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4회 골프회 11월 월례회를 다녀와서-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잠원동
다행히도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같은 조가 되어 네명(우제학,이석범,김봉식)이
제학이 집 근처 파스텔 골프연습장 입구에 모여 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출발 전 그 연습장에서 1시간 반 정도 연습하고 갔는데
앞으로 라운드 바로 전 연습은 절대로 안할 것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에 끝난 대입 수험생처럼 설레이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나름 갈고 닦은 실력에 행운까지 좀 따라주기를 기대하며
해리포터의 마법의 빗자루대신 작대기를 싣고
환희와 탄식이 교차하는 동심의 세계로 떠났다.
옛날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석범이...
같은 동네 살면서도 처음 만난 봉식이...
필드 갈 때마다 기꺼이 드라이버 역할을 해주는 제학이...
밀착된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은
벌써 <해리포터의 마법의 학교 호그와트>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직업과 가족에게만 몰입하다가 오늘 하루만은
네 명의 공통 관심사에 몰입하는 세계로 함께 떠났던 것이다.
1995년 캘리포니아의 어느 골프장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포드, 부시, 클린턴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골프를 쳤는데 NBC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포드는 첫 샷 OB, 클링턴은 벙커로, 부시는 페어웨이 가장자리......그러나 부시의
두 번째 샷은 나무를 맞고 꺾어져 군중속 여인의 머리를 맞히고 만다.
물론 부상당한 여인의 모습이 TV화면에 비춰진 것은 물론이고....
그들 세 대통령의 목표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합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안당하는 것,
아니 최소화 시키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캐슬파인 레이크 코스에서 첫 샷을 할 때의 심정은 아마 그날의
초조했던 대통령의 마음과 비슷했으리라.
추운 날씨와 바람과 평범하지 않은 코스의 3대 악조건을 극복하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 교대로 스킨스 돈을 빼먹으며 나이스 샷을 연발한다.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아크의 호쾌한 드라이버를 날리는 석범이..
추위를 잊게하는 봉식의 유연한 재담 때문에 귀가 즐겁고....
확실하게 룰을 관리한 우리 조장 제학이.....
라운드 중간에 뭐가 불만인지
자꾸 집에 돌아 가고 싶다고 찡얼대는 원기......
나는 고등학교 3년동안 제일 못 친 시험이 바로 예비고사였다
3년 동안 수많은 예선을 거쳐 본 게임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왔으니
과정과 결과의 연관성에 대한 심한 혼란이 왔었다.
이번에도 나름 연습을 많이 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와 함께
파부침주 (破釜沈舟) 의 결의로 임하였으나
기대&결의는 필드 위의 딩구는 낙엽처럼
내 바램을 여지없이 구겨버렸고
과정과 결과의 연관성을 또 한번 의심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파부침주: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케네디 대통령은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골프 치는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였다. 싱글 수준의 실력에 주중에도 몰래 골프를 즐겼다던
그는 당시 골프의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골프장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 여론의 잠재적 위험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경우와는 달리
내 경우의 위험은 골프장의 헤저드보다 더 무서운 ‘와이프 헤저드’가 있다.
와이프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억지로 가면 마음이 불편해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골프장 갈 때 항상 업무상 고객과 가는 것이고 비용은 회사가
거의 부담하는 것으로 집사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잠재적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시킨 것인데
글쎄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또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그날도 고객 24명과 함께 라운딩을 한 것이고
다만 나와 고객들의 나이가 비슷해 말 트고 지내는 것이 좀 특이하고
거래선 회사 이름이 바로 “우신고등학교”라는 학교법인이었다.
거래회사 대표 이성민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어찌나 운영을 잘하는지
자본금 4백만원으로 발기하여 1년도 안되어 매월 흑자운영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코스닥 우회 상장도 가능해 보인다.
액면가 유상증자를 한다면 투자 참여를 고려해 볼 생각이다.
분당에서 가진 뒷풀이에는 처음 참가한 회원과 회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찾아온 사람, 처음본 친구들로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화성이가 60도 웨지를 수상하고 노병일이 골프공 세트를 선물받고
미국에서 온 승철이도 있고
회사일로 참가 못한 이번 모임 경기 위원 정우종이 불원천리 달려오고
결혼식 참석하고 기꺼이 와준 회준이 모두 모두 오래 함께 하고
싶었지만 동네차 놓치면 분당에서 미아 될 것 같아
잠원파 4명은 동네로 왔고 석범이와 래순이와 호프 한잔 더했다.
나는 오리고기와 삼겹살이 섞여서 굽혀지는 불판처럼
친구를 만난 즐거움과 앞으로 칼을 더 갈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섞여
우정의 불판은 뜨거웠지만
그 밑의 춤추는 불꽃처럼
내 마음도 혼란스럽게 춤추고 있었다.
골프 이거이 계속해야되 말아야되?!@#$%^&*()_+
골프를 부루조아 운동이라고 격하하던
쿠바의 카스트로가 어느 날 돌변하여 공개적으로 아이젠하워 (재임 8년간 300라운드)와
케네디를 향해
자기가 골프를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몇 달 후 카스트로는 체게바라와 쿠바에서 연습라운딩을 가졌는데
카스트로가 150타, 체게바라가 127타를 쳤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친다 하더라도 카스트로는 케네디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동네 친구 우제학에게 내 골프의 1차 목표는 당신과 평생전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가끔 호언장담을 한다......마치 그 옛날 카스트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라운딩이 거듭될수록 전적이 불리하게 되어 내 스스로도 안타깝지만
나는 카스트로처럼 황당무계한 상황에서 큰 소리 치지는 않았고
스스로 만든 소박한 목표가 즐거운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세 대통령의 게임 최종 결과는 부시92 클린턴93 포드100이었다.
생방송의 긴장도에 비해서는 훌륭한 점수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초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 중턱 케슬파인CC의 악조건 속에서도
석범이가 96, 제학이,봉식이90대 후반.................그리고 나는 졸지에
세자리의 카스트로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카스트로에게 인간적인 정이 느껴진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대통령이 라운딩을 같이할 때
아버지의 모자 정면에 41라고 적혀있고 아들 모자에는 43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41대, 43대 대통령이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만들어 아들에게 주었다고 함)
우리 학교법인 우신고등학교 골프 모임에서도 가까운 날
3과 4모자를 쓰고 선후배가 맞장을 뜨고
3-1.......3-4.......3-12를 적은 모자를 쓰고 치면서 그 옛날 교실을 필드로 옮겨놓고
골프 모의고사를 통해 우열반을 가려보는 황당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하루 동안의 마법고등학교 일정을 마무리 해본다.
골프의 최대 단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재미를 평생 경험하지 않고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끝-
PS1)글 내용의 일화들은 뉴욕타임즈 기자인 돈반 나나 주니어가 쓴
Off the Tee>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PS2)난 봉식이를 전에는 알지 못했다.
토요일 라운딩 대비하여 동네 인도어골프장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내 또래 부부가 스치고 지나간다.
얼핏 보기에 회원명단 사진에서 본 얼굴과 비슷하다.
혹시 아닐지 몰라서 나지막하게 그러나 상대가 들릴 정도의 톤으로
“봉식아!!”............“봉~~~시~~~~가”
<TV는 사랑을 싣고> 버젼
두 번째에 얼굴을 돌아본다.
“어~~~~~”
“나야, 김~ 원~ 기”
우린 마치 전에도 알았던 것처럼 무척이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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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