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교회의 금요기도회에 갔다. 본당에서는 강대상 뒤에 있는 대형화면의 교체공사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설치한 화면이 흐려서 새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저께 수요 예배 때 보니까 붙어있던 화면을 다 뜯어내고 새로 조그만 화면이 붙어있었다. 오늘은 거의 마무리를 하는 듯 화면 주변의 나무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본당을 나와 임시 기도회 장소인 교육관 3층으로 올라갔다.
기도회를 마치고 두 가지 광고를 했다.
1. 양현숙 집사님께서 부친상을 당했으니 전북 김제의 상가에 가실 분들은 내일 아침 일곱시까지 교회로 나오십시오. 멀기 때문에 교회에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아홉시나 될 겁니다.
2. 교회 본당의 의자도 나르고 의자를 걸레로 닦아야 하니까 개인 기도를 마치시는 대로 본당으로 가셔서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대충 개인기도를 하고 본당으로 갔다. 본당 입구에는 물을 적신 걸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난 윗도리를 벗어 성경과 함께 의자에 놓고 걸레를 들고 본당으로 들어갔다. 벌써 이둘분 집사님이 앞쪽에서 걸레를 들고 의자를 닦고 있었다. 재작년에 나는 집사님의 장남인 정병조(현재 고2)의 반사(班師)였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평소 나에 대하여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박대하거나 싫은 소리를 함부로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같은 유치부 교사다.
인부들은 아직 작업 중이었다. 이런 고난도 기술자들을 인부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비계 위에 올라가 천장에 매달린 조명을 손 보는 사람도 있고, 그 비계가 흔들리지 말라고 밑에서 잡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전기 톱으로 베니어판을 자르는 사람도 있고, 사장인지 무전기를 들고 화면을 조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의자는 제대로 정렬되어 있어서 따로 나를 건 없었다. 이미 지난 수요일에 뒤로 빼놓았던 것을 옮겨놓았던 것이다. 난 천천히 걸레질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죽어라 안 하는 짓을 교회라고 하려니 양심이 찔려왔다. 집에서 안 하니 교회에서라도 해야지. 더구나 예수님의 몸인 교횐데 열심히 닦아야지. 난 힘을 내서 닦고 싶었으나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허리를 숙이고 슬금슬금 닦았다. 허리에 부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런데 내일 유치부 선생님들끼리 산에 간다고 했는데 아직 내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집사님께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짜고짜 코앞에 가서 물어보는 건 싫다. 난 아는 사람에게 뭘 묻는 건 바퀴벌레만큼이나 싫다. 차라리 모른 채 죽는 게 낫지. 극단적으로 그런 생각까지도 한다. 사람의 생각이 이리 모질다. 나만 그런가?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길 물어보는 건 또 쉽게 한다. 난 뒤에서부터 걸레질을 하면서 집사님과 가까워지기를 기다려 물었다. 물어보기 싫은데 억지로 물었다.
“내일 산에 갑니까?”
“가지요. 연락 못 받았습니까?”
“못 받았는데요.”
“나는 총무 선생님한테서 전화연락 받았는데 ---.”
“아, 그렇습니까.”
갑자기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왜 내겐 연락을 안 해줄까? 지난 주일에 산에 간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어디에 언제 어떻게 간다는 건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내가 물어보면 되겠지만 전화가 오겠지 하고 여태 기다렸었다. 당연히 부장 집사님이든 총무 선생님이든 연락을 해와야 하는 게 아닌가. 난 물어보기 싫었지만 감정을 절제하고 목소리를 깔면서 물었다. 깐다고 깔아도 입이 옆으로 째지면서 김새는 소리가 났다.
“어디로 모입니까?”
“자동차 문화회관이요.”
“몇 시죠?”
“정말 연락 못 받았습니까?”
“그렇다니까요.”
슬그머니 화가 났다. 그냥 대답해주면 되지 뭘 또 물어보시나 증말! 집사님은 어찌 된 일인지 몇 시에 모이라는 말은 안 해주고 멀어져 갔다. 난 집사님 꽁무니에 따라가서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집사님은 양손에 걸레를 들고 있었다. 신발은 벗은 채 의자에 올라가 두 손으로 번개처럼 닦고 있었다. 조자룡 헌 창 쓰듯 날렵하게 두 개의 의자를 동시에 닦고 있었다. 어쩐지 진도가 잘 나가더라니! 밥 먹고 걸레질만 했나? 걸레질에 도 텄네. 나도 슬그머니 걸레 한 개를 더 집어 이젠 양손에 무기를 잡았다. 그러나 신발을 벗고 올라가긴 싫었다. 남자의 한계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닦고 있는데 임종헌 집사가 본당으로 들어오더니 걸레를 집고 닦기 시작한다. 난 그새 터득한 노하우를 그에게 전수해주고 싶었다.
“임 집사님, 걸레를 양손에 한 개씩 들고 해!”
“뭘, 그냥 한 개로 할래.”
말 죽어라고 안 듣는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 말을 발설했다간 그가 삐칠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그와 내가 쌓은 15년간의 오랜 우정에 금이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런 말로 삐칠 임 집사는 아니었다. 그런 말을 못하는 내가 문제라면 문제지. 밴댕이 소갈머리. 임 집사는 사장의 요청에 따라 강대상에 올라가 화면 조절의 모델까지 했다. 화면에 나오는 임 집사는 목사님같이 의젓했다. 어쩌면 저렇게 의젓할까? 임 집사는 정말 지금이라도 목회로 나가야 한다. 그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정말 그 길로 나가지 말고! 그랬다간 나 곽 선생한테 맞아죽는다. 사찰 집사님이 임 집사 옆으로 오더니 내일 마무리하러 나오라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은 임 집사는 또 나보고 말했다.
“내일 나와서 마저 정리해야지?”
난 대답 대신 위태위태한 비계 위의 인부를 바라보며 본당 앞으로 쓰윽 갔다. 어쩌자고 천장까지 닿는 비계 위에서 안전벨트도 없이 작업을 하고 있을까? 회사 같았으면 당장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을 텐데. 하긴 교회 일인데 하나님께서 다 보살펴 주시겠지.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편 91:12)는 말씀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정말 믿음 좋은 사람들이다. 어느 교회 다니는지 물어볼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둘분 집사님과 임종헌 집사를 내 차에 태우고 바래다주었다. 두 사람은 현대 홈타운 쪽의 같은 방향이었다. 오면서 고민했다. 내일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되는 거야? 산행이냐 교회 봉사냐 초상집이냐?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은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었다. 집사람은 나까지 자그마치 애 넷을 키우고 있다. 그제서야 집사람의 휴대폰 생각이 떠올랐다. 참고로 나는 휴대폰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서 휴대폰이 없다. 돈도 없지만. 자는 집사람을 깨워 물어보니 아닌게아니라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깜박 잊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내일 자동차 문화회관으로 12시에 오란다.
난 지금 네 가지를 놓고 고민중이다.
1. 유치부 모임
2. 교회 봉사
3. 초상집 방문
4.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줄행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