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하고 계속 가족과는 겉도는 일의 연속이었다. 지리산 종주, 4 박 5 일의 몽골여행 -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정말 우연히 박인호와 같은 비행기로 몽골에 다녀왔다. 여행기
간이 같으니, 올 때도 같은 비행기로 오고. - 이어지는 5 일 동안의 ‘논술’ 에 관한 직무연
수, 아는 내용이었지만, 체계화된 지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 5 일을 연속 하루
50 분씩 6 시간 동안 계속 수업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경우, 확실히 수업을 듣기보다는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다.
방학 중에 가족과 제대로 된 피서 한 번 가지 못한 것이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궁여
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영화보기였다. 인터넷에서 한참 논쟁 중인 영화로 선택했다. 난 이런
류의 영화는 정말 질색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클래식’ 뭐, 이런 류가 내 취향이
다. 그러나 아이들을 생각해서 ‘D-war’ 를 선택했다.
전날에 컴퓨터로 예매를 한 다음, 집 근처의 키넥스 라는 영화관으로 갔다. 방학이라 그런
지 영화관은 사람들로 엄청 붐볐다. 옆의 상영관에서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상영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 영화가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밖
에.
평일인데도 가족 단위의 관객으로 객석은 꽉 차 있었다. 이 영화가 관객 동원에는 크게 성
공했음을 직감했다. 얼마 전에 제자가 주인공이었던 영화를 비록 조조할인이기는 했지만 우
리 가족끼리 보면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와 고생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였다.
뭐, D - war를 폄하할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원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고 내가
영화를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가 너무도 단순했다. 엄청
난 소음(음악, 음향)에 압도 되고,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 상영시간의 절반이상을 차지했으
니, 조용한 멜로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장이라도 휴게실에 나가서 팝콘에 음료수라도 먹
으며 가족을 기다리고 싶을 정도였다. 영화에 몰입할 수 없는 나로서는 겁나게 시끄러운 효
과음과 뻔한 줄거리가 거의 고문처럼 느껴졌으나, 두 아이와 아내의 얼굴을 보니, 이 영화
를 아주 진지하고 재밌게 보는 모습에, 나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찼다.
언제쯤 착한 이무기가 악한 이무기를 물리치고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어 승천하는가를 한참
기다린 끝에 당연한 결과를 안고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리던 아리랑(애국가로
잠시 착각) 정말 생뚱맞음의 극치였다.
영화관을 나오며 두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두 녀석은 이미 ‘트랜스포머’ 라는 CG(컴퓨터
그래픽)를 많이 사용한 미국 영화를 봤었다.
- 트랜스포머 하고 어느 게 더 재밌냐?
- 아빠, ‘디 - 워’ 가 훨씬 재밌어요.
- 그래? 난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던데?
- 아빠, 아리랑이 울릴 때,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어요. 미국에서도 대박 날 게 틀림이 없
어요. 주인공들도 미국사람들이잖아요.
중 1인 큰 녀석이 영화 평론가라도 되는 양 흥분해서 떠들었다.
- 한글이 엄마(아내)도 그렇게 생각해?
- 난, 최소한 재미는 있었어요.
- 그래? 다행이군.
구성(플롯 - PLOT)이란,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모든 극의 원칙으로 따질 때,
영화 ‘디 - 워’는 분명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왕이 죽고, 왕비도 죽었다."는 극
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왕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다가 왕비도 죽고 말았다." 가, 극의 기본
요소인 것이다. 장난감 같은 부적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하고, 하늘에서 착한 이무기가 뚝 떨
어지고...
나는 63 빌딩 극장에서 아이맥스 영화를 실감나게 본적이 있다. 내게 ‘디 - 워’는 아주 시끄러운
아이맥스 영화였다.
모든 영화는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에 따라 엄청나게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신기함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 내 자신이 차라
리 원망스러울 지경이라는 게 영화를 보고 난 솔직한 심정이다.
혹시 내가 고상한 체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족 하나, 난 김기덕의 영화도 끝
까지 보지 못 한다. -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 - 그러나 영화, 클래식(조인성, 조승우,
손예진)은 명절 때 tv에서 재방송 할 때마다 꼭 챙겨본다. 그리고 거의 끝장면, 조승우가
시력을 잃은 채, 아닌 것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대목에서는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2007.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