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휴양소와 가까운 금강원은 1층 건물로 기억되며 입구에 들어가자 넓은 카운터가 있고 양 옆으로 방이 여러 개 있었다. 우리 조는 제일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긴 난방시설도 없어서 좀 서늘했고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휘몰아 들어왔다. 식당에 가기 전에 이 조장은 여자종업원을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고 의뢰원 동무나 접대원 동무로 부르라고 했다. 자리를 잡고 테이블에 서너 명씩 앉았는데 거기엔 이미 간단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도루묵 네 마리가 들어있는 접시와 백 김치 등이 개인별로 올려져 있었다.
곧 의뢰원 동무가 들어왔다. 감색 투피스 차림의 양장을 입고 가슴엔 이름표까지 차고 있었다. 황 씨였는데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얼굴이 작은 대신 이목구비가 두렷한 미인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올 북한정식에 대해 설명했다. 앞에 놓인 도루묵부터 시작해서 만두, 흑돼지구이, 금강산냉면까지란다. 북한산 소주가 나왔고 주흥이 돌면서 일행들은 접대원 동무에게 한 마디라도 붙여보려고 애들을 썼고 그녀는 애살스럽게 다 받아주었다. 난 그들의 경쟁에 애초부터 포기하고 죽은 듯 먹고 있는데 그녀가 나의 눈을 잠시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한 1초 동안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에겐 영원처럼 길었다. 그 사이 그 눈빛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뭐 하세요? 고독을 즐기나요? 저도 고독을 좋아해요. 지금 떠들고 장난치는 사람들 마음에 안 들죠? 저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아요. 아마 선생님은 나하고 남한 말로 코드가 맞군요. 아, 난 그녀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몇 십년 동안 고교 시절 첫사랑으로 각인되었던 나의 뇌는 이제 황ㅇㅇ 접대원 동무로 바뀌었다. 난 두고두고 그녀를 생각할 것이다. 그녀의 까맣고 작은 눈빛을.
마지막으로 하얀 면발의 금강산냉면을 먹고 나서도 접대원 동무가 나타나지 않아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답답해서 내가 복도로 나갔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방에 그녀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그녀가 나왔다. 그녀에게 말했다.
“다들 안 가고 있어요.”
“예? 이제 다 끝났는데요.”
“들어가서 얘기를 좀 해주세요.”
그녀가 들어오자 일행들은 다 끝난 줄 몰랐다며 어린애들처럼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우리는 하나. 가느다란 미성으로 불렀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넋이 나간 듯 접대원 동무를 바라보며 들었다. 나도 몸을 돌려 목을 빼고 그녀의 청초한 자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수처럼 부른 것은 아니었고 노래 잘하는 여염집 처녀의 노래였다. 그녀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부끄러워하며 뛰어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아쉬운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먼저 일어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긴 황 동무 같은 여자들이 대여섯 명이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대여섯 평 되는 실내에는 나무 테이블밖에 없었고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없었다. 그 안쪽은 조리실 같았다. 그녀가 나를 보자 황급히 뛰어나오며 말했다.
“아니, 여긴 들어오시면 안돼요.”
“저, 노래 잘 들었고요 노래 값 드리려고요.”
