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개정 저지투쟁 제3 라운드 -- 무엇이 문제인가?
12월23일 저녁 사학법 파동의 돌파구를 마련할 목적으로 청와대에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7대 종단(천주교ㆍ한국기독교총연합회ㆍ불교 조계종ㆍ원불교ㆍ성균관ㆍ천도교ㆍ민족종교협의회) 및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지도자들 사이의 간담회는 예상했던 대로 성과 없이 끝났다. 노 대통령이 지난 19일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날치기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천주교와 한기총의 건의를 거부하고 개정 사학법을 공포할 생각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개정 사학법을 공포하는 대신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학의 자율성이 최대한 구현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사학의 건학 이념 구현 및 자율적 운영과 투명성, 개방성 실현이라는 두 목표가 서로 충돌되지 않고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하위법이나 이 법의 여러 시행과정에서 사학의 자율성이 최대한 구현되도록 관계 부처에서 조치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학의 자율성이 최대한 구현되도록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은 그러나 공신력이 없다. 그 동안 노 대통령의 어록은 그의 말이 동에서 할 때와 서에서 할 때가 다르고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노 대통령의 말은 말로는 ‘사학의 자율성 구현’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말하는 ‘건학이념’이나 ‘사학의 자율성’이 사학측이나 관심 있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건학이념’이나 ‘사학의 자율성’과는 다른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사학측과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사학의 자율성’ 문제의 핵심은 정부ㆍ여당이 이번 법 개정을 통해 기를 쓰고 관철하려고 하고 있는 ‘개방형 이사’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하여 노 대통령은 양보할 의향이 없음을 명백히 했다. 그는 특히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전교조>에 의한 학교 장악은 여러 가지로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면서 “학교 현장에는 <전교조> 뿐 아니라 <교총>, <한교조> 등 교사단체도 여려 개 분립되어서 상호 견제하고 있고 현직 교사가 이사가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것을 앞세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주장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기망하는 말장난일 뿐이다. 수자로는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말에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게 되어 있다. 왜냐 하면 지금 유치원을 포함하여 초ㆍ중ㆍ고등학교와 전문대ㆍ대학 등 각급 학교 교사 총 48만 명 가운데 <전교조>에 가입한 교원은 9만 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분의 1의 수자로 어떻게 학교를 장악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전교조>에 반대하는 <교총>과 <한교조> 등 단체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 노 대통령의 주장이다.
형식논리에 따른다면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전교조>에 의한 학교 장악은 여러 가지로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에 일면의 진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노 대통령의 주장이야말로 ‘비현실적 주장’이다. 왜냐 하면 지금 전국의 각급 학교 <운영위원회>는 거의 대부분 이미 <전교조> 교사들에 의하여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관행에 의하면 <이사회>와 같은 기구에 <전교조> 계열 인사가 단 1명이 들어와도 그 효과는 <전교조> 전체가 들어오는 것과 맞먹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예사였다. 그 1명의 뒤에는 언제라도 막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행동통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전교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재단 <이사회>에서 단 1명의 이사라도 마음만 먹으면 임원 간에 분규를 야기하여 이를 ‘임원 승인취소’와 ‘임시 이사 파송’ 사유로 둔갑시킬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교조>는 그들의 ‘대 사학투쟁 전략’의 최종 목표가 “재단 퇴진, 임시이사 파송, 학교경영 장악”이라고 공공연하게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목포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사학비리를 폭로”하고 “특별감사 실시를 요구”하며 “학생과 학부형을 동원하여 데모를 전개”하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전교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호도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총>이나 <한교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직이다. <전교조>는 지금 연간 200억원 규모의 재정과 150명의 ‘전임자’(‘교단’에 서지는 않고 기획ㆍ정책ㆍ조직ㆍ홍보 분야 별로 <전교조> 업무만 전담하는 ‘교사’ 아닌 ‘교사’들)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 방대하고도 막강한 조직이다. 수자 면에서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한 교원들이 가입하고 있는 <전교조>가 사실상 학교 운영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정부의 교육정책, 교과서 내용 그리고 나아가서 정부의 교육분야 각료와 공무원 임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 정도라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몰라도 제1야당인 한나라당 정도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강력한 조직이다.
