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목)
서울에는 비가 오는가 보다.
마누라가 비오면 꼼짝 말고 숙소에 있으란다.
후후, 걱정도 되겠지. 그런데 나는 이제 완전히 적응이 된 느낌이다. 다리의 통증도 없다. 점심을 먹은 후 2-3 시간을 빼면 엉덩이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고 4-5시 이후에는 자전거와의 일체감이 느껴진다. 다만 이제는 팔저림이 많이 느껴진다.
오전에 통영으로 넘어가 해저터널을 구경하고 미륵도 일주를 한다. 미륵도 서쪽 임도로 들어가 보니 비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미륵도 남단 달아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풍경은 장관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섬들 섬들… 통영 8경 중 제 1경이니 아마도 남해를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대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하다.
통영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거제대교 아래에서 맹수와 헤어진다.
< 일제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 앞에서. 아름다운 아저씨 맹수 한 컷! >
<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한려해상 국립공원 >
이제 종착지에 가까워 간다. 거제도를 일주하면 일차적인 목표의 달성이다.
거제에서 빠져나가는 코스는 아직 미정이다. 하나는 진해로 나가 진해시 라이딩을 한 후 마산으로 넘어가 원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으로 넘어가 시내를 관통하여 부산버스터미널에서 원주로 가는 것이다. 진해시도 라이딩하기에 좋다고 하고 번잡한 부산으로 나가기보다는 운치가 있어 보일 듯 하지만 진해부터 마산까지의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남해일주라는 타이틀을 붙이려면 부산을 거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둘 중의 하나 선택은 내일의 컨디션 여하에 따라서 결정하기로 한다.
거제도는 주로 동쪽 해안을 많이 구경한다. 해금강도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도 동쪽해안이니 서쪽해안에 비해 발달도 많이 되었고 많이 알려져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코스는 일단 거제대교부터 시작하여 서쪽 해안을 돌아 동쪽 해안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맹수와 맹수의 처를 뒤로 하고 거제 일주를 시작한다. 주요 교통로는 신거제대교에서 이어진 국도이기 때문에 거제대교 남단에서 시작되는 도로의 교통량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 거제. 첫날 섬이라고 하여 우습게 생각했다가 엄청 고생했던 진도가 세번째 크기의 섬이니, 거제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될 것이다.
거제에 대해 충분한 외경심을 담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잠시 후부터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참 좋다. 거제의 바다는 다도해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가롭다고나 할까? 다도해는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많은 섬들이 이어져 있는 반면 거제의 바다는 몇 몇 개의 섬들이 여유로이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조금 무리를 해서 직행코스는 피하고 해안도로를 돌아 돌아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조그마한 죽림해수욕장을 지나 산양에서 다시 해안도로로 접어드니 거제의 바다가 연이어 눈 앞에 나타난다.
< 거제 청마 생가 근처의 바닷가에서 >
그리고 오르막. 두번째 섬 답게 오르막 또한 거대하다. 그러나 이제는 오르막을 오르막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르막은 그저 오르막일 뿐이다. 나에게만 특별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피할 수 없다. 그저 오르면 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이는 결국은 같을 것이다. 단 오르막이 길게 느껴지는 건 힘들기 때문이고 내리막이 짧게 느껴지는 건 즐겁고 쉽기 때문이리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같다고 생각하니 오르막에서 힘든 건 당연한 것이다. 더 높이 오를수록 더 멀고 길게 내려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거제도 남부면 지도. 남부면 중간 움푹 들어간 곳이 현위치. 질러갈 것인가 둘러갈 것인가? >
거제의 남쪽 끝 남면에 다다랐다. 시간은 6시다. 최남단 홍포로 돌아가는 길이 있고 해금강쪽으로 직진하는 삼거리이다. 해금강으로 넘어가는 길은 틀림없이 오르막이겠지만 거리는 2-3km에 불과하고, 최남단 홍포로 일주하는 길은 10km가 넘기도 하지만 홍포를 지나 여차로 넘어가는 길 약 4-5 km 가 비포장 도로로 표시되어있다. 조약도에서 비포장도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잠시 망설여 진다. 시간도 해저물 녁이고 그 시간에 비포장도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홍포로 방향을 잡는다. 마지막 남행길이다. 거제의 최남단을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은 좋다. 차고 없고 경사도 심하지 않고 완전 라이딩의 천국에 온 느낌이다. 대병도 소병도를 위시한 몇 개의 작은 섬과 망망대해의 조화로운 풍경이 눈 앞에 펼져진다.