“저 그런 거 안 받습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복도로 나왔고 그때는 일행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달러를 찾았다. 하필 1달러짜리 밖에 없었다. 아, 가난이 지금처럼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난 최소한 10달러는 주고 싶었다. 1달러짜리를 다 모아도 다섯 장 밖에 안 되었으나 그거라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그거라도 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몸을 빼면서 거절했고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돈을 손바닥에 쥐어주고는 두 손으로 꼬옥 감쌌다. 그러자 그녀는 포기한 듯 돈을 받아 쥐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주려고 했으나 받지 않았다. 황 동무는 내가 준 돈만 받고는 우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녀의 손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내 손의 따뜻한 기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버스를 타고 선상 호텔로 돌아왔을 땐 저녁 8시 반경이었다. 방에 들어가 씻었으나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잠만 잘 순 없었다. 룸메이트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난 심한 불쾌감을 느끼며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로비로 내려오자 일행들은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왜 쳤냐고? 난 왜 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궁금한 사람은 그들에게 물어보시길. 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만 흔들어주고는 갑판으로 나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보였다. 맑은 날씨였는데도 별들이 겨우 몇 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갑판을 죽 한바퀴 돌아 선미쪽에 이르렀을 때 처음 보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배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부두에 북한군 초소가 있었고 그 앞에 북한군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동보총도 없이 맨손이었고 다만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난 문득 그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 안에서는 남한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데 이들은 추운 밤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난 또 호기심이 많은 족속이다. 낮에도 구룡폭포 등산하면서 그랬지만 한계를 시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버릇이 있다. 북한군 초병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들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배 가운데로 가서 잔교를 건너가려다 보니 빈손이었다. 처음 만나러 가는 북한 동포에게 빈손으로 가서야 쓰겠나. 호텔 로비로 다시 들어가 면세점으로 갔다. 물건을 죽 둘러보니 다들 비싼 것 뿐이다. 제일 싼 것이 1불짜리 티밥이었다. 쌀 낟알을 튀겨 과자에 붙인 것이었다. 그걸 2개 사려는데 주머니에 달러가 없었다. 나의 사랑 황 접대원 동무에게 달러를 다 주고 왔던 것이다. 그래서 비자카드로 사려고 했더니 10불이 넘어야 카드 결제가 된단다. 할 수 없이 그 옆에 있던 선물용 북한산 사탕 상자 2개를 12불 주고 샀다. 그걸 쇼핑 백에 넣어 밖으로 나와 잔교를 건너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걸어가 배의 선미 가까이 이르자 뱃전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오세요.”
누군가 가까운 뱃전에서 나보고 하는 소리였으나 난 그를 무시하고 걸어갔다. 내가 선미를 벗어나자마자 북한군 한 명이 뭐라고 짧게 말했다. 수하를 하는 것 같았다. 알 턱이 있나. 그대로 걸어갔다. 그러자 다시 수하를 하더니 다가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난 잠시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가 내리곤 계속 걸었다.
“선생, 오지 마세요.”
난 계속 걸어갔다.
“선생, 오지 마세요.”
그래도 걸어갔다.
“거기 서라니까요.”
그래도 걸어가자 한 명이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와 난 이제 마주 보고 섰다. 그들은 어려보였다. 겨우 20대 초반이 분명했다. 그가 말했다.
“선생, 왜 왔습니까?”
“이거 좀 드리려고요.”
“우린 이런 거 안 받습니다.”
“제 마음입니다.”
“마음은 압니다만 받을 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근무 교대자도 옵니다.”
“좀 받아주세요. 드리고 싶습니다.”
“글쎄 마음은 알지만 못 받습니다.”
거부하는 그들의 얼굴은 순진 무구한 시골 소년의 표정이었다. 나의 성의를 다 안다고 했다. 나의 마음을 다 알겠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들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받을 수 없으니 돌아가주세요.”
이때쯤은 애초에 대화를 해보겠다는 의욕은 다 꺾였으나 그들에게 기어이 뭔가 주고 싶었다. 북한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종이 가방을 바로 앞에 있는 가로등 기둥에 세워놓고 말했다.
“정 그러시면 여기다 놓고 가겠습니다.”
“안 됩니다. 가져 가세요.”
난 꼭 주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그대로 놓고는 돌아서 와버렸다. 초병은 웬일인지 날 따라오지 않았다. 갑판으로 올라오자 아까 날 불렀던 사람은 50대로 보이는 현대 아산 직원이었다. 그가 내게 부드럽게 말했다.
“저거 도로 가져오는 게 좋을 겁니다. 저 사람들 끝까지 추적합니다.”
