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이에게 이불 한 장을 던져주고 자리에 누웠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또렷했다.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문틈으로 복도 불빛이 비춰 들었는데 복도의 형광등마저 꺼버리고 싶었다. 극도로 예민해져서 간간이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도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으나 수정이가 깰 것 같았다. 고즈넉한 정적 가운데 창 밖으로 멀리 자동차 바퀴의 체인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눈이 오는 가보다. 서울에는 아직 안 왔는데 전방은 벌써 눈이 오는구나. 살짝 일어나 창가로 가서 창 밖을 살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저 눈을 맞고 싶었다. 수정이가 아니라도 좋다. 누군가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 내리고 있는 저 눈만 함께 맞을 수 있다면.
“수정아, 눈 온다.”
“응? 그만 자자. 나 피곤해.”
“밖에 눈 온다니까? 벌써 많이 쌓였나 봐.”
“내일 보자.”
수정이는 나를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다. 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을 후회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에 괘종시계 치는 소리에 깨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개 같았다. 눈을 떠보니 어렴풋이 수정이가 보였다. 수정이는 벽에 기댄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얼굴을 모로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내 마음속 불꽃이 마구 요동해서 제어할 수가 없었다. 수정이의 몸을 만져보고 싶었다. 차가운 마음을 녹여줄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다. 두 손을 짚고 무릎 걸음으로 기어가자 수정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손을 들어 수정이의 어깨를 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손도 대기 전에 수정이가 얼굴을 번쩍 들었다. 어둠 속에서 수정이의 눈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서늘한 눈빛에 놀라서 난 멈칫했다.
“누가 먹는데? 줘도 안 먹어. 더러워서.”
“너, 정말 이럴래? 내가 나가서 잘까?”
“나가든지 말든지 ------. 여기까지 데려온 게 누군데 ------.”
“내가 여자친구 소개해준다고 했지 않았니.”
“누가 여자 소개해달라고 그랬어? 편하게 누워 자란 말이야. 안 건드릴 테니까.”
“가까이 오지 마, 그럼.”
그때 복도에서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옆방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낡은 여관이라 옆 방에서 신발 끄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드는 소리도 저 방에서 다 들릴 것이다. 야심한 시간에 여관방에서 티격태격 싸우는 것도 우스운 짓이었다. 수정이에게서 떨어져 자리에 도로 누웠다.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나더니 조금 뒤에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싸구려 라디오의 고주파처럼 집요하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수정이는 아까처럼 머리를 무릎에 파 묻었지만 저 소리를 다 듣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젊고 튼튼하고 힘이 좋은 것 같았다. 여자의 신음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남자의 무게에 눌려있을 여자를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가로막고 있는 벽의 액자 밑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벌떡 일어나 액자를 들춰보니 동전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액자를 떼어내고 구멍에 눈을 들이댔다. 동전만한 구멍이었지만 보이는 쪽은 주먹만 했다. 저쪽 방은 환했다.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침대 위의 두 사람이 보였다. 남자가 등을 깔고 누워 있었고 여자가 그 위에 올라타 있었다. 남자는 두 손으로 여자의 젖을 만지거나 커다란 엉덩이를 끌어안았다. 여자는 두 팔을 침대에 짚은 채 엉덩이를 사방으로 천천히 돌렸다. 여자가 지르는 교성에 남자가 흥분했고 나도 이미 커다랗게 흥분되어 있었다. 난 수정이가 보거나 말거나 혁대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구멍에 눈을 댄 채 그것을 잡고 흔들었다.
옆방 남자는 무릎을 꿇고 여자의 볼기짝을 손바닥으로 톡톡 때렸다. 여자는 맞을 때마다 짧은 신음을 뱉어냈다. 몇 번을 때리고 나서 남자가 여자를 돌려세우고 뒤에서 끌어안았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세운 채 두 팔로 여자의 가슴을 잡고 쓰다듬었다. 나는 가슴이 할딱거려 곧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남자가 그 자세에서 그것을 여자의 엉덩이 사이로 밀어넣었다. 포르노 잡지에서 저렇게 섹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남자는 그 자세에서 여자의 몸을 어루만지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여자도 쓰러졌고 쓰러진 채 남자는 여자 뒤에서 섹스를 했다.
구멍에 머리를 처박고 용두질을 했다. 지난날 수정이가 그리울 때마다 난 수음을 했었다. 수정이의 온 몸을 마음속으로 훑었고 수정이의 깊숙한 곳에 박힌 채 짜릿한 전율을 느꼈었다. 수정이는 나의 행위를 아는 지 모르는 지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참았던 욕구가 분출되고 나자 피곤이 엄습했고 곧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의 희끄무레한 빛이 창으로 흘러 들었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였다. 수정이는 누워서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수정이를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멀리 자동차 바퀴의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간밤의 일로 해서 수정이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다행히 수정이는 내가 수음한 것을 모르는 듯 기지개를 켜며 잘 잤냐고 물어왔다. 그녀는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노쇠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세수를 하면서 차가한 물이 얼굴에 닿자 얼굴에 남아있던 멍이 금세 다 빠지는 듯 개운했다. 거울을 보니 맑은 공기에 닿아서 그런지 얼굴이 감쪽같이 나아있었다. 눈가의 멍 자국만 손톱만큼 번져있었다. 여관을 나오니 눈은 멈췄지만 온 천지가 하얀 색이었다. 2차선 도로에도 눈이 한 뼘이나 쌓여서 차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멀리 강 건너 산도 어제의 푸른 빛은 손톱만큼도 없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아침 식사 대신 가게에 가서 호빵에다 따끈한 우유를 한 잔씩 마셨다. 주인에게 삼청교육대에 간다고 하자 진부령 넘어가는 버스를 타야 된다며 손가락으로 버스를 가리켰다.
