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저가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 때 그의 가슴속에는 성공에 대한 몇 퍼센트의 기대치가 있었던 것일까?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성으로 진격했던 이성계의 성공에 대한 기대치는 또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 먼 과거로 갈 것도 없이 반세기 전에 한강을 건넜던 박정희나 그로부터 20년 후의 전모씨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걸고 반역을 단행한 간 큰 사람들의 가슴속이 문득 궁금해 진다.
생각해 볼 때 고대의 중국에서 폭군을 몰아내기 위해 뭉쳤던 제후 연합군이 불과 10% 정도의 불확실성 때문에 혁명을 포기했다는 기록이나, 백제의 계백장군이 충성심 때문이라고는 하나 생존확률 0%의 황산벌 싸움에 가족들을 먼저 베고 출전한 것들은 위에서 나열한 내용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것들이다.
오랜만에 선택의 기로에 선 것 같다. 이제 40대의 중반, 앞으로 20여 년을 더 일한다고 가정하고 나는 내 인생의 중앙에서 주사위를 던지려 하고 있다. 조금 편해 보이는 길은 길게 볼 때 답답하고, 보다 어려워 보이는 길은 미래가 좀 나아 보인다. 과연 어느 길이 맞는 길인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권유하는 길은 어쩌면 당연히, 첫 번째 길이다. 이유는 가족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너무 많은 위험에 노출되면 안 되기에 가장으로써 책임감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래가 구분되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일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조금이라도 편한 길에서 보면 또 새로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소수의 나이 드신 분들은 한살이라도 젊을 때 승부를 걸어 보라고 하신다. 당신이 내 나이 때, 혹은 당신이 내 나이라면,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세대차이라면 뭔가 거꾸로 된 듯한 느낌이다. 어찌된 것이 젊다는 사람들이 더 보수적인가!
무조건 나의 결정이 맞는다는 모호한 대답도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하는 것이지 선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선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는 한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CEO가 전 직원들에게 자신의 인생 설계를 문서화할 것을 지시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전 직원들과 면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작성한 사람들은 꾸지람과 함께 가차없이 새로 작성할 것을 지시한다고 한다. 이 물렁물렁한 시대에 어찌 보면 획기적이고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통계적으로 자신의 꿈을 문서화 시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성공여부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아마도 CEO는 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직원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리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금전적인 성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선택의 기로에서 금전적인 성공은 어쩌면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가족들 배고프게 만들면서 딴 일하는 것은 통념적으로 용서되지 않는다. 성공이란 단어가 이미 금전적인 부와 뗄래야 뗄 수 없게 밀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단지 그것이 성공이라면 그것은 가시고기나 거미, 또 무슨 펭귄들의 숭고한 부성애에도 비교조차 안 되는 것이다.
직업상 큰 돈을 가진 부자들을 적잖이 본다. 하지만 그들 중 성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이는 내가 무슨 숭고한 이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부를 축적한 과정, 아니 설령 벼락 부자 일지라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분명 대를 이어 풍족할 만한 충분한 부를 갖고 있음에도 한 푼을 더 버는 것에만 처절하다. 여유가 없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정적으로도 행복하지 못하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일 수가 없잖은가!
가장이기에 가장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의 부분적인 역할만을 중시한 나머지 더 중요한 무엇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나는 주사위를 들고 망설이고 있다. 인생이 OX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서 나는 확신에 찬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당분간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 같다. 그것은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인생 공부가 부족한 나의 아둔한 머리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그 그림자를 지워 버리기 위해 노력할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만큼은 정확한 답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이저나 이성계와 같이 획기적인 답을 구하진 못하더라도, 인생의 중앙에 서서 스스로에게 주사위를 던질 것이고 주사위가 던져진 이후에는 과감히 루비콘 강을 건너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