그 말을 듣자 내가 실수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초병이 내가 놓고 온 종이 가방을 들고 선미 쪽에 서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걸어가 거의 선미에 다다랐을 때 내 대각선 뒤쪽에서 세 명의 북한군이 일렬 횡대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난 그들을 무시하고 초병에게서 가방을 받아 돌아 나오는데 그들 중 한명이 내게 말했다.
“야, 거기 서!"
힘이 들어간 반말에 약간 섬뜩했다. 난 계속 무시하고 그대로 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나의 원래 목적이 남북대화가 아니던가. 어찌 됐든 대화만 할 수 있다면 오늘 밤의 나의 목적은 이뤄지는 셈이었다. 난 은근히 쾌재를 부르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이번엔 또 호텔 입구에 있던 아산 직원이 나보고 그랬다. 그냥 돌아오세요. 그 말에 난 돌아서 걸어왔다. 북한군이 또 말했다.
“야, 거기 서!”
계속 걸어가자 북한군이 같은 말을 또 했다. 두 번 더 그런 말을 들었지만 난 그냥 걸어서 잔교를 건넜고 그 직원은 날 보고 여행증만 안 내줬으면 괜찮다고 했다. 로비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통해 6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행들의 공식 맥주파티가 1층 레스토랑에서 있었다. 거기서 1시간 정도 있다가 방에 돌아와 불을 끄고 자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북한군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근무를 섰던 초병들이 곤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내일 아침에 날 잡기 위해 비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니, 설사 무사히 남으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한 행동은 비신사적인 것이다. 30분 정도를 뒤척이다가 옷을 입고 다시 내려갔다. 선미 갑판으로 걸어가서 북한군을 향해 섰다. 뜻밖에 그들은 두 명이 아니고 다섯 명이었다. 2시간이나 지났는데 그들은 거기 그대로 서 있었던 것이었다. 바람도 불고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이 걸어오더니 날 향해 말했다.
“선생, 잠시 내려오시라요.”
“여기서 얘기하죠.”
‘잠깐만 내려 오세요. 할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얘기 합시다.”
“그러지 말고 잠시만 내려오세요.”
“여행증 뺏으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글쎄, 잠시만 내려오세요. 일이 분이면 됩니다.”
난 잠시 고민했다. 내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 방에서 내려오면서도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날 보자마자 날 알아본 것이었다. 하긴 똑 같은 옷을 입고 나갔으니. 아, 난 어딜 가나 문제아야. 괜한 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구나. 어떻게 할까? 양심적을 내려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볼까? 아까 이곳 직원 말로는 여행증만 안 주면 된다고 했는데 그대로 모른 척 들어가 버릴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선생, 지금 안 내려오면 내일 아침 더 큰일이 일어납니다.”
그 말에 난 내려가겠다고 하고 갑판을 걸어 나오는데 그들이 나를 따라 부두로 걸어왔다. 잔교를 건너자마자 그들과 마주섰다. 아까 나하고 말하던 초병이 말했다.
“선생, 여행증 좀 봅시다.”
“안 갖고 있는데요?”
“아, 농담하지 마시고 여행증 좀 봅시다.”
“정말 없어요. 방에 놔두고 왔어요.”
“선생, 10분 안에 여행증 가져오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아시오. 들어가 가져 오세요.”
난 돌아서 방에 들어가 여행증을 들고 나왔다. 내가 나오자 이번엔 두 초병과 사복 입은 조그만 사람이 부두를 걸어왔다. 초병에게 여행증을 건네자 그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 조장에게 말하고 여행증은 통관에서 찾으세요.”
“통관이 어디죠?”
“조장에게 물어보면 압니다.”
“------.”
“선생, 우리가 뭐 거진 줄 아십니까? 먹을 게 없어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우릴 어떻게 보고 이러십니까?”
“------.”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순진하고 어린 얼굴이 약간 뒤틀려 있었다. 그의 화난 얼굴에 약간 당황했으나 난 대꾸를 못했다. 괜히 맞상대했다가 더 큰 화를 부를 것 같았다. 내가 가만 있자 두 명의 초병은 걸음을 떼 막사 쪽으로 갔다. 막사는 이곳의 입구 초소 옆에 있었다. 두 명이 가자 남은 사복 차림의 남자가 말했다.
