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폭우 속에 맞이한 금년 천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호우주의보라는 암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천렵에 참가함으로써
행사의 명맥을 잇게 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박인호, 신수철, 유태형, 최영규, 최재식...
특히...최영규, 최재식군은 공사다망한 가운데
토요일 저녁 도착, 이튿날 새벽 출발이라는 무리한 일정까지 감수하여 주셨습니다.
토요일 점심 무렵 현지에 도착, 방바닥 따스한 민박집에서 삼겹살에 쏘주 한잔 하며
장대비 긏기를 기다리는데 난데 없이 싸이렌소리가 요란하더군요.
쌍용계곡 전역에 긴급대피령이 내린겁니다.
창 밖으로 계곡의 모습을 바라보니
계곡수위는 급격히 올라가고 세찬 물살은 말 그대로 노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고기 잡겠다고 나섰다간 천렵은 커녕, 물고기밥 되기 안성맞춤이라
물고기 아닌 육고기를 안주로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고
저녁 늦게 오후 출발팀을 맞아 천렵 와서 매운탕은 먹어야 된다는 의기투합으로
민박집 옆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꺽지가 푸짐하게 들어간 매운탕이
쌍용계곡의 청정함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 들며 기억력이 감퇴해선지 그 다음은 별로 기억나는게 없고
아침에 깨어보니 재식군과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더군요.
바쁜 일 때문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친구들을
모닝커피 한 잔으로 배웅한 후
늦으막히 라면으로 해장하니 그제야 장대비가 가랑비로 누그러지더군요.
주섬주섬 장비들고 물에 나가
유태형군이 낚시로 피라미 한 수, 제가 족대(그물)로 역시 피라미 한 수
그게 이번 천렵 조황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체면치레 후
희양산 덕배네를 향했습니다.
덕배네 도착하니 고추수확에 바쁜 중에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고 짧지만 깊은 정을 나누었습니다.
덕배씨 이야기가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농사꾼들의 시간감각이 다 망가졌답니다.
수십년의 노하우가 못쓰게 된 것이지요.
돌아오는 길 점심은 대가리가 어른 주먹만한 메기매운탕으로 했습니다.
씁쓰레 흙내 그윽한 매운탕맛이 그만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어느 천렵보다
물고기가 풍성했던 천렵이었습니다.
느릿느릿 괴산 거쳐 국도로 돌아오는 귀로는
속리산자락의 깊은 계곡미가 흠뻑 묻어나는 길이었고
그렇게 길고 무덥던 이 여름도 마무리되었답니다.
ps
사전통보는 물론 사후연락도 없는 무단잠적(불참)은
교통체증 불구하고 수고스럽게 약속장소에 나서준 사람이나 그런 상황을 전해 듣는 진행자
그 모든 사람을 정말 맥빠지게 하더군요.
그런 사람과는 앞으로 안놀겠습니다.
I'm ser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