, 정확히 이야기하여 서남방향에서 바라본 계룡산은
靈山으로서의 자태를 정확하고도 무겁게 말해 주고 있었다.
계룡대에서 새벽골프 치다 바라보며 감탄한 계룡산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이었다.
역시 신원사 주변은 굿당과 기도터로 즐비했고...
신원사에 막 들어가는데 수철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구에 문상 갔다가 올라가는 길에 대전 국립묘지에 아버님 뵈러 왔단다.
같은 시각 친구넘을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다.
각자 사정으로 조우하진 못했지만...
3,000원 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도 약속시간에 쫓겨
잘 가꿔진 정원같은 신원사 경내만 돌아 보곤 서둘러 대전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지만
막상 술 한잔 돌아가니 익숙했던 옛모습 그대로다.
마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처럼 이 차장님을 좋아했고,
내가 서울로 발령받아 올라갈 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막내 여직원은
내 머리가 너무 많이 벗겨졌다며 내내 한숨이다.
그때 여직원들은 나보고 여학교 국어선생님이 어울린다고 하곤 했다.
정회준이라...
싱싱한 광어 우럭 안주로 쏘주 한잔하고
유성의 주점에서 맥주 한잔 더 하며 '대전부루스' 한 곡조 불러제끼니
이제는 정말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올라간다고 하니 만류가 보통이 아니다.
내일 계룡산 등산이나 같이 하자며...
등산? 그거야 마다할 수 없어 자의반 타의반 유성의 한 모텔에 묵었다.
그날밤 술에 취해 대전이 고향이라는 박인호에게 전화를 하긴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대전 이야긴지, 노무현 이야긴지...
어제 마신 양주가 가짠지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바이트가 나오려고 한다.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만일, 변기에 앉아 있을 때 오바이트가 나오면 어찌해야 하나...
뒤집어지는 속을 간신히 달래가며
뜨거운 온천수로 샤워한 후 유성곰탕으로 속을 채우니
한결 나아지는 것 같다.
아침 9시경 어제의 멤버들 그대로 다시 만나 신원사로 향했다.
신원사 경내에는 중악단이라는 곳이 있다.
예로부터 영험스런 산을 골라
국가적으로 그 산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런 곳이 지리산의 상악단, 계룡산의 중악단, 묘향산의 하악단이란다.
계룡산의 위치와 의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
별 준비도 없이 나선터라
신원사에서 가장 가까운 안부까지만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보니 계곡 곳곳이 모두 신령스런 기도터다.
깔딱고개 지나 능선에서 보니 저 밑에 갑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봄엔 마곡사요, 가을엔 갑사라는데...
그렇게 간단한 산행을 마친 후
신원사 입구 시원한 등나무 그늘 아래서 동동주 한잔하는데
김원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11월 정기 산행 사전답사차 북한산에 왔단다.
지금 계룡산이라고 하니
자기는 등산의 의미로는 계룡산을 산으로 보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무식한 넘...
현지 민심도 알아 볼 겸
안주거리 삼아 수도이전 등 정치관련 화제를 꺼내려 했으나
반응이 그냥 허허스러워 진도 나가기가 어렵다.
또 핫바지되었다는 둥, JP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둥...
동동주에 알딸딸 취해 계룡산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대전에 돌아와선
담배 한대 필 여유도 없이 바로 수원행 버스에 올랐다.
안가본 사람들은 한번 가 보시게.
계룡산 신원사...다음 주말(이번 주말 말고)이면 단풍이 절정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