‘뭘 줬습니까?”
“과자를 줬습니다.”
“왜 줬습니까?”
“주고 싶었습니다.”
내 말에 그는 내 눈을 잠시 응시하고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이 가고 나는 돌아서 잔교를 건너는데 아산 직원이 말했다. 여행증은 왜 줬습니까? 안 주면 내일 큰일 난데요. 괜찮습니다. 별일 아니니까 푹 자세요. 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룸메이트에게 말할까 했으나 부끄러웠다. 내일 아침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떠벌리면 시끄러워질 뿐이다.
금강산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해금강과 만물상 중에서 택일해야 했다. 난 만물상을 택했다. 서둘러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짐을 다 챙겨 로비로 내려가 토마토 주스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배 앞 널따란 공터로 나갔다. 버스들이 도열해 있었고 이 조장이 나와 있었다. 조장과 버스 운전수가 같이 있는 데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벌금을 조금 맞을 거라고 했다. 작으면 10불, 많게는 100불까지 나중에 저기 보이는 세관을 통과하면서 지불한다고 했다. 100불 정도야 희사할 수 있었다. 북녘의 동포를 돕는데 100불이 문제겠는가. 많이 때려라, 북한 주민에 대한 정신적 부채를 조금이나마 정산할 수 있도록. 그런데 이 얘기는 금방 일행들에게 퍼져버렸다. 입사동기가 그랬다.
“기어코 문제를 일으켰구먼. 내가 조심하라고 그랬지.”
“야, 월북 안 한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라!’
일행을 모두 태운 버스는 만물상 등산에 나섰다. 버스가 가파르고 좁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자그마치 80여 구비를 이리저리 휘돌아 올라갔다. 위에서 차가 내려온다면 빗겨갈 수 없는 1차선 도로였다. 숙달된 운전수가 아니면 올라오기 힘들 것 같았다. 이 길을 북한 사람들이 남한 관광객들을 위해 닦았다니 가슴이 저려왔다.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버스가 조그마한 공터에 이르자 모두 내려 등산을 시작했다. 가파른 등산길은 죄다 각뜬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이 없어도 산등성에 보이는 갖가지 모양의 바위 덩어리는 토끼와 거북이, 뱀 등을 연상케 했다. 그곳의 길목에도 어김없이 북한 관리원들이 지키고 있었고 지나치면서 인사를 건넸는데 아주 낯익은 젊은 여자를 만났다. 눈썹이 반달처럼 동그랗고 입술엔 발간 연지를 바르고 입술 꼬리는 올라가서 복스러운 얼굴이었다.
“어? 어제 구룡폭포에 있지 않았습니까?”
“예, 맞아요.”
“그럼, 백 동무 아니십니까?”
“예? 아닌데요? 섭섭하네요. 전 선생님 성함을 기억하고 있는데. 배철환 선생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아, 생각이 안 나네요. 뭐더라 ----.”
“잘 생각해 보세요.”
“아,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잊어버립니다.“
“내려오실 때까지 잘 생각해 보시라우요.”
“예, 알겠습니다.”
난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았다. 그때 연필만 있었으면 그녀의 이름을 적어뒀을 텐데, 아, 아깝다. 덥석 껴안고 뽀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던 여자가 아닌가. 난 발걸음을 떼면서 그녀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무던히 머리를 쥐어짰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들었을 당시에는 잊지 않겠노라 머리에 각인했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야, 이 아둔한 친구야! 그러게 적으라고 했지. 서울에 있는 동창이 쏘아댈 질책에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무리 해도 기억 나지 않았다. 만물상을 조망할 수 있는 천선대 정상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철제 계단이었는데 그걸 그 험한 곳에 설치하느라 북한 사람들이 겪었을 고초가 피붙이 노역 보내듯 안쓰럽게 느껴졌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중년 여자들도 척척 올라가는데 난 현기증이 나서 저 아래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남이 들을까 봐 유격! 유격! 유격! 속으로 외쳤다. 아부지! 여기 올라 오실라믄 체력 훈련 좀 해야쓰겄네유?
