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꺼다.
아내와 단 둘이 강화도 드라이브를 즐기고 돌아와서 혼곤한 몸으로 휴식을 취
하며 흙벽돌집 예쁜 다락방의 여운을 반추하고 있는데 그 속으로 회준이에게
걸려온 전화가 틈입해 온다.
등산반 총무로 제도권 권력으로 들어 온 제환이가 단축 마라톤에 도전해 성공
했다고 축하주를 산본에서 마시는 모양이다.
유쾌한 대화 중에 내 이야기가 나와서 바로 전화를 했단다.
밤안개가 밤안개처럼 데리고 온 묘령의 아줌마도 함께 동석하고 있는데 우리
홈피 열혈 독자이신데 나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나...
그녀는 얼마전 제자들과 연신내 한국관 나이트에 간 글을 읽었는데 나보고 정
말 웨이브가 되냐고 행복을 만천하에 증명하듯 커다란 웃음을 간지럽게 날리
며 내게 묻는다. 난 춤 뿐만이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웨이브라고 원기가 밤안개
라면 난 파도라며 나 역시 시원스런 웃음으로 화답해 준다.
원기가 핸드폰을 가로채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자마자 나보고 글 너무 현학적
으로 쓰지 말라며 세상에서 제일 정다운 육두문자를 날린다. 원기는 전화로 욕
하면서 자신의 우정을 정얼지게 표현할 줄 아는 훌륭한 친구이다.
원기의 목소리 톤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의 주동이는 나보고 가정에 너무 얽메
이지 말고 가끔은 호연지기 해야 한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호연지기(好戀之氣).... 난 이말을 들으며 살며시 부끄러워 졌다.
나도 나름대로 사랑을 찾아 바람처럼 살려고 노력했었는데, 역시 주동이의 경
지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동이는 유흥 산악, 전문 산악, 사랑 산악을 두루 섭렵한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의 인생 역정은 호방하기 그지없다.
제환이는 날 볼 때마다 ‘바보’라고 놀린다. 난 고등학교 때 별명은 바보 이고 대
학 때 별명은 우울한 천재였다. 그 둘은 상치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하나이
다. 난 세상과 언제나 불화하여야 하는가.... 우울하다.
규운(規雲)이는 늘 구름을 타고 다니며 우리들 만남에 천기를 불어 넣어준다.
우리 동창 최고의 소식통답게 궁금한 친구의 안부를 척척 알려준다.
하긴 구름을 타고 다니니깐 훤히 들여다보일 수 밖에...
핸드폰은 경쾌하게 순회 공연을 하더니 회준이가 나의 아내 말로만 먼로 여사
를 찾는다. 아니, 이 넘이 쌍곡선 집필중이더니 60대에 쓸 쌍곡선 이야기를 만
들려나...난 의심하고 있었지만 우리 와이프의 청교도적 방어 능력을 믿기로 했
다.
우신 홈피는 참 특별하고 정다운 곳이다.
이 곳에 들어와 있는 동안은 서로의 물리적 공간의 거리는 다 다르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 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 여기선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과 예비고사
점수 따위는 정말 웃기는 짬뽕이 되고 만다.
홈피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리플을 달며 때론 가까이서 우리들만의 수다를 떠
는 것 같기도 하다.
적당한 세속과 적당한 교양과 적당한 치기등등이 허물없음이라는 든든한 외피
속에서 펼쳐지는 중년 남정네들의 수다말이다.
그래서 였을까 어제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그 유쾌함이 고스란히 잠자리의 꿈
으로 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