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밤 이곳에 들러 그대들의 정담에 내 마음은 늘 18세로 돌아가곤 했지. 어느날인가부터 우리 여사님도 자기네 고교홈피를 들락대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올려대더군.
여자들의 수다한 홈피가 작은 아이 한솔이의 아픔을 통해 우리 가족이 겪은 은혜의 강을 날마다 이야기하느라 요즘 갑자기 경건한 홈피가 되었다고 좋아 하더군.
이래저래 감사하던 차에 그동안 이모양 저모양으로 걱정해 준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늦게나마 전하고 싶다
작은놈과 우리 여사님이 한국에서 10개월을 체류하고 이곳으로 돌아온 지 두달이 넘어간다.
백혈병.... 영화속에서나, 아니 한집 건너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너무나 두렵고 생소한 병을 우리 작은 꼬마 한솔이가 앓기 시작한 것은 만 3살 반 때인 2000년 2월 ,묘하게도 백혈병 선고를 받은 날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였으니, 우리 여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았다고 늘 고백한다-- 은혜와 감사라는 다이아몬드를...
90%의 항암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초기증세, 2년 2개월의 항암치료를 끝내는 동안 10번의 입원과 퇴원, 두번의 머리탈모현상,그래도 감사하게 잘 마치고 작은 놈은 유치원에 복학하였지.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은 재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절망속에서 다시 시작된 항암제..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날 병원에 다시 입학하고 다시는 빠지지 않는다고 약속한 머리카락은 또 다시 대머리가 되고.
두번째는 항암제로는 큰 치유율을 기대하기 힘들어 방향을 영구적인 골수이식으로 정하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가장 좋은 회복을 주는 형제간의 골수도 우리 큰놈하고는 맞지 않았다 웬만한 의학 상식과 의학적인 영어는 이리저리 박사가 된우리 여사님은 매일 인터넷을 뒤지고 한국 병원을 뒤지고 골수은행을 뒤지며 밤마다 두세시간씩 눈물로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가족 모두 낙천적인 성격이라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우린 매일 낄낄대고 웃으며 살았음 또한 감사하다
그러다가 한국 골수은행에서도 골수 공여자가 맞지 않아 요즘 많이 시행하고 있는 제대혈이식을 여의도 성모 병원에서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취과의로 있는 4회 최진환으로부터 정낙균 박사를 소개받아
여러면에서 이식하기에 힘든 조건을 가지고 서울로 떠났다
재발이니 항암제는 남보다 두배로 들어가고, 간수치도 높았고, 또 회복이 가장 느린 제대혈 이식이니 의사로서는 무척 어려운 환자임에 틀림없었다
9월15일...
6번의 방사선 치료와 5일 동안의 강한 항암제 투여 후 이식을 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회복기까지는 100여일 후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10월 17일, 병원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그렇게 퇴원했다
그동안 골수이식방에서 성경보고 찬양하고 아들 1학년 문제지와 받아쓰기 일기등을 쓴 것을 보니 우리 여사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모든 형액 수치가 너무 회복이 빨라 의사로서도 정답이 없다고 내린 우리 미라클 보이 한솔이, 우리 여사는 100명 달리기에서 90명 뽑는데는 잘렸지만 100명 달려 한명 뽑는데는 꼭 뽑혀야한다며 하나님 방법은 확률게임이 아님을 절감했다고 하고.
이제 그런 아들이 돌아와 학교에 다니며 축구도 하고 영어니,중국어니 살라살라해대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일들이 꿈처럼 지나간다
행복......
하루에도 감사하다는 말이 수십번은 고백되는 두 아들놈으로 인해 이렇듯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머리 다빠진 대머리 아들놈 사진을 내 지갑에 늘 지니고 다닌다
행복과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