가까스로 올라간 천선대 정상은 바위 투성이었고 다들 사진을 찍느라 난리였다. 어떤 사람은 위험하게 좁은 바위 머리를 딛고 서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겁이 많은 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현대 아산 소속의 직업 사진사도 영업 중이었지만 대개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거기서 보니 더 높은 봉우리들과 만물상이 가까운 곳에서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한 절경을 천천히 감상할 틈도 없이 뒤에서 자꾸 밀고 올라왔다. 사람들에 떠밀려 내려오는데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다시 만나기로 했던 여성 관리원 동무를 만났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 소릴 질렀다.
“오, 관리원 동무!”
“이제 이름이 생각나십니까?”
“미안해요.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 나네요.”
“아, 섭섭한데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 관리원도 끼여들었다. 아, 선생하곤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하하하 ---. 하지만 우리 사이에 짧지만 오갔던 말은 또렷했다. 그러나 우리의 재회를 부러운 듯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 동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관리원 동무한테 했던 말은 기억합니다. 미 제국주의에 경도되었다는 ---.”
“예, 맞아요. 하하하 ---. 그건 기억하시네요.”
“다시 좀 가르쳐주세요.”
“이름을 말입네까? 안되겠습니다.”
“아, 나이를 먹어서 ---. 좀 가르쳐주시면 ---.”
“싫습네다.”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계세요.”
“선생님도 잘 가세요. 언제 뵐 지 모르겠네요.”
“또 올 테니 어디 가지말고 여기 꼭 계세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도 꼭 다시 오시라우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꼭 오지요. 꼭 오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려오는 사람들에 밀려서 헤어졌다. 그녀는 거기서 길손들의 길을 봐주고 있었다. 내려오다 두 명의 남자 관리원을 보았다. 특이한 경우였다. 여자끼리 있는 경우는 몇 번 봤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남자에게는 벌써 남한 남자가 붙어서 얘기 중이었다.
“여긴 어째 남자만 두 분이 계십니까?”
“여긴 난 코스라서 우리만 있습니다.”
“군인이세요?”
“아닙니다. 그런데 남한 분들은 어째 꼭 그 질문들을 하십네까? 우리가 군인 같습네까?”
“예, 군인 같아요. 머리도 그다지 안 길고, 체격도 좋고, 젊고 게다가 힘도 좋아 보이고.”
“에이, 아닙니다. 군대 제대한지 오래 되씨요.”
“언제 제대했어요?”
“오륙 년 됐지요.”
“몇 년 근무 하셨는데요?”
“4년 했습니다.”
“어? 북한 남자들은 10년 동안 의무 복무한다던데.”
“에이, 남한은 왜 다들 그렇습니까? 여긴 자원 입대야요. 다들 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하기 위해 자원해서 입대하지요. 선생님도 군복무 하셌습니까?”
“예, 우리 때는 30개월 복무였는데 전 대학생이어서 26개월 반 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교련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근무기간을 단축시켜 주지요.”
“학교에서 교련 교육도 받습네까?”
“그럼요. 고등학교 때부터 받았어요.”
“요즘도 받습네까?”
“요즘? 요즘은 모르겠어요. 아마 안 받을 겁니다. 그런데 결혼하셨어요?”
“아직 안 했습니다.”
“여자 친구 있습니까?”
“있지요.”
“뽀뽀 해봤어요?”
“예? 뽀뽀요? 안 해봤습니다.”
“에이, 정말이에요?”
“그거이 꼭 말해야 알겠습네까? 척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죠.”
“햐, 남한에서 쓰는 말을 여기서도 하네요. 척하면 삼척이요 탁하면 구렁이 담 뛰어넘는 소리다.”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듯해서 마치 오래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마주 보고 깔깔댔다. 난 그에게 호감을 사고싶었다.
