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과 덕망이 부족한 제가 양가 어르신들을 모시고 주례사를 하게 되어 무척이나 송구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랑 나이가 비슷한 유명 인사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 멀리 미국에 대통령으로 있는 오바마가 저랑 같은 연배이고 대한민국에는 서울 시장이 또 저랑 비슷
한 연배이더군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이에 비해서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지
요.
그런데 연륜과 덕망도 미흡할뿐더러 특별한 지위도 없는 제게 신랑과 신부가 주례를 부탁한 까닭이 무엇
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연을 같이 한 것은 전교조 독서 모임에서의 만남일 뿐인데 전교조 지부장이나 지회장도 아닌 제
게 부탁을 청한 것은 아마도 평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이는 신랑 신부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이 남들보다 잘 먹고 잘난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가치에 방점을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20년 전 결혼식 때 평범하셨던 친구 아버지에게 주례를 부탁했었습니다.
다만 조금 특별했던 것은 신랑 신부 입장할 때 둘이 같이 손을 잡고 행진을 했었지요.
부부가 서로 평등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살아가고픈 바램 때문이었는데 양가 어른
들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 그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이벤트를 한 셈이 되었답니다.
신랑 신부 동반 입장 했던 전력 때문일까요...
우리 가족은 아직도 시장에 가거나 야자하는 큰 딸 데리러 갈 때 늘 같이 가곤 한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오늘 화촉을 밝히는 김광륜 신랑과 한지영 신부의 모습에서 난 그런 이미지를 그대
로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주책스러울 정도로 각종 모임에 항상 같이 참석해서 단란한 미소를 폴폴 날리며 모임 분위
기를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래서 신부 한지영 양이 전교조 새내기 선생님인 줄 알았답니다.
하긴 지금은 명예 조합원이긴 하지요.
둘은 처음에 터울림이라고 하는 풍물 모임의 동기로서 만났습니다.
여름 수련회 뒷풀이 때 신랑은 속 마음은 쿵쾅 쿵쾅 떨렸지만 겉은 태연하게 어여쁜 신부에게 다가갔고
작업을 의연하게 걸었다고 합니다.
아니 술 한잔을 먼저 청한 건 한잔 술 보다 더욱 맑은 눈빛의 신부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밤 새 나눈 정얼진 이야기는 알퐁스 도데의 ‘별’ 보다 순수했고 영화 ‘클래식’보다 아련했고, 그들
사랑의 서곡은 바야흐로 시작된 셈이었지요.
그 예쁘고 아름다운 둘의 사랑을 감출 요량이 없는 그 들은 자신들의 사랑이야기를 현재 진행형으로 자연
스레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을 먼 발치서 지켜보며 나는 참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반듯하게 생긴 김광륜과 저렇게 단아하게 생긴 한지영은 연애를 하면서 도데체 싸움이라는 걸 할
까...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일 터이니 결혼을 해서 부부 싸움은 당연한 것
일 텐데 혹시 싸움을 하나도 안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다른 독립적 개체인 만큼 생각도 다르고 입장도 달라서 갈등이 있겠지만, 그렇게 다툰 후
에 다시금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 싸움은 더욱 더 뜨거워지는 자양분이 되겠지요.
저는 지금 ‘싸움의 기술’을 이야기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상에서의 음식문화의 차이, TV 프로그램 취향의 차이 또는 가정 내에서의 주도권 쟁탈 등등 소소한 다
툼은 있을 수 있지만, 큰 갈등에서는 꼭 바다처럼 하늘처럼 마음이 넓어 지길 바랍니다.
전교조 모 선생님은 IMF때 친한 친구의 보증을 잘 못 서서 3억 5천만원의 빚을 떠 안았지만, 아내가 불
평 한마디 없이 잘 이해해주고 팍팍 밀어 주어서 지금은 빚도 다 갚고 더욱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간 사건 그 자체 보다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때론 더욱
중요하겠지요.
사랑을 하면서 자기의 아집을 관철시키는 것은 결국 자기 에고의 확장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마음이 대표적인 자기 중심적 사랑이겠지
요.
우리는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그 존재론적 운명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
소 성숙한 사랑은 시작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생긴 것도 똑같고 생각도 똑같은 그런 녀석을 사랑할 수 없지 않습니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 성어가 있습니다.
조화롭게 어울리되 같지 않다는 뜻이지요.
다름을 인정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을 완성시켜나가는 결혼의 의미라
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랑의 에너지가 내게로 향하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대신에 사랑의 에너지가 나
로부터 그에게로 향하고 다시 그 사랑이 주변의 이웃으로 넓어질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랑을 이루길 바랍
니다.
그것은 원 포인트 프로젝트가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이루어야 할 인생 프로젝트가 되겠습니다.
저는 주례사 말씀에서 당부하는 메시지를 평범의 가치에서 시작하여 싸움의 기술로 전개하였다가 사랑
의 완성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으로 마무리합니다.
전교조의 교육이념이 나라와 아이들을 위하는 참교육에 있듯이, 김광륜과 한지영의 사랑이 ‘터울림’ 즉 주
변에 감동의 울림을 주는 그런 참사랑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