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는 이와 같은 이슈에 관한 전문 글쟁이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나는 인력자원개발(HRD)분야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통념상으로는 충청남도가 고향인 사람이어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무지하게 많은 관심을 가질 법한 사람중 하나이다. 내숭이와 같은 唐津郡...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수다한 시행착오, 그로 인한 댓가가 상상외로 크다는 점이다.
내가 속한 연구기관은-지금도 일단락된 것은 아니지만-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무조건 수도권 밖으로 이전해야 할 모양이다.
(이제 계획자체가 백지화 되었을까. 덩달아서?)
작년에 울산광역시(배철환이 있는 곳?)와 김해시에서
우리 기관을 유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그곳으로 가서 안 될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으로 가서 얻을 이익 또한 별로 없다. 아니, 오히려 비용이 막대하다.
첫째는 예산 문제이다.
일례로 프랑스가 우리 비슷한 연구소(CEREQ)를 빠리에서 니스로 이전시켰다.
그곳 예산의 상당한 비율이 직원 및 전문가 초청에 따른 출장비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방으로 이전한다면 매번 서울로 출장을 시행해야 한다.
둘째는 학교의 분포문제이다.
우리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대학의 상당수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실험 재료와 설비만 있으면, 장소와 무관하게 연구가 가능한 연구소와 달리,
우리는 연구대상이 사람이요, 교육기관이다.
혹, 울산이나 김해로 이전할 경우, 연구의 비효율성은 불문가지이다.
셋째는 연구기관의 존립기반이다.
연구기관은 우수한 연구인력의 확보가 핵심이다.
지방으로 이전했을 경우 많은 연구원들이 직장을 포기하겠다는 계획이다.
독일에서는 우리 비슷한 연구소(BIBB)가 베를린에서 본으로 이전하는데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베를린에 기반이 있는 연구원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비행기를 전세내어 주말에 교통편의를 제공하면서 본으로 이사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의사결정기간을 주겠다는 계획도,
이전시 서울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는 편이다.
나의 이번 아마추어 정부,
그리고 이후에 들어설 또 다른 아마추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이렇다.
획일적으로 재단하지 말고 밀어부치려는 시도를 바꿔달라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안별로, 시기를 조정하면서 장기적으로 추진하라는 얘기다.
워싱턴으로 수도를 옮기는 데도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우리는 대통령 공약->입법->추진 에 3년이나 걸렸나?
나는 강남 사람도 아니고,
-강남의 문제는 또 다른 주제인데..강남 사는 것이 죄가 아니고,
'노블리스 오블리쥬' 문제를 본질로 다루어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 한다-
돈을 벌 뻔한 충청도 사람이다.
그렇다고 충청도에 돈 될 부동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상을 모신 5000평 가파른 산이 있을 뿐이다.
내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 그런 산 말이다.
이번 아마추어 정부가 행정수도를 옮기려 했던 시도는
충분한 검토와 민의수렴 절차가 결여되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 했던가?
그런데도 어찌된 것인지, 타협은 거의 없고 편가르기만 있는 것 같다.
반대 편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또 하나,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례를 제발 참고하라는 것이다.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사례를 잠깐 인용하고 싶다.
그는 부왕인 솔로몬왕을 보필하였던 원로 신하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자신과 같이 자란 세대의 조언을 취하여
결국 남과 북으로 국가가 나누어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우리는 이른바 386세대의 맏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386이 완벽하게 지혜롭다거나 경륜이 풍부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사회의 중추적인 일꾼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 사회의 리더라는 점에는 의견이 다르다.
그래서 원로들의 지혜와 경험이 우리의 혈기와 추진력에 배합되어야 한다.
얼마전 청와대의 brain으로 386이 전면에 배치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성경의 르호보암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속한 직장도 엇비슷하다.
52년생 젊은 원장이 새로 부임하셔서
40년대생의 선임 연구위원들은 거의 배제하고
50년대 말, 60년대 초의 staff을 중용하여 연구원을 이끌어가신다.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서
우리 기관의 기관장으로 오셨다는 설이 파다했었는데...
인재 활용 면에서도 코드가 맞나보다.
무거운 주제를 주말에 게시판에 실어서 게시판이 떨어지지나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