“임 수경 알지요? 문 익환 목사, 문 규현 신부, 황 석영.”
“선생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름만 미리 알고 왔구만요? 그런데 황 석영은 누구죠?”
“소설가에요. 북한에 들어갔다가 5년 동안 감옥에 투옥된 사람이죠.”
그때 입사 동기를 비롯한 일행들이 내려왔다. 난 그들을 북한 청년에게 회사 동료라고 소개했다. 악수를 나누고 몇 마디 하다가 입사동기가 나에게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북한 청년에게 가겠다고 하자 그는 내 팔을 잡으며 좀 더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일행들은 나를 쳐다보았으나 5분만 있다가 내려가겠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사실은 뿌듯했다. 봐라, 북한 동포가 날 절실히 원하고 있는 이 모습을, 우하하하 ---.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오래 얘기를 나눴다. 난 대학교 다닐 때 반정부 데모를 했으며, 내 꿈은 회사 때려 치고 개인사업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는 북조선은 인민들의 천국이라 데모할 필요도 없고 남한처럼 경쟁사회도 아니라고 했다. 내 옆에 있던 두 사람도 그때까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이젠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밑에서 날 기다리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홍 철이라고 했다. 내 이름도 가르쳐주었다. 헤어지려니 섭섭해서 뜨겁게 악수를 했으나 그것도 모자라 그를 꼭 껴안았다. 우린 부둥켜안고 잠시 서로의 체온을 느껴보았다. 따뜻했다. 손을 흔들고 내려오면서 나중에 또 오겠다고 했다.
버스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서 있었다. 더러 남북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눈썹이 반달 같은 여성 관리원 동무가 정면에 보이는 축대 위에서 남한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 서 있는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하나 있었다. 구리 빛 얼굴에 상고머리를 하고 어깨가 넓었다. 얼굴은 큰데 눈은 조그마했다.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물었다.
“뽀뽀 해 봤어요?”
“아니요.”
“정말?”
“정말이에요.”
그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싱긋 웃었다. 얼마나 순박한지 꼭 옛날 시골의 농사군 머슴 같았다.
“군대 갔다 왔어요?’
“예”
“몇 년 했어요.”
“3년이요.”
“몇 살인데?”
“스물 셋이요.”
“난 몇 살 같아?”
“한 서른 다섯?”
“마흔 넷이야.”
“예? 속이시는 거 아닙니까? 어디 증거 좀 봅시다.”
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려고 안주머니를 뒤졌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었다. 그래, 관광증을 보여줘도 되지. 거기에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으니까. 아차, 그건 또 북한군에게 뺏겼지. 결국 아무런 증거도 없자 그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정말이야. 나 마흔 넷이야. 그런데 저 여성 동무 어떻게 생각해?”
난 그 눈썹이 반달 같은 관리원 여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쁘긴 한데 눈이 아주 높을 거 같아요.”
“얘기 한번 해 봤어?”
“모르는 여잡니다.”
그때 안내원들이 관광객들에게 버스에 타라고 했고 북한 청년은 저 앞에 있는 미니 버스로 갔다. 눈썹이 반달 같은 여성 동무가 축대에서 내려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청년이 여성 동무가 눈이 높아보인다고 하는데?”
“하하하, 전 눈이 높아보이지만 사실은 안 높아요.”
그녀는 이미 나의 친구 같았다. 시간만 있다면 그녀와 따로 만나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녀도 미니 버스 쪽으로 급히 갔다. 버스에 올라타 온정각에 내려서 점심을 먹었는데 난 점심 먹을 생각도 못하고 선물을 샀다. 통관할 때 세관원에게 선물을 줄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문제를 더 꼬이게 할 것이다. 이 조장에게 줄 선물로 5불 짜리 자수정 팔찌를 샀고, 운전수에게는 집에서 가져온 지갑을 주기로 했다. 원래 북한 사람에게 주려고 가져왔던 것인데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마누라에게 줄 선물로는 23불 짜리 자수정 귀고리를 골랐다. 그리고 북한 화가가 그린 한국화 두 개와 소나무 암꽃 주변에 묻은 노란 가루를 채집한 소나무꽃가루(일명 송화 가루) 1봉지를 샀다. 평양제약공장에서 만든 노란 송화 가루는 분말인데 음료수에 타서 복용해도 되고 얼굴에 바르면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제 금강산 관광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 버스를 타고 선상 호텔로 돌아와 세관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관광증을 세관원에게 보여주며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 차례에 따라 난 이 조장과 함께 세관원에게 갔다. 이 조장이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관광증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왜 뺏겼습니까?”
