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한담’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린 지 벌써 한 해가 흘렀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요즘 말로 5학년이 되었고 졸업도 30주년이 된다. 부인하고 싶지만 미국 PGA에서도 나이 50부터는 시니어다. 대우 받을 나이기도 하지만 나이 값을 해야 하는 나이기도 하다.
만나이로 50이 되려면 1년하고도 몇 달이 더 남았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을 런 지 모르지만 그건 생각하는 사람 맘이니까...
1. 나이 오십에...
내가 소띠이기 때문인지 작년 소의 해에는 뭔가 감회가 있는 것 같았는데 호랑이 해라는 것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장승욱이가 작년을 牛우우 보냈다면 새해는 虎호호 보내라고 저답게 신년 메시지를 보내 왔는데 문자를 보는 순간 승욱이가 호랑이 띠일 것이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근 한 달 동안 주변의 또래들과 나눈 대화중에서 그 비중이 가장 컸던 것 중의 하나가 자녀들의 대학 입시와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새해에도 중딩인데 친구들은 절반 이상은 이미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거야 뭐 특별히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에게 우리가 너무 고리타분한 존재로 변해있는 건 아닌지 신년 특별 자녀들과의 대화를 시도해 봄직도 하다.
직장에서 나의 위치는 작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직급과 업무, 그리고 근무 부서도 작년과 동일하다. 하지만 올 초에는 바뀔 확률이 농후하다. 한 지점에서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들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 인사 발령이 나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려나 정년까지 10년도 못 남았다는 우울한 현실이 바뀔 리는 없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앞으로 30~40년을 쌩쌩하게 살 수 있다면 진짜루 인생 이모작을 설계해야 할 것 같기두 한데...
2. 어차피 틀리는 증시 전망...
구질구질 변명할 것도 없고 어쩌다 맞추었다고 떠들 이유도 없는 것이 신년 증시 전망이다.
KDI가 2010년 우리 경제를 귀신같이 맞춘다고 해도 종합지수를 그렇게 맞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신 나간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주식을 열심히 사들이면 시장은 경제따로 주가따로일 것이기 때문에...
금년 증시 전망은 증권사별로 1400포인트 언저리에서 2700포인트까지 그 예측하는 폭이 매우 넓다. 틀려도 그만이라는 무책임감(?)이 확산된 탓인지 제 멋대로들 전망을 해 놨다. 그렇다고 탓할 일 만은 아닌 것이 나름대로 수긍할 만한 이유들은 충분히 있다. 이것 저것 읽어보고 자기 의견과 가장 흡사한 전망치를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된다. 물론 중간 중간에 수정도 하고 첨삭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시장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 케인즈의 시대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이후에 다반사로 일어났던 것처럼 작년에는 절대로 예측할 수 없던 일들이 올해에는 반드시 일어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다녀온 것도 아닌데 정확히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있슴을 인정하고 변수의 공간을 조금 더 넓혀놓는 현명함이 필요할 뿐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상반기가 하반기보다 나을 것 같고, 최고치는 2000포인트를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금년 경제 전망치에 근거한 것이고 늘 그렇듯이 예측 불가능한 외국인의 매매영역이나 다른 변수들은 배제된 상태인 것이다.
3. 살아가는 이야기..
“거기 가좌 스크린 맞죠? 혹시 빈 방 있나요?”
“네, 빈 방 있다고요. 그런데 혼자 쳐도 되나요?”
지난 1월 2일에 실제로 있었던 내 통화 내역이다. 외진 동네로 이사 온 지 2년, 나는 요즘 자주 심심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나름대로 터 잡이가 끝났다. 어머니는 바깥에 계시는 시간이 더 많으시고 아내는 집에 있어도 항시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 중딩인 아이들도 이제는 자기들의 스케쥴로 바쁘다. 겨울이라 바깥에 나가야 할 일이 별로 없다. 문득 생각난 것이 동네 스크린에 가 보자는 것이었고 결국 나홀로 스크린을 실천하고 왔다. 스코어는 두번째이고 정말 할 일이 이것 밖에 없는가하는 생각이 멘탈을 방해했다.
이맘때면 신춘문예를 생각하며 원고지와 씨름하던 시간들도 있었고, 나름대로 뭔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내 술이라도 마셨는데 확실히 공허한 시간이 늘었다.
책도 잘 안 읽히는 상황에 원고지는 언감생심이고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거나 골프 연습장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건강 때문에 바깥에서 술 마실 일이 생겨도 슬금슬금 피하는 마당에 술자리를 일부러 만들 일은 없다.
다소 직업 탓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못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 잠시도 짬을 안주고 급등락을 반복하는 시장 때문에 심신이 지쳐 있슴도 사실이다. 그러나 왠지 그 이유 중에 5학년이라는 단어도 포함되는 것 같아 허탈함을 숨길 수 없다.
4. 이제부터는...
논어에서는 오십을 지천명의 나이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안다고? 알 듯 모를 듯한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학창 시절에 어느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늘의 뜻 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번 돌아보는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안에서 나는 자식, 남편,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직장, 혹은 사회속에서 나는 내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 번과 두 번째 것은 그렇다고 치고 세 번째 사항에서 건강이란 놈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50살부터 시니어가 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십년이 지난 구닥다리 연식의 부품들로 조립된 본체를 과신하면 분명 그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지천명의 나이다.
의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90살 이상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아직은 실감하기 어렵고, 길어야 30년을 전후할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직장을 비롯해서 자녀들의 교육, 혹은 주변의 산적한 일들로 인해 당장 내일이 불투명한데 뭔 호사냐고 반박할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일수록 우선적으로 자신의 건강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1년 전에 당뇨와 지방간으로 술을 끊었다던 대전에 사는 초딩 시절 친구는 불과 1년만에 10킬로 이상의 감량에 성공하여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친구의 득의만만한 표정 속에 지난 1년간 친구가 겪었을 혹독한 수행의 시간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았고, 부러움을 떠나서 이제 내 차례가 되었슴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5학년이 시작되었다. 환갑이 10년 남았는데 뒤돌아볼 여유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까마득하다는 것이 다소 억울하지만 영재다운 슬기로움으로 모두가 멋지게 출발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