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환타지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 환타지는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도 있겠지만 때론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기제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인류 문명의 발달이란 결국 환타지가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관한 환타지일 경우, 그 에너지는 폭발적이지요.
익명적 대상에 관한 휘발성 강한 불온한 욕망은 뿅 망치로 아무리 내리쳐도 두더쥐 처럼 튀어 오르기 일
쑤지요^^*
아, 지난 사랑에 대한 익모초처럼 쓰디 쓴 환타지도 갖고 있기도 하네요.
그럼, 당신의 현재 진행형의 환타지는 무엇인가요?
현재의 환타지는 현실과의 길항 작용 속에서 때로는 부분적인 쟁취를 거두기도 하지만 대개는 끊임없는
유보와 변주를 거듭하기도 하고 결국은 유리 조각 처럼 산산히 깨져 버리기도 하지요...
김형경이 ‘성에’라는 작품은 약혼녀가 있는 세중의 포르노 그라피적 환타지와 애인이 있는 연희의 로맨스
소설 같은 환타지가 어떻게 파멸로 이르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답니다.
- 그런데 성적 환타지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는 소설 ‘성에’처럼 전형화 시키는 것이 큰 무리가 없나요? -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에 빠진 둘은 밀월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폭설로 인해 강원도 어느 폐가에
묶게 된답니다.
그 곳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내의 3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들의 기이한 죽음을 앞에 두고
악몽같은 두려움 속에서 세중과 연희는 섹스에 탐닉하게 됩니다.
프로이드식으로 말하지면 생의 본능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 타나토스의 결합이지요.
액자소설 구조를 통하여 작가는 또 다른 층위의 환타지의 좌절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바로 3구의 시체
에 얽힌 미스테리를 통하여 밝혀집니다.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미스테리를 풀어 가는 방식이 남자의 일기를 통하여 전적으로 밝히는 것이 아니
라 청솔모와 박새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이 바라보는 시점을 통하여 풀어 내고 있다는 점이지요...
일부일처제를 부정하고 한 여자와 남자와 사내 셋이 아슬아슬하게 꾸려가는 공동체 - 그래요, 성(性)에
있어서도 그들은 유토피아적 원시 공동체를 사회를 이루고 있답니다 - 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고 또 그것
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고 마는지를 주인공의 독백이나 심리 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더 커다란 존재 자연
의 시각을 통하여 서술하고 있답니다..
파멸의 결정적 계기는 여자의 임신이었고 셋이 이루고 있는 존재의 양식 -함께 나눔-은 소유의 격정- 독
점욕구 -으로 치환되어 지면서 환타지는 전복되는 것이지요.
한편 연희는 폐가에서 일주일 동안 극단의 두려운 감정 속에서 치렀던 격정적 섹스와 세중에 대한 사랑
이 환상이었음을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가졌던 재회 속에서 아프게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아직도 꿈꾸는 혹은 예쁘게 그려가고 있는 환타지도 세월의 흐름속에서 퇴색되어 질까요? 혹은
영원히 추억의 앨범속에 곱게 간직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은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며 아주 훗날 까지 은밀한 환타지를 이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