홍포 역시 일출이 장관이리라. 망망대해와 간간이 떠있는 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얼굴은 어떤 모양일까?
< 일몰이 가까워 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비포장 길이다. >
홍포를 지나니 비포장길이 나온다. 긴장이 된다. 시간은 6시30분을 지난다. 완전 일몰이 7시 30분 경이니 7시까지는 라이딩을 마쳐야 한다. 이제까지 조약도를 빼고는 대체적으로 7시경에 마칠 수 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날에 마지막 도전이다.
비포장인 줄은 알았으나 그 길이에 따른 시간 소요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없어서, 일단 시간을 줄이려고 비포장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낸다. 오르막에서는 뛰어 올라간다. 그렇게 20여분을 가다 보니 뒤에서 차가 한대 올라온다. 휴~ 한숨을 내쉰다. 길은 있다. 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한 10여분을 더 가니 여차 해수욕장이 바라다 보이는 조그만 전망대에 다다른다. 사람도 몇 명 있다.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이제까지 7일 동안 보았던 바다 풍경의 완결편이라고나 할까? 거제에 입도했을 때부터 들었던 친근함이 여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매물도 그리고 대소병도 그리고 이름없는 몇몇 섬들로 어우러진 바다. 다도해처럼 번잡하지도 않고 동해처럼 덩그러하지도 않은 바다와 섬의 완전한 일체감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내려올 곳은 다 내려왔다는 만족감, 그리고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몰아쳐 온다.
사람들이 다 떠난 그곳에서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외에서 일몰을 만끽한다.
너무나 아름답고 편안한 밤이다.
이제는 여행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이번 여행. 집사람의 배려로 시작할 수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맞은 긴 휴가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
고생한 엉덩이와 팔 (특히 왼팔), 그리고 다리에게 감사한다.
여차 해수욕장으로 내려가 파도소리가 들리는 숙소에 든다.
< 여차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대소병도, 여차마을 그리고 멀리 매물도가 보인다. >
운행거리 ; 56 km 운행시간 ; 4;14;58 최고속도 ; 54 km/h
8/26
아침 일찍 여차를 떠난다.
<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상쾌한 거제의 아침 >
이른 아침의 라이딩이 제일 상쾌하다. 상쾌함을 만끽할 수 가 있다. 반면 4-5시 이후의 라이딩은 몰아지경에 가까운 듯하다. 아무 생각없이 자전거 타기에 몰두하다 보면 거리에 대한 부담도 사라지고 자전거와 일체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마지막 날 아침의 상쾌함을 느끼고자 일찍이 숙소를 나선다.
역시 두 번째 섬 답게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이가 길다. 덕분에 내리막의 쾌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가 있어서 좋다.
< 해금강 신선대 위 전망대에서. 완성된 혼자찍기 >
해금강을 둘러 본다. 이번 여행 중에 유일하게 와보았던 곳 – 해금강. 89년 회사에서 직원들과 여름 휴가로 지리산 등반 후에 해금강에 왔었지. 그 때 기억은 비포장, 쪽마루 있는 민박,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 주인집 배타고 둘러본 해금강 등이었는데, 이것들이 포장도로, 현대식 숙소, 관광지화된 해수욕장과 해금강, 곳곳이 유람선 승선장으로 변해 있었다.
뭐 그래도 여전히 해금강에서 바라보는 거제의 바다는 멋있다. 바다가 바다처럼 보인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는가?
해금강을 둘러보고 장승포로 향한다.
장승포로 향하는 길 또한 만만하지 않고 거리도 20km 가 넘는다.
힘이 든다. 거리가 줄지를 않는다. 다 해냈다는 만족감에 더 이상 힘을 내기가 어렵다.
힘들게 가던 중 울산에서 철환이와 후배 오영이가 오라고 한다. 남해를 다 돌았으니 잠시 방향을 꺾어 울산에서 마무리를 하란다.
그래, 가야지! 친구가 오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불러 주는데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거제에서 나가는 코스는 부산으로 정해진다.
< 장승포 외곽도로에서 내려다 본 장승포 항. 저기 보이는 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
12시에 부산행 페리호에 승선을 하여 한 시간 후쯤 부산에 도착한다.
시내를 관통하여 부산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울산행에 자전거를 싣는다.
<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준 철환이와 오영이. 이놈들 덕분에 이번 여행이 꽉! 채워졌다. >
운행거리 ; 70 km 운행시간 ; 6;00;52 최고속도 ; 54 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