이것이 실정인 이상 <전교조>가 장악한 <운영위원회>(또는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로 추천하는 이사 정원의 4분의 1 ‘이상’의 ‘외부인사’들이 <전교조>의 차지가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개정 사학법에 의하면 정원이 7명인 <이사회>에서는 2명 ‘이상’, 9명인 <이사회>에서는 3명 ‘이상’의 <전교조> 소속 또는 계열 ‘외부인사’들이 이렇게 <개방형 이사>로 위촉되게 되어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개방형 이사>제가 실시되어도 <전교조> 교사들의 <이사회> 진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노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의 논리는 실정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정부ㆍ여당에서는 사립학교 <개방형 이사>를 기업 <이사회>의 <사외 이사>와 같은 것인 것처럼 듣는 이들을 오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기업의 <사외 이사>는 정부나 노동조합이 위촉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진’이 위촉하는 것이다. 반면 개정 사학법에 의거한 소위 <개방형 이사>는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학원의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뽑겠다는 것이다. 정부ㆍ여당은 이 양자를 마치 같은 것인 것처럼 호도하여 듣는 이들을 기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은 이른바 ‘사학비리’와 ‘책임경영’ 시비로 문제의 <개방형 이사> 도입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궤변’에 불과하다. 지금 유치원을 제외한 전국의 2,129 개 각급 사립학교 가운데 ‘비리사학’으로 지목되어 <임시(관선)이사>가 파견되어 있는 사학의 수는 중ㆍ고등학교 15개, 전문대학 7개, 대학교 13개 등 35개 학교, 즉 1.6%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정부가 현행 사학법과 그 밖의 실정법을 가지고도 ‘비리’를 단속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개정 이전의 현행 사학법들도 이 법률들이 성실하게 집행되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학비리’는 충분히 단속할 수 있는 감독권을 정부 당국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교육 당국에게는 ①시정변경 명령권, ②학교장 해임요구권, ③임원 승인취소 및 임시이사 파송권, ④학교 폐쇄 명령권 등 강력한 감독권이 이미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ㆍ여당은 35개의 ‘비리사학’을 구실로 나머지 2,094개의 ‘건전사학’마저 ‘비리사학’으로 만들어서 “모기를 칼로 잡겠다”는 위험한 불장난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정부ㆍ여당이 ‘투명경영’을 구실로 학교 <이사회>에 <전교조> 교사 또는 <전교조>의 사주(使嗾)를 받는 인사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합리화ㆍ정당화시킨다면 앞으로 형평성의 차원에서 기업에서도 ‘투명경영’을 이유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노동조합의 <이사회> 참여 허용 요구를 배척하기 어려워짐으로써 산업 현장에서 수습하기 어려운 공황이 야기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의 사학 운영에 부분적인 ‘비리’와 ‘부실’이 있어 왔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사학법 파동의 와중에서 사학인들 자신이 ‘자정(自淨)’ 노력으로 이를 시정하려는 구체적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국의 사학인들은 지난 6월27일 거행된 ‘사학분야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을 통해 “예결산 공개”와 “공개적이 투명한 교원 임용”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개정하고 <사학 윤리위원회>를 혁명적으로 재구성하는 등 파격적인 ‘투명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들 사학인들은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을 다짐하면서 이 같은 ‘자정’ 노력의 결실을 보기 위하여 정부에 대해 “2년간의 유예기간”을 호소했었다. “사학법 개정안의 국회심의를 2년간 유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이 학계의 이 같은 합리적 요청을 끝내 뿌리치고 이번에 사학법 개정안의 날치기 국회통과를 강행했을 뿐 더러 사학계는 물론, 종교계와 재야세력들 및 <한나라당>이 요구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마저 거부하고 이의 공포ㆍ시행을 강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히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단순한 ‘책임경영’과 ‘비리척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는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결국 2007년 대통령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개정 사학법의 시행을 통해 <전교조>로 하여금 이미 <전교조>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교단’에 그치지 않고 사학의 ‘재단’마저 <전교조>로 하여금 ‘접수’하게 하는 데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ㆍ여당의 의도는 35개 ‘비리사학’의 <임시(관선)이사> 체제 하에서의 운영실태를 보더라도 명백하게 들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의 경우 현재 <임시(관선)이사>가 선임되어 있는 곳은 <광운>ㆍ<경기>ㆍ<고신>ㆍ<세종>ㆍ<한성>ㆍ<덕성여자>ㆍ<탐라>ㆍ<대구>ㆍ<영남>ㆍ<조선> 등 10개 대학이다. 