“초병에게 사탕을 주다가 뺏겼습니다.”
“하하하 ---. 저기 나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검색대를 통과해 나가서 기둥 옆에서 기다리자 조금 뒤 그 세관원이 날 데리고 바로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겨우 두어 평 남짓했고 벽은 온통 흰색이었다. 벽엔 다른 것도 없고 다만 영정 크기의 액자 세 개가 조르르 붙어있었다. 김 일성과 김 정일 그리고 그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사진이었다. 책상이 하나 달랑 있었는데 다른 세관원이 책상 앞에 앉았다. 사무실엔 나 말고 또 다른 남한 청년과 여자 조장이 들어왔다. 날 데리고 들어왔던 세관원은 종이 두 장과 관광증을 내게 주더니 사죄문을 쓰라고 하면서 말했다.
“동포애적인 입장에서 초병에게 사탕을 준 거디요? 그렇게 쓰세요.”
그는 나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그런데 난 아까부터 주민등록증의 행방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마 관광증이 들어있는 비닐 커버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받자마자 비닐 안에 들여다봤으나 그것이 없었다.
“주민등록증이 여기 들어있었는데 ---.”
“우린 이것만 받았어요. 주민등록증은 없었어요.”
아니, 그렇다면 주민등록증이 어디로 간 거야? 혹시 북한군들이 주민등록증을 빼돌린 거 아냐? 불안했다. 그들이 가져갔다면 남파 간첩들이 그걸 갖고 남한에 침투하려는 것이 아닌가. 꼬이네. 일단 종이에 나의 신상을 적고 어제 밤의 일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고 적고 있는데 그 세관원은 이번엔 비디오 카메라를 틀어보며 남한 청년을 향하여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누가 배 이외의 전경을 찍으라고 했습니까? 여기가 군사지역이란 걸 모릅니까? 조장, 조장은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정신 있어 없어?”
여자 조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맸는데 남한 청년은 지지않고 맞받았다.
“아니, 어디가 군사지역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세관원이 비디오 카메라를 청년의 눈 앞에 들이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지 않아. 배 옆으로 나간 화면을 보라우. 항구 전경이 나오지 않아. 이래도 아니라고 잡아떼갔어?”
“이 정도 갖고 무슨 전경입니까?”
“이게 전경이 아니야? 이거 안 되갔구만. 전 세계 어딜 가나 군사지역은 사진촬영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세관원이 모자를 벗어 던지며 화를 내자 그제서야 청년이 한풀 꺾이기 시작한 듯 잘못을 인정했다. 사죄문을 다 적어주자 세관원이 읽어보더니 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선생은 군대도 안 갔다 왔습니까?”
“갔다 왔습니다.”
“그럼, 초병이 근무시간에 뭘 먹게 되어 있습니까?”
“아니요.”
“알면서 그런 짓을 합니까?”
“그냥 말 좀 걸어보려고 그랬습니다.”
“선생은 벌금 안 물리 테니까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나가보세요.”
