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와이프랑 호젓하게 태안 반도 꽃지 해수욕장을 다녀왔어.
결혼 기념일 특별 이벤트로 아이들은 장모님에게 맡겨 두고 우리 둘만 떠난
거야.
1박 2일로 우리 부부만 여행을 간건 처음인 것 같아.
맨날 보는 아내인데도 둘만 떠난 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달뜨기도 하더라고...
때 마침 전날 내린 비로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쾌청했었던 주말이었어.
파란 잉크같은 하늘을 바라보니 우리 마음은 흰 도화지 처럼 푸르게 물들어
가더라구...
누군가 안면도 초입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섬 나문재가 예쁘다고 하길래
우린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 간거야.
나문재로 들어가는 길목의 11월 초순의 오후 다섯시는 그야말로 예술이었어.
갈색으로 물든 굴참 나무와 자줏빛으로 물든 단풍잎은 숲속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자신을 나부끼며 파스텔 빛 사랑의 아우라를 펼쳐주더라구.
야트막한 산자락 끝에 군락으로 펼쳐진 억새풀들은 가을 석양에 그리움으로
빠알갛게 출렁이고 있더군.
게다가 저녁 노을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호수를 지척에 두고
드라이브를 할 때는 수상스키를 타고 바다위를 가르며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어.
아, 와이프의 손을 한번 잡아 볼까 하는 생각도 안든 건 아니지만 그 보담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더욱 애틋해서 우린 탄성만 질러대며
나문재로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아주 자그마한 섬 하나가 온통 펜션으로 꾸며져 있어 나문재는 유치원에서
꾸며 놓은 성 같았어.
하루 숙박비가 주말 15만원이어서 우린 나중에 가족 여행으로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꽃 박람회로 유명해진 꽃지 해수욕장으로 향했어.
안면도 해안선 도로는 77번 국도인데 동해안 7번 국도랑 비교해 보면
스케일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단풍 든 숲과 예쁜 집들이 함께 어울어지는
아기자기한 정경은 훨씬 정감이 가더라구.
노오란 은행나무 잎들이 가지런히 떨어져 있는 한적한 도로는 세상을
어느 새 어린 왕자의 마을로 바꾸어 버렸지.
꽃지 바닷가는 마지막 남은 붉은 여명을 처연하게 드리운 채 사연 있는
사람들의 쓸쓸한 이야기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밀어를 들어주고 있더라구...
우린 우럭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병씩을 비우고 깔끔하게 캔맥주 두개를 사 가지고 숙소에 가서 마셨어.
tv를 무심히 켜 놓고 간간이 마시는 캔맥주도 색 다르더군.
러브 체어가 없어 아쉬웠지만 정얼진 아늑한 밤이었어....
둘만 떠나는 호젓한 여행은 참 좋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