“눈이 와서 진부령은 못 넘어가고 백담사 입구까지만 운행하니까 거기서 내리면 돼. 금방 가.”
터미널로 가서 진부령을 지나 고성까지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앞에서 두 번째 좌석에 앉자 중년의 운전수가 거울을 통해 수정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수정이는 그걸 모르는지 창 밖만 내다보았다. 반쯤 채워진 좌석에는 군인들과 민간인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무거운 체인 소리를 내면서 원통에서 설악산 방면으로 한 정류장쯤 지나자 두 갈래로 나눠지는 길목에 헌병 검문소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한계령이었다. 헌병의 날렵한 손짓과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버스는 왼쪽 언덕길로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파라솔 밑에서 헌병이 운전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눈 오는데 뭐 하러 차는 끄집고 나오요?”
“야, 임마! 놀면 누가 돈 갖다 주냐? 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잘 갔다 오슈.”
헌병이 경례를 붙이자 운전수는 손을 슬쩍 들었다 놓았다. 밑에서 봤을 때는 온통 험한 산으로만 보이더니 산기슭을 따라 넓은 곳이 나왔고 도로가 죽 이어졌다. 하얀 스키 복 차림에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하는 군인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이따금 트럭이나 짚차들이 마주 지나쳤다. 우리가 탄 버스는 기다시피 해서 20여분쯤 가자 가파른 고개 밑에 닿았다. 운전수가 말했다.
“더 못 올라가니까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세요. 타고 가고 싶으면 버스를 밀던지.”
승객들이 웃으면서 버스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올라탔다. 길바닥은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한기가 발로 올라왔다. 고개 길을 힘들게 20여분 올라가자 도로 오른편에 여관과 가게들이 밀집한 조그만 산동네가 나왔다.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인에게 삼청교육대를 물어보자 숲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군인들은 도로를 기준으로 오른편과 왼편으로 반반씩 나뉘어 사라졌다. 어떤 군인은 뒤돌아보며 수정이에게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고 조그맣게 말했다.
“씹할 놈 새끼가 염치도 없네. 개자슥. 마누라 궁둥이에 눌려서 압사나 해라!”
수정이가 내 말을 듣고는 오랜만에 웃었다. 상사를 따라 부대 앞으로 가자 싸리나무 담장 너머로 막사의 지붕들과 육중한 포신들이 보였다. 부대 저쪽에는 군인들이 식기를 옆구리에 끼고 열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상사가 부대 아래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자 숲 사이 언덕 아래로 연병장이 보였다. 후줄근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역시 식기를 옆구리에 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이 삼청교육대라고 했다. 수정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배가 아픈지 배를 손으로 끌어안고 앉았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초소가 있었고 철조망 너머로 커다란 연병장이 보였다. 어제 민통선이 있던 곳에서 보았던 삼청교육대보다 더 커 보였다. 거기도 천막으로 된 막사가 몇 동 서있을 뿐 아무런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정문 위병에게 피교육생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옆에 있는 초소로 가라고 했다. 초소 안에는 하사가 있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명종이를 면회하러 왔다고 했다.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종이는 내 고등학교 후배야. 그래서 내가 잘 봐 줄려고 했지만 그 놈이 장교에게 대들었어. 더는 그냥 둘 수가 없어서 그저께 보안대로 넘겼어.”
그 말에 수정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아, 명종이의 투쟁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명종이의 치열한 의식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그 놈은 왜 남들처럼 대충 살지 못할까? 내가 명종이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그 놈은 원래부터 문제아는 아닐까? 수정이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왜 대들었죠?
“장교가 비겁하게 죄없는 사람들을 때린다며 대들었어요. 피교육생 두 명이 탈출을 시도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나머지 피교육생들까지 모두 구타를 당했지요. 명종이도 맞았습니다. 맞다가 참지 못하고 대든거지요.”
수정이가 또 울었다. 난 수정이를 바라보면서 명종이가 맞아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안대는 겁나는 곳일 것이다. 사회로 치면 중앙정보부 정도 될 것이다.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몸이 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수정이를 물끄러미 내려보던 장교가 말했다.
“나도 그 놈을 돕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명종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지. 마치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어. 아마 여기 계속 있었으면 사병들한테 맞아죽었을 거다."
“그 장교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지금 없어. 공병대에서 차출되어 왔었는데 급하게 길 닦을 일이 있어서 부대로 복귀했어.”
“보안대는 어디죠?”
“원통에 있어. 거기도 면회가 쉽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