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 좀더 정확히 고교 등급제 혹은 평준화에 관한 이야기가 뜨겁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발전한다는 뜻일거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한가지 이데올로기만이 절대시 되었고 그에 반하는 논의는 캄캄한 지하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넘쳐나는 사회, 반대의 의견들이 너끈하게 수용될 수 있는 사회가 난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만의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휴, 저 꼴통!’이라고만 단정하지 말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원점에서부터 성찰해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소망해 본다.
하버마스가 그렇게 하면 역사는 발전한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련다.
굳이 내 이야기의 결론을 말하자면,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의 입장이냐 하는 당파성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형평성과 공정성, 균형성을 가져 보자는데 있다.
먼저 고등학교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냐 하는 입장의 차이가 있다.
한쪽은 수월성의 논리로 경쟁력 있는 재원을 키워 내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은 전인성의 논리로 고등학교 교육은 바람직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데 있고 그를 위해 고등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한 예비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둘은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다.
7차 교육 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형은 정보화 세계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구성주의 철학원리가 그 바탕을 깔고 있다.
이것은 교육에 있어서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실력 있는 산업 전사를 길러 내자는 것이다.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공동체적 민주 시민을 길러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은 구호일 뿐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청소년 시절 그들이 그 나이 때 온전히 누려야 할 정당한 정서적 체험과 꿈을 온통 20대 이후로 유폐시키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 추억과 꿈을 대중매체가 대신해 주고, 공부는 학원과 인터넷이 대신해 주면 공교육으로서의 학교 위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가 공적인 개념을 가지고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모습은 이 둘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보통 교육으로서 중 고등학교 교육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훈육시켜야 하며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습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또한 평등한 개체로서 함께 어울어지는 학교라는 울타리속에서 이루어지는 하위 문화는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순수한 추억을 쌓아나갔기 때문이다. 그 추억의 힘이 지금 우리가 만나 술잔을 부딪치게 하는 원동력이다.
강남 8학군의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었다는 고교등급제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당연한 현실이라는 이야기와 현대판 연좌제로 있을 수 없다 라는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과학고 1등하고 일반고 1등하고, 혹은 강남 1등하고 강북 1등하고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면서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 전자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분명한 실력차가 존재한다. 논의의 비교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비교하지 말아보자. 강북 3%와 강남18%는 어떤가? 누가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나?
자의적 판단이 배제된다면 실증적 비교는 모의고사 성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은 선배들의 성적을 가지고 간접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네 대학을 강북 3%는 못왔지만 강남 18%는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말에도 억측은 있다. 우리학교는 대체로 전국 평균과 비슷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즉 내신 5%이면 수능도 대충 5%쯤 된다) 정시에서는 그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런데 강북에 있는 우리학교는 수시에서 떨어진다.
결국 기여 입학이 금지되어 있는 현실에서 수시입학을 통하여 기여금을 낼 수 있는 강남 학생들을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게임의 룰의 공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학이 더 우수한 학생을 뽑고 싶은 거 인정한다. 그러나 우수성의 판정이 과연 공정했느냐 하는 것이다.
외대, 한대의 연구 보고에 의하면 내신 우수자로 입학한 학생이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강남 8학군 출신 학생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사실을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공부한 학생이 결국 대학 공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과외와 학원공부로 무장한 강남 출신들은 대학 가서 스스로 하는 공부에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 교육을 가르치는 대학으로서는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학은 그런 본질적인 부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교육을 장사로 여긴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시켜 주고 싶은데, 부는 물려 줄 수 있으나 지위와 권력은 안되니깐 학교 교육을 통하여 물려 줄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 교육은 기득권층의 부와 지위와 권력을 재생산시켜주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교육 사회학적 지표가 그걸 말해준다. 농촌 혹은 소도시 출신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율은 해를 거듭 할수록 떨어지고 대도시 출신의 입학율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하여 계층 이동(class mobility)이 원활한 개방사회(open society)는 결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고교 등급제는 계층이동을 구조적으로 저해하는 장치로 작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통합이 주요한 의제인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것은 뜨거운 감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중학교 교육 정상화와 입시 과열 예방이라는 취지 하에 실시되고 있는 평준화 정책은 그 실효를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학력 하향 평준화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정말 학력 하향 평준화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평준화 땜에 하향 평준화 된거라면 도데체 그 비교의 대상을 통시적으로 평준화 이전의 1975년 전 학생들이랑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님 공시적으로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을 뽑아 비교해야 하는 것일까....
통시적 비교는 많은 어려움과 기준의 적절성이 문제가 되기에 대개 공시적 연구를 많이 한다. 수많은 공시적 연구의 보고 사례의 결론은 평준화 때문에 학력 하향 평준화가 되었다고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 보면 영어도 꽤 잘하고 독서량도 많다.
다만 그 독서라는게 깊이가 없고 죄다 맞춤형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예전에 비하여 책을 읽는 편이다.
그리고 수능 스타일로 공부하다 보니 수학의 경우 정석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가면 많이 고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요즘 아이들이 학력고사 입시때 아이들보다 수학 못한다고 말 할 수 없다. 수능 스타일 수학 문제가 훨씬 어렵다. 믿기 어렵다면 최근 수능 문제 함 풀어 보시길....
우리 때는 일본 문제까지 봤다고 그럴는지 모른다. 맞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은 지금도 있다. 과학고와 일반고 전교 등수아이들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평준화 해제하면 아이들의 실력이 오르는 것일까?
평준화를 해제하든 안하든 할 놈들은 하는 거고 안하는 놈은 안하는 거다.
할 놈들이 평준화 땜에 안한다? 할 놈들끼리 붙여 놓고 경쟁시켜 놓으면 더 열심히 한다?
아니다. 대한민국은 사교육이 입시를 주무르고 있기에 학원에서 평준화 여부에 관계없이 능력별로 모아놓고 졸라 시킨다. 실제 강남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평준화의 진정한 의미를 공동체 정신에서 찾고 싶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한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다 다른 하나로서 친구처럼 지낸다는 거, 이거 무지하게 소중한 체험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때의 ‘잘’이라는 단어에 특별히 방점을 찍고 싶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천민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문학적 가치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학 공부가 출세지상주의에 저당잡힐 때 그것은 요원한 길이다.
대학의 이공계 우대 정책 뿐만 아니라 인문학부 우대 정책도 함께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취업이라고 하는 현실적 요인도 구조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연구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이공계로 가서 자신들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여 대한민국이 첨단산업에서 세계에서 우뚝 섰으면 좋겠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터부시되어 왔던 ‘그들만의 천국’을 ‘우리 모두의 천국’으로 바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