난 남한 청년을 남겨두고 혼자 나왔다. 그는 아마 벌금을 좀 물어야 될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일행들이 궁금한지 어떻게 됐냐고 해서 벌금도 안 물고 훈방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러자 공짜로 구경 잘 했다며 부러워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북측 세관(CIQ)을 통과한 버스는 역순으로 해서 남측 CIQ를 향해 달렸다. 난 주민등록증을 찾기 위해 쌕에 들어있는 것들을 다 꺼내고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어쩐다. 금강산에 왔다가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고 가는구나. 틀림없이 북한군 손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뭐라고 해야 하나? 국정원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야, 그렇게 되면 사죄문 쓴 것까지 다 들통날 것이다. 그래, 모른 척하고 넘어가자. 간첩이 내게 접선하면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뭐. 그렇게 남측 CIQ에 도착했고 난 제일 뒤에 내리면서 준비한 선물을 꺼내어 이 조장과 운전수에게 주었다. 다들 한 것도 없는데 라며 받았다. 우리들은 줄을 맞춰 세관원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안내원이 여행증과 주민등록증을 꺼내라는 것이었다. 아, 된통 걸렸구나.
세관원에게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출입국 사무실로 들어가서 말하란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말하자 50대 초반의 남자가 쌕을 샅샅이 다시 뒤져보라는 것이었다.
“잃어버렸다고 해도 다시 찾아보면 나오더라고. 천천히 잘 찾아보세요.”
그러나 일행들은 이미 다 검색대를 빠져나가 버스를 타러 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쌕이며 선물 꾸러미를 죄다 뒤집어 엎었으나 주민등록증은 나오지 않았다. 나가 있던 그를 불러와 없다고 말하며 마지막 남은 종이 가방을 뒤집는데 플라스틱 카드가 톡 떨어졌다. 주민등록증이었다. 천만다행이었으나 십년감수했다. 짐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구겨넣고 세관원에게 주민등록증을 내밀자 이번엔 출국확인서를 달라고 했다. 출국확인서? 그것을 찾기 위해 구석에 가서 가방을 죄다 엎었다. 할머니들이 세관 심사를 거쳐 쑥쑥 빠져나가 검색대 앞에 줄서 있었다. 겨우 그 놈을 찾아서 갖다 주니 그제서야 주민등록증을 돌려준다. 그러나 이미 난 너무 뒤쳐졌고 검색대는 할머니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앞에 새치기를 하여 검색대를 겨우 통과했다. 주차장으로 나와 울산 번호판을 찾아 올라탔으나 자리가 없으니 다른 차에 타라는 것이다. 어, 이상하다? 올라올 땐 자리가 남았었는데. 그러고 보니 목포 삼호 조선소에서 왔던 중역 일행이 타고 있었다. 내려서 뒤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입사동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날 보더니 반겼다.
“그래, 너만 오면 다 온 거야.”
제일 뒷자리에 좌석이 하나 남아있었다. 불편할 것 같아 기분이 상했는데 입사동기가 그 자리마저 양보해 달란다. 삼호 조선소 사람이 앉아야 한단다. 그러면서 운전수 옆에 있는 조수석에 앉으란다. 교대로. 조금 있자 늙수그레한 사람이 뛰어올라와 잽싸게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조수석을 펴고 앉았다. 말이 조수석이지 가죽만 입혔을 뿐 그건 국민학교 때 앉았던 나무 의자하고 똑 같은 것이었다. 공간도 없어서 쪼그리고 앉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구먼. 그래도 입사동기가 부탁한 거니 안 들어줄 수도 없고. 그래, 이게 다 내 잘못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주민등록증만 제대로 찾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의자에 앉아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전수는 얘기나 하면서 가자는데 난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짜식, 이런 자리에 앉혀놓고 무슨 얘기야, 얘기가? 난 30분 동안 입을 꾹 다물고 갔다.
그런데 버스는 왔던 길로 안 가고 진부령을 넘어 원통으로 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나 원통에서 군생활 했어요. 20년 만에 처음 오네요.”
“그러세요? 저도 원통에 있었습니다. 헌병으로요.”
“그러세요. 진부령에 있는 삼청교육대 아세요?”
“예, 알지요.”
진부령을 지나 내리막 길로 달리자 왼쪽에 백담사 입구와 오른쪽에 포대가 있었다. 포대 바로 아래가 삼청교육대라고 기사가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