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년 전의 어느 여름날, 집에 혼자 있을 때였다. 모기가 앵하고 날아와 날 집적거렸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놈이 얼마동안 내 피를 빨 수 있을까? 그때 난 한가했으므로 내 오른손을 가만히 뻗어 내밀자 놈은 내 엄지손가락 둘째 마디 위에 앉았다. 놈은 그 탄력 있고 길쭉한 침으로 여기저기 탐지해보더니 이윽고 맘에 드는 곳을 찾았는지 쑤-욱 찔러왔다. 찌르는 순간 아픈 느낌은 없었다. 침은 꽤 깊이 들어갔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본격적으로 빨기 시작했다. 투명한 대롱으로 빨간 피가 차오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난 놈이 혹시라도 놀라서 도망갈까 봐 숨을 죽이고 미동도 하지않았다. 놈의 몸뚱어리는 석고처럼 굳어있었으나 내 살갗을 파고든 침으로 끊임없이 피가 올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배가 불러지고 벌게졌다. 제깟 놈이 빨아봐야 한 방울도 안될 거라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난 묘하게도 갈수록 초조해졌다. 1분, 2분, 3분 ----. 놈은 무려 10분만에야 대롱을 뽑고는 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놈의 날갯짓은 형편없이 무거웠다. 피가 잔뜩 든 배는 올챙이처럼 불룩해서 마치 굼벵이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난 잠시 황당해서 멀뚱히 쳐다보다가 놈을 죽이는 걸 깜빡 잊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의 적을 살려보냈다는 자책감에 얼른 일어났으나 그 느린 놈이 벌써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회사에서였다. 뜨거운 녹차를 타서 책상 위에 놓고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 창 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데 파리 두 마리가 수직의 창틀에 앉아서 일을 치르고있었다. 한 놈이 다른 놈 엉덩이께에 올라타서는 자신의 꽁지를 밑에 놈 꽁지에 찰싹 붙여놓고 있었다. 놈들은 석고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놈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놈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치를까? 난 내 일을 보면서 놈들의 일을 쭉 지켜보았다. 바지를 다 추스르고 났는데도 놈들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난 사람들이 들어올까 봐 바깥 구경을 하는 척 하면서 곁눈으로 놈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누가 날 찾을 것 같아서 사무실로 들어왔지만 놈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도 내 생각은 온통 놈들에게 쏠려있었다. 서늘하게 식은 녹차를 마저 마시고 화장실로 갔다. 놈들이 사라졌으면 어쩌나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품고. 그런데 아뿔싸, 놈들은 아직도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난 또 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드디어 2,3분 뒤에 떨어지더니 제 갈 길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화장실을 휘젓고 날았다. 화장실에 암내가 진동하는 듯했다.
며칠 전 휴일 오후, 혼자 뒷산에 올라갔을 때였다. 봄 꽃은 다 지고 복숭아 열매는 아기 주먹만하게 달려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데 고추 밭 가장자리에 콩 꽃이 발갛고 하얗게 피어있었다. 아직 덜 여문 콩깍지를 만지작거리며 가는데 콩 줄기 사이에서 손바닥만한 거미줄이 봄볕에 은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미줄 한가운데쯤에는 엄지손가락만한 검정거미가 한참 식사를 하고있었다. 벌이나 파리였을 놈의 식사는 누에고치처럼 실에 둘둘 말려있었고 거미는 발톱을 고치에 단단히 꽂고는 머리를 파묻은 채 열심히 체액을 빨고 있었다. 난 장난기가 슬쩍 발동해서 콩 잎을 따 고치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거미는 화들짝 놀란 듯 번개처럼 줄행랑을 치더니 거미줄 가장자리에 가서는 죽어라고 거미줄을 흔들었다. 난 놈이 인간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라 어디 안 보이는 데로 도망가 숨을 거라는 기대를 은근히 하고있었다. 그런데 놈은 전혀 두려운 표정이 아니었고 화가 단단히 나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나쁜 놈아,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린단다 라고 소리치는 것이 분명했다. 놈은 여덟 개의 발로 거미줄을 흔드는데 보통 세게 흔드는 게 아니라 마치 먹이를 뺏긴 성마른 원숭이가 제 성질을 못 이겨 나뭇가지를 잡고 짓 까부는 것처럼 흔들었다. 불쌍한 고치도 덩달아 춤추듯 흔들렸다. 금방 흔들다 말겠지 했으나 멈추지않고, 만주 어디서 일본군에 포위된 독립군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저항하듯 줄기차게 흔들어댔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놈은 얼마나 오래 흔들 수 있을까?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거미줄 옆에 바짝 붙어서 노려보았다. 물론 손끝 하나 거미줄에 대지 않았다. 내 눈에서 나오는 氣로 놈을 기죽게 할 수 없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않았다. 그러나 놈은 나의 안광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처음과 똑같이 흔들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다고 느껴질 때쯤, 비쩍 마른 할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밭에서 나가라고 했다. 난 거미를 보고 있노라고 말하려다 객쩍은 것 같아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거미줄은 줄기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산 밑에 내려올 때까지도 하늘이 흔들흔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