그 동안 혹심한 분규로 시달림을 받았던 <상지>ㆍ<한국외국어> 등 두 대학은 <정이사> 체제로 환원되어 있는 상태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이들 대학에 대한 <임시(관선)이사> 임명은 철저하게 ‘진보’를 표방하는 ‘친북’ 성향의 ‘좌익’ 인사들로 이루어졌다. 한완상(상지대)ㆍ강만길(상지대)ㆍ한승헌(한국외국어대)ㆍ이창복(경기대)ㆍ이해동(덕성여대)ㆍ장회익(한성대)ㆍ강신석(조선대)ㆍ함세웅(세종대) 씨 등이 그 면면들이다. 결국 ‘관선이사’ 임명은 곧 ‘좌익’ 인사들에 의한 ‘재단’ 장악으로 직결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공포를 앞두고 있는 개정 사학법에는 그 밖에도 숱한 ‘독소(毒素)’ 조항들이 감추어져 있다. 예컨대, <임시(관선)이사> 파견의 ‘조건’이 될 ‘임원승인 취소’ 사유의 하나로 개정 사학법은 “당해 학교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야기한 때”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총ㆍ학장실을 점거하여 학교운영이 마비될 때도 ‘임원승인 취소’ 사유가 충족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사회>의 “결원 미보충으로 학교법인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도 <임시(관선)이사>의 선임을 가능케 함으로써 정부당국에 의한 ‘사학’의 경영권 탈취 수단으로 이를 악용할 소지를 남겨 두고 있다.
또 <임시(관선)이사>에 대해서는 ‘임기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그 대신 “선임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계속 재임”을 허용하는 항목을 신설함으로써 ‘임시이사’의 “무제한 계속 재임”을 통한 “사학경영권의 실질적 탈취”를 가능하게 해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 사학법에는 ‘법인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 존ㆍ비속 및 그 배우자’의 “‘교장’ 취임권을 박탈”하고 “‘교장’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1회 중임만을 허용”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는 조항들도 신설되어 있다.
23일에 있었던 노 대통령과 종교단체 지도자들 간의 청와대 간담회가 성과 없이 끝나게 됨에 따라 사학법 개정 저지 투쟁은 이제 제3 라운드로 옮아가게 되었다. 사학법 개정안의 국회통과 저지라는 제1 라운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제2 라운드가 실패로 결말이 났고 이제는 노 대통령에 의한 공포를 통해 실정법으로 등장할 개정 사학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과 이를 통한 폐지 내지 개정 투쟁이라는 제3 라운드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23일의 청와대 간담회를 고비로 사학법 개정 반대 전열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반대 전열에 참여했던 7대 종단 가운데서 불교(조계종)와 원불교, 성균관(유교), 천도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비기독교 종단들이 전열을 사실상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제 사학법 반대투쟁 전열에 종교단체로는 천주교와 기독교(한기총)만이 남게 되었다. 이로써 앞으로의 사학법 반대투쟁은 <사학법인연합회> 산하의 사학 및 사학단체들과 <한나라당>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로 형성되는 연합전선이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신ㆍ구 기독교만이 전장에 잔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사학법 반대 투쟁은 현대판 <십자군(十字軍) 전쟁>의 성격이 더욱 부각되게 되었다. 앞으로의 투쟁 양상은 개정 사학법의 공포 이후 반대진영에서 헌법제판소를 상대로 제기할 ‘위헌’ 소송과 아울러 각급 사학 및 사학단체들이 전개할 ‘법률 불복종’ 운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게 되었다. ‘법률 불복종’의 일환으로 사학단체들은 2006학년도 각급 학교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등 신입생 모집을 거부할 것을 다짐하고 있고 이에 대해 정부ㆍ여당은 ‘학교장 고발’ㆍ‘이사회 해체’ 및 ‘임시(관선)이사 임명’ 등의 강경 대응을 다짐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사학측에서는 ‘학교 폐쇄’라는 극한 조치로